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理知논술/고전여행]노자 ‘도덕경’

  • 입력 2007년 7월 1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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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식이와 순희는 이순신 장군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서로 싸우고 있습니다. 영식이는 이순신 장군을 최고로 훌륭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는데, 순희는 전쟁영웅을 훌륭한 사람으로 받드는 것에 반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노자는 여기에 대해 이렇게 조언합니다.

“훌륭한 사람을 떠받들지 않아야 세상에 싸움이 없어질 것이니라.”

세상 사람들은 저마다 자기가 생각하는 훌륭한 사람이 있습니다. 무엇에 대해 옳고 그름을 따지기에 앞서 훌륭한 사람의 언행이라고 하면 사람들은 그것에 대해 함부로 비난하지 못합니다. 히틀러도 당대의 독일인들에게는 최고의 영웅이었습니다. 하지만 나중에 보면 그 사람이 훌륭하다거나 훌륭하지 않다는 사실보다 어떤 사람을 훌륭한 사람으로 떠받드는 일이 더 큰 ‘폭력’으로 탄생되기도 합니다. 사람뿐만 아니라 물건에 대해서 훌륭하다거나, 귀하다고 칭찬하는 것을 노자는 경계합니다. 그것이 자연 법칙에 어긋나고, 또 세상에 차별을 만든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노자의 조언은 주로 위정자(爲政者), 즉 정치인들에게 하는 것이지만 오늘을 살아가는 영식이와 순희에게도 의미 있게 다가올 수 있습니다. 또 하나의 장면을 살펴볼까요?

순희는 엄마가 참 고맙습니다. 순희에게 필요한 게 생기면 그 누구보다 먼저 챙겨주시는 배려 때문입니다. 하지만 영식이는 그런 것을 싫어합니다. 순희는 엄마의 따뜻한 배려와 사랑 때문에 자신이 잘 지내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영식이는 그런 배려와 사랑은 반드시 다른 사람에 대한 차별을 낳게 되고, 나아가 차별을 정당화하기까지 한다고 주장합니다. 노자는 이에 대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하늘과 땅은 인자함이 없어서 모든 것을 짚으로 만든 개처럼 취급한다. 성인도 인자함이 없어서 백성을 모두 짚으로 만든 개처럼 취급한다.”

노자가 도덕경서 말하는

가장 이상적인 인간형 聖人

이 시대의 성인은 누구인가

가족 내에서 우리는 보통 사랑과 따뜻함을 느낍니다. 하지만 가족에게서 느끼는 따뜻함이 클수록 가족 밖의 세상은 차갑게 느껴질 수밖에 없습니다. 누군가에게 인자함을 베풀면 다른 누군가는 그 인자함을 받을 수 없기 마련입니다. 공자가 강조했던 인자함을 이렇게 노자는 비판하고 있습니다. 사랑과 배려의 바깥에 있는 사람의 서러움은 세상 그 어떤 고통보다 괴로울 겁니다. 여러분의 사랑과 배려가 누군가에게 상처가 된 적은 없었을까요?

노자의 사상은 나중에 ‘도가’라는 일종의 학파로 발전하게 됩니다. 그러나 또 한편으로는 ‘도교’라는, 일종의 ‘종교’와 비슷한 것으로 변형됩니다. 도교를 신봉하는 사람들은 노자의 철학적 사상에는 관심이 없고, ‘도덕경’에서 자주 강조하는 ‘죽지 않고 영원히 사는 일’이나 ‘싸우지 않고 상대방을 이기는 방법’을 글자 그대로 받아들여 ‘신이한 도술’이나 ‘불로장생’에만 관심을 가집니다. 결국 도교는 ‘신선’이 되는 것을 목표로 삼는 것이지요.

그러나 노자가 말하는 ‘영원한 삶’은 자연과 합일이 되어서 사는 삶, 즉 대자연이 순환하듯이 인간도 죽음과 순환을 두려워하지 않으면서 자연스럽게 살아가는 일을 말한 것이고, 싸우지 않고 상대방을 이기는 방법은 ‘겨루기보다는 참는 것’으로 상대방을 감복시키는 일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도덕경에서 말하는 가장 이상적인 인간형은 도교의 신선과는 전혀 다른 ‘성인(聖人)’인 것이지요.

성인이라고 하면 예수나 부처와 같은 사람을 말하는 것이니까 우리는 절대로 될 수 없는 불가능한 존재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성인군자 나셨네!’라는 비꼬는 투의 시쳇말이 있듯이, 성인은 아무 때나 ‘나실’ 수는 없는 존재지요. 또한 ‘의사’도 아니고 ‘변호사’도 아니고 ‘증권전문가’도 아닌, ‘성인(聖人)’을 흠모하는 청소년은 많지 않을 겁니다.

하지만 성인은 현실과 동떨어진 인간 유형이 아닙니다. 성인(聖人)이라는 글자에는 귀(耳)가 들어 있습니다. 이 글자를 보고 유추할 수 있는 성인의 의미는 귀가 밝은 사람입니다. 보통 사람은 그냥 아무렇지도 않게 넘겨버릴 수 있는 이야기를 성인은 예민하게 듣습니다. 그리고 그 이야기가 우리의 현실이나 우리의 삶과 어떻게 관계있는 것인지를 밝혀서 ‘입(口)’으로 사람들에게 전달을 해 주는 사람입니다.

결국 성인은 지금 시대의 ‘지식인’과도 비슷한 존재입니다. 다시 말해서 이 오래된 중국 철학자의 메시지는 이렇게 해석해도 좋겠습니다.

“세상의 모든 소리(특히 힘 있는 사람들의 ‘인자함’으로 포장된 목소리)를 주의 깊게 듣고 그것들이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잘 밝혀낼 줄 아는 지식인이 되어라.”

이 메시지는 열심히 책을 읽고, 열심히 신문을 보고, 열심히 글을 써보기를 권장하는 논술이 지향하는 바람직한 인간형과도 다르지 않습니다. 노자의 이야기를 귀 기울여 들어보고 싶지 않습니까?

이수봉 학림필로소피 논술전문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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