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理知논술/교과서로 논술 잡기]사회영역

  • 입력 2007년 4월 1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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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과서에 나오는 심화학습 문제에 통합교과형 논술 대비책이 숨어 있다.’ 서울대 등 주요 대학과 논술 전문가들의 한결같은 주장이다. 교과서를 통해 논술의 기초를 충분히 다질 수 있다는 것이다. 고교 교과서의 핵심 내용을 논술 준비 강의로 새 연재를 진행한다. 한 주는 사회와 과학, 한 주는 언어와 수리를 싣는다.》

조선 붕당정치는 소모적 당쟁일뿐인가

현대 의회정치 기초 모델로 볼수있는가

■ 주제: 붕당의 현대적 의미

글 싣는 순서(사회)
번호주제
1개항(1876) 어떻게 볼 것인가?
2지역개발, 무엇이 문제인가?
3우리 곁의 민주주의
4기업의 사회적 책임은 어디까지?
5사회 속의 개인
6의무냐, 목적이냐?
7법은 도덕의 최소한인가?
8붕당의 현대적 의미
9지도, 그대로 믿어도 되는가?
10정치 속의 여성
11성장과 분배, 두 마리 토끼인가?
12개고기가 나쁜 음식인가?
번호주제
13개인 윤리와 사회 윤리
14역사란 무엇인가?
15지형의 변화, 어떻게 볼 것인가?
16국제사회를 바라보는 눈
17자본주의의 변신-시장이냐 정부냐?
18TV 속에 비친 우리 사회
19국가란 무엇인가?
20주전론과 주화론
21가라앉는 섬, 누구의 책임인가?
22정치문화와 한국
23누구를 위한 세계화인가?
24동양적 사고와 서양적 사고

16C 후반 선조가 즉위하면서 그동안 향촌에서 세력 기반을 다져 오던 사림 세력이 대거 중앙 정계로 진출하여 정국을 주도하게 되었다. 그러나 사림 세력은 척신 정치의 잔재를 어떻게 청산할 것인가를 둘러싸고 갈등을 겪게 되었고, 결국 기성사림과 신진사림으로 나누어지게 되었다. 두 세력 간의 갈등이 심화되자 왕실의 외척이면서 기성사림의 신망을 받던 심의겸과 당시 명망이 높고 신진사림의 지지를 받던 김효원 사이의 대립으로 붕당이 이루어졌다. [고등학교 국사 교과서]

조선 후기 이러한 정치사를 바라보는 시각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첫 번째는 조선 후기에 한국인의 분열적인 민족성에 기인하여 정치사를 당쟁으로 보고 부정적으로 해석하는 견해이고, 다른 하나는 붕당정치로 이해하고 조선시대 정치의 구조적 산물로 보는 견해이다. 이 글에서는 조선 후기 정치사의 올바른 이해와 현대 정당정치로의 발전 가능성에 대하여 알아보고자 한다.

■ 〈쟁점 1〉 조선 후기의 정치사는 당쟁인가?

일제강점기 때부터 당쟁은 조선 후기 붕당 간의 다툼을 지칭하는 용어로 사용되었다. 가장 먼저 조선 후기 정치사를 당쟁이라는 부정적 시각으로 나타낸 것은 19세기 말 이건창의 ‘당의통략’이다. 또한 ‘근세조선정감’에서도 같은 시각으로 당쟁을 보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견해는 붕당정치의 변질 과정을 부정적으로 보는 것이지, 붕당정치 자체를 부정적인 시각으로 보는 것은 아니다. 조선 후기 정치사를 당쟁이라는 부정적 시각으로 보는 연구는 일본 식민주의 사학자(시데하라 히로시, 가와이 히로다미, 호소이 하지메)에 의해 일반화되었다. 이들의 연구는 조선의 정치적 전통을 왜곡하고, 그 폐단을 과장하여 민족의 역량을 부정하고 독립에 대한 희망을 말살하면서 기본적으로 일제의 조선 지배를 역사를 통해 정당화하려는 하나의 방편이었다.

그러므로 조선시대 정치의 지엽적인 사실들을 과장하여, 정파적 대립이 지극히 개인적이고 감정적 원인에 의해 빚어졌고 그것이 전체 역사를 관통하는 현상인 것처럼 서술하거나, 사회 전체가 발전하지 못하고 정체되었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끊임없는 소모적 정쟁이 빚어졌다고 설명하였다. 당쟁은 조선인의 혈액 속에 들어 있는 특이한 검붉은 요소로 인한 것이어서 개혁이 영원히 불가능하다는 주장이 제시된 바도 있다. 이러한 당쟁론은 망국의 현실에 좌절한 많은 사람이 사실로 받아들여 일반화되었다. 이와 같은 인식은 광복 이후에도 상당기간 지속되었다.

■ 〈쟁점 2〉조선후기 정치사는 붕당정치인가?

붕당(朋黨)이란 붕(朋)과 당(黨)의 합성어로서, 붕은 같은 스승 밑에서 동문수학하던 무리를 말하며, 당은 이해관계를 중심으로 모인 집단을 가리킨다. 즉 붕당정치란, 학연과 지연을 매개로 의식과 정치 이념이 같은 사람들끼리 붕당을 이루고, 언론활동을 통하여 국왕의 신임을 얻어 국정을 주관하는 정치체제를 뜻한다. 조선 후기 정치사를 붕당정치로 가장 먼저 제시한 것은 1923년 안확의 ‘조선문명사’였다. 하지만 1970년대 이전까지 식민사학자들이 주장했던 당파성론의 영향력을 벗어나지 못했다. 이후 1970년대 후반부터 사회경제사 연구 성과에 자극을 받아서 붕당정치라는 긍정적인 시각이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즉, 당시의 당파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잘못되었음을 지적하고, 국권이 상실되던 시기의 정치는 세도정치로 이 체제는 권력이 국왕의 외척 일가에 집중된 일족 전제로서 붕당정치와는 확연히 구분되며 붕당정치는 상호 비판을 기본원리로 한다는 붕당정치론이 제시되었다.

붕당은 학파적 성격과 정파적 성격을 동시에 가진다. 조정에서 어떤 정책을 논의할 경우 각 붕당은 그 정책이 이론적으로 타당한지 검토하고, 여론을 광범위하게 수렴하면서 토론을 벌였다. 이렇게 수렴된 여론을 공론이라 하는데, 공론이 중시되면서 합좌기구인 비변사와 언론 기관인 3사의 기능이 중시되었다. 재야에서 공론을 조도하는 지도자로서 산림이 출현하였고, 서원이나 향교가 지방 사족의 의견을 모으는 수단으로 기능하였다. 그러나 붕당이 적극적으로 내세운 공론도 백성의 의견을 반영하는 것이 아니라 지배층의 의견을 수렴하는 한계를 지니고 있었다.

[고등학교 국사 교과서]

■ 〈쟁점 3〉 긍정적인 측면과 부정적인 측면

붕당은 처음에는 학문과 이념의 차이에서 출발하였으므로 그 폐단이 크지 않았다. 오히려 정치의 활성화와 정치 참여의 폭을 넓히는 데 기여하였으며 정치 세력 간의 상호 비판과 견제의 기능도 가졌다. 17세기에 서인과 남인이 공존하면서 정책 대립을 펼친 것이 그 대표적인 예이다. 서인과 남인은 인사권, 예송 논쟁 등을 둘러싸고 붕당끼리 대립하면서도 비판 세력의 공존을 허용함으로써 관료들의 정치 비판 기능이 커지게 되었고 개인의 의견보다는 집단 의사라 할 수 있는 공론이 정치를 주도하게 되어 정치의 부패가 그만큼 줄어들었다. 이러한 점은 붕당 정치가 서양에서의 민주적 정치 운영에 입각한 정당 정치와 비슷한 의의를 가지고 있었다고 볼 수 있게 하는 근거가 된다. 즉, 정치 활성화와 비판 견제의 기능, 의회의 역할을 하여 왕의 독재를 막은 것, 그리고 서원을 기반으로 하여 학문적인 발전을 이룩한 것이 조선 붕당정치의 긍정적 측면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권력의 독점적 추구와 외척 세력의 개입으로 붕당정치는 변질되어 갔고 경신환국 이후에는 붕당정치의 기본 원리가 무너지고 일당 전제화 추세가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또한 몇몇 벌열 가문이 정권을 독점했고 지배층 사이에서는 개인이나 가문의 이익을 우선시하는 경향이 현저해졌다. 그리고 양반층이 분화되면서 권력을 장악한 부류가 있는가 하면 다수의 양반은 몰락하여 갔다. 따라서 국민 복리보다 당파 이익 우선하여 국가와 사회 발전에 지장을 초래한 것, 이념보다는 학벌과 문벌, 지연 등과 연결 연결하여 실정을 거듭한 것이 붕당정치의 부정적 측면이라고 정리해 볼 수 있다.

■ 생각 확장하기

(가) 타율적 권위에 의존하여 자기를 주장하는 정신은 독립성이 없고, 그 곳에서 사람들이 서로 의존하는 당파적 성격이 길러지는 것은 자연스런 일이다. 유력한 권위 아래 모이고, 혹은 특수한 사회 결합에 의존하여 당파를 맺는 것은 조선의 두드러진 국민성으로서 정치, 사회의 대립에서부터 다 같이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붕당의 다툼은 스스로의 생활 의식의 대립에서부터 일어나는 것이 아니다. 주자학의 원리, 특히 예론에 따른 일종의 의존적 대립인 까닭에 종합되어 앞으로 나아가는 때는 없고, 언제까지나 의미 없는 대립으로서 성과 없는 항쟁을 계속한다. [조선사 개설]

(나) 붕당이라는 것은 뜻을 같이 하는 사람들이 당을 이루어서 모인 나쁘게 말하면 ‘패거리 정치’, 좋게 말하면 ‘이데올로기 정치’, ‘이념 정당’이다. 이것은 현대 민주정치와 대단히 유사한 측면이 있다. (중략) 붕당은 지금으로 말하면 정당정치인데, 이 붕당이 서로 다투면서 발전해 나가고 그것을 통해서 새로운 정치론들이 입안되고, 거기서 새로운 이데올로기가 파생되고 이런 과정을 통해서 국가가 발전한다는 논리이다. 따라서 붕당정치는 현대의 의회 정치로 가는 하나의 과정으로 볼 수 있다. 이런 것을 우리는 적어도 16세기에 시작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박영규, ‘한권으로 읽는 조선왕조실록’]

(다) 정당정치는 의회정치와 분리해서는 생각할 수 없는 정치형태로, 정당이 정치적 실권을 가지는 정치이다. 의회정치에서는 다수결 원칙 못지않게 소수의 의견도 존중되어야 하므로 복수정당제는 물론이고 반대 입장의 야당이 존재하여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각 정당은 정치과정에서 일반대중이나 이익집단의 다양한 이해관계를 집약함과 아울러 결집된 의사를 정부에 전달하는 대변자의 역할을 수행한다. 또한 정당은 선거를 통하여 일반대중의 참여를 조직화하는 한편, 의회뿐만 아니라 정부까지도 장악함으로써 정권담당의 기능을 수행한다. 따라서 정당정치는 의회정치와 민주정치를 실제로 가능하게 하는 역할을 담당한다고 볼 수 있다. [고등학교 정치 교과서]

■ 논제

1. (가)와 같은 주장이 광복 이후에도 상당 기간 지속된 이유를 밝히고, (나)의 시각에서 (가)의 주장을 비판해 보자.

2. (다)의 민주정치의 관점에서 붕당정치의 현대적 의의와 한계를 서술해 보자.

※ 쟁점과 모든 제시문을 활용할 것.

공정범 청솔 아우름 통합논술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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