시각장애인이 노란색 지팡이 짚고다니면 ‘위법’?

  • 입력 2007년 10월 18일 03시 01분


코멘트
아직도 이런 황당규제가…

전경련, 정부 등록규제 1664건 폐지-개선 건의

‘앞을 못 보는 장애인이 빨간색이나 노란색 지팡이를 짚고 도로를 다니면 위법인가?’

‘온천수를 사용하지 않는 동네 목욕탕이 간판에 온천 표시를 하는 것도 법에 걸리나?’

현행법을 엄격히 적용하면 두 사례 모두 위법이다.

도로교통법 제11조는 시각 장애인이 도로를 다닐 때 흰색 지팡이를 짚고 다니도록 규정하고 있다. 또 온천법 제16조 3항은 일반 목욕탕은 온천 표시를 사용하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

교육기본법 제29조 제3항 및 국외유학에 관한 규정 제5조, 15조에 따르면 초등학생 자녀나 중학교에 다니는 자녀를 자비(自費)로 해외 유학을 보낼 수 없다.

사후(死後)를 대비해 70세 전에 자신이 묻힐 땅을 미리 사놓거나 70세가 안 된 부모를 위해 묘지를 미리 마련하는 행위도 불법이다. ‘장사 등에 관한 법률’은 묘지의 사전매매, 양도, 임대사용 계약을 금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온천 표시 법규를 위반했을 경우 2년 이하의 징역이나 1000만 원 이하의 벌금형을 받을 수 있고, 묘지를 사전매매했다 적발되면 징역 1년 이하 또는 500만 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해질 수 있다.

새 정부가 들어설 때마다 규제개혁을 개혁의 우선순위로 치켜세우지만 이 같은 ‘황당 규제’들은 여전히 법 규정으로 남아 시대의 변화를 무색하게 만들고 있다.

전국경제인연합회와 한국경제연구원은 국무총리실 요청으로 6월부터 4개월 동안 정부 등록 규제 5025건에 대한 적정성 여부를 조사한 결과 이같이 말도 되지 않는 규제가 무더기로 발견됐다고 17일 밝혔다.

이번 조사는 대통령 직속 규제개혁위원회에 등록된 규제만을 대상으로 이뤄진 것이어서 정부 각 부처가 등록하지 않고 운용하는 미(未)등록 규제까지 포함하면 ‘황당 규제’는 훨씬 더 많을 것으로 관측된다.

전경련은 △공무원에게 과도한 재량권을 부여해 비리 소지를 발생시키는 규제 △지나치게 이상적이어서 사실상 사(死)문화된 규제 등 5가지 유형을 ‘불량규제’로 규정하고 대표적인 사례 100건을 발표했다.

이미 건강보험공단과 의료기관 간에 전산망이 연결돼 무용지물이 된 건강보험증을 매년 막대한 예산을 들여 발급하도록 하는 것도 ‘불량규제’로 지목했다.

이에 따라 전경련은 등록 규제 가운데 ‘불량규제’를 포함해 모두 516건을 폐지하고, 1148건을 개선해 줄 것을 정부에 건의했다.

전경련 조석래 회장과 이윤호 상근 부회장은 이날 한덕수 국무총리에게 이런 내용을 담은 ‘규제개혁 종합 연구’ 결과를 전달했다.

김종석 한경연 원장은 기자간담회에서 “규제 건수가 늘어난 것보다 규제의 내용이 규제 만능주의적이고 구태의연하다는 점이 더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날 전경련이 제시한 규제개혁 방안에는 정부의 의지에 따라 당장 개선이 가능한 규제 184건과 중장기적으로 보완이 필요한 중요 개혁 대상 규제 200건이 포함돼 있다.

정부가 이 같은 건의를 수용할 경우 세계은행의 기업환경지수 종합순위가 현재 30위에서 15위로 상승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전경련 측은 밝혔다.

전경련 측은 “조만간 정부 측과 개혁 대상 규제를 선별하는 회의를 열 예정”이라며 “정부 차원에서도 필요 시 총리 주재 관계 장관회의 등을 통해 규제개혁 방안을 마련할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조용우 기자 woogija@donga.com

전경련이 지목한 주요 불량규제
규제 유형규제 내용
기대효과 대비 과도한 사회적 비용―묘지 사전매매 금지
―담배소매인 지정 시 영업소간 거리 제한(50m 이내 1인)
―도시가스공사 계획 수립 시 가스안전공사, 산업자원부 별도 신고
특정집단 특혜 제공―방송광고공사의 방송광고 대행 독점
―경제자유구역 대기업 입주 제한
―제주도 내 자동차 대여업 외지업체 금지
공무원에 과도한 재량권 부여로 비리 소지―차량 견인 대행업체 경찰서장, 기초단체장 지정
―먹는물 제조업 조건부 허가 기간에 영업
집행 불가능하거나 저조한 준수―자동차 최고 속도 제한
―시각장애인 흰색 지팡이 소지
―분묘 설치기간 15년 제한
기준과 절차 문제로 사실상 사문화―중졸 미만 학생 자비 국외 유학 금지
―일반 목욕탕의 온천 표시 사용 금지
―근로자 기숙사 설비 및 침실 넓이, 거주 인원 제한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