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34세대의 그늘]출발선 다르다고 포기? ‘배경의 벽’ 뛰어넘어야

  • 입력 2007년 7월 21일 03시 0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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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은 꿈이고 희망이다. 비록 미래가 불투명하더라도 도전하려는 의지가 필요하다. 젊은 세대의 희망이 곧 우리 사회의 미래다. 동아일보 자료 사진
청춘은 꿈이고 희망이다. 비록 미래가 불투명하더라도 도전하려는 의지가 필요하다. 젊은 세대의 희망이 곧 우리 사회의 미래다. 동아일보 자료 사진
대한민국 청춘들이 꿈을 잃고 있다. 높은 이상이 현실에서 산산이 부서지는 탓이다. 냉혹한 현실에 직면한 이들은 방향성을 상실한다. 체념과 의욕 상실만 남는다. 이른바 ‘하류의식’의 확산이다.

현재 20, 30대는 한국 사회가 고도 성장기를 지나 경제적으로 안정기에 접어든 이후 태어난 첫 세대들이다. 유년은 풍족했지만 성년이 된 뒤에는 외환위기를 겪으며 녹록하지 않은 현실과 맞닥뜨린 세대이기도 하다. 철옹성 같은 대기업이 쓰러지고 잘나가던 엘리트들이 추풍낙엽처럼 떨어지는 현실을 목격한 것이다. 그래서 이 시대 청춘들은 꿈을 꾸지 않는다. 문제는 이들과 함께 사회도 꿈을 잃는 ‘디스토피아(유토피아의 반대개념으로 부정적인 세계)’의 먹구름이 몰려올지 모른다는 우려다.

○ 절망의 늪에 빠진 젊은 세대

“노력한다고 되나요.”

의욕 상실의 늪에 빠진 젊은 세대의 하소연이다. 무역회사에 다니는 김성훈(가명·32) 씨는 입사 뒤 얼마 되지 않아 경쟁력의 한계를 절감했다.

김 씨는 “서울에서 내로라하는 대학을 나와 어렵게 취업을 한 나와는 달리 좋은 경력을 바탕으로 쉽게 회사의 높은 자리를 꿰차는 동료들을 보면 좌절하지 않을 수 없다”고 토로했다. 그는 “경력 입사자들은 대부분 해외파라 외국어 실력도 상당한 수준”이라며 “배경의 차이가 결국 능력의 차이가 된다는 현실을 뼈저리게 체감하고 있다”고 털어놨다.

이는 김 씨만의 독특한 경험이 아니다. 실제로 많은 사람이 신분 상승의 기대를 거의 하지 않고 있다.

지난해 사회통계조사에 따르면 우리 국민의 46.7%가 본인의 사회적 지위가 변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답했다. 계층 이동 가능성이 높다는 응답은 27.5%에 불과했다. 특히 30대는 절반이 넘는 52.8%가 현 위치에서 변함이 없을 것이라고 응답했다.

미래에 대한 이 같은 불신은 명문대 출신이라고 다를 바가 없다. 서울대를 나와 사법시험까지 통과한 사법연수생 정은영(가명·28·여) 씨도 한계를 느낀다고 했다. 정 씨는 “밖에서 볼 때는 사시 합격증이 마치 신분 상승의 통행증 같지만 현실은 전혀 다르다”고 말했다.

연수원 내에서도 서울 강남 출신이냐, 아버지가 법조인이냐, 서울대 법대 출신이냐 등 여러 배경에 따라 서열이 매겨진다는 것.

정 씨는 “법조인 가족인 경우 인적 네트워크의 차원이 다르다”며 “아무런 배경이 없는 평범한 연수생들은 주류가 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으면서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커졌다”고 말했다.

○ 도전은 없다. 안정만을 추구할 뿐

신분 상승의 한계를 느낀 이들의 삶의 목표는 오로지 ‘안정성’이다.

15∼24세 청소년들의 선호 직업 1위는 단연 공무원이다. 지난해 통계청 조사에서 국가기관과 공기업에 취업하고 싶다는 응답은 전체의 44.5%나 됐다. 신분 상승의 지름길이라 일컬어지는 전문직에 대한 선호도는 15.4%에 불과했다.

이들은 자신의 적성(12%)이나 직장의 발전 가능성(10.2%)보다 안정성(32.6%)을 직업 선택의 가장 중요한 요소로 꼽았다.

대학생이 온통 공무원 시험에 ‘올인’하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지방국립대 법대생인 이동주(가명·25) 씨는 현재 9급 시험을 준비하는 공무원시험 수험생이다. 그의 원래 꿈은 판검사였다.

그는 “초등학교 때부터 법조인을 꿈꿨다. 판검사가 돼 서민의 편에 서서 법을 집행하고 싶었고 한편으론 정치에 대한 욕심도 있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군복무를 마친 뒤 지방대생의 현실을 직시하게 됐다. 이 씨의 바람은 이제 현상 유지다.

“9급 공무원이 된다는 게 사회적 성공과 관련이 있습니까. 직업적 성취는 포기한 지 오래입니다. 그저 편하게 살고 싶은 마음뿐이에요.”

농협의 2년차 계장인 정민성(가명·29) 씨는 업계 1, 2위를 다투는 다른 시중은행에도 합격했지만 주저 없이 농협을 택했다고 했다.

정 씨는 “시중 은행의 봉급이 훨씬 높지만 언제 구조조정의 태풍이 몰아칠지 모르지 않느냐”며 “여긴 크게 잘못하지 않는 한 중간에 퇴출될 일이 없기 때문에 큰 성공은 하지 못하더라도 정년은 보장된다”고 말했다.

양준호 인천대 경제학과 교수는 “기성세대는 누구나 기업에 들어가면 임원이 되길 꿈꿨지만 젊은 세대는 사회적 성공에 대한 욕심이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라며 “성공에 대한 무관심이 인생 자체에 대한 의욕 상실로 이어지는 것이 문제”라고 말했다.

○ 취업할 의욕조차 없어

양 교수의 우려는 이미 현실에서 그대로 나타나고 있다.

노동 통계를 살펴보면 한창 사회에 진출할 나이의 청년 실업자가 크게 늘고 있다. 더욱이 이들은 애초 취업할 의욕조차 보이지 않고 있다. 2006년 현재 실업자는 모두 82만7000여 명으로 5년 전인 2001년에 비해 8% 줄어 전체적으로 감소 추세다. 하지만 25∼29세 실업자는 17만9000여 명에서 18만4000여 명으로 되레 늘었다.

30∼34세 실업자 역시 10만6000여 명에서 11만2000여 명으로 증가해 현업에서 물러날 나이인 50, 60대와 비슷한 양상을 보이고 있다. 특히 전문가들은 한 번도 취업을 해본 적이 없는 실업자가 4년제 이상 대학졸업자에서 두드러지게 늘고 있는 현상에 큰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2000년에 1만1000여 명이었던 취업 무경험자는 2006년에는 1만5000여 명으로 늘었다. 중졸 학력의 취업 무경험자가 8000여 명에서 3000여 명으로 줄어든 것과 대조적이다.

미래를 아예 포기하는 최악의 사례도 잇따르고 있다. 이달 14일 명문대 출신의 여성(25)이 약대 편입에 실패해 스스로 목숨을 끊었는가 하면 같은 날 30대 무직자도 “의사가 되고 싶었다”는 유서를 남기고 자살했다.

박길성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는 “여전히 진취적인 젊은 세대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대부분의 취업 준비생이 안정성에 집착하고, 안정성조차 담보되지 못하면 아예 자신의 모든 가능성을 포기하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는 것은 엄청난 사회문제”라고 지적했다.

강혜승 기자 fineday@donga.com

홍수영 기자 gae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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