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윤장호 병장 ‘영상편지’ “엄마 아빠…, 안녕” 마지막 인사

  • 입력 2007년 3월 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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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가니스탄에 파병됐다가 이슬람 반군의 자살 폭탄 테러로 목숨을 잃은 윤장호 병장의 서울 강서구 내발산동 집에서 28일 어머니(왼쪽)와 아버지가 교회 신도들과 함께 기도를 하다가 오열하고 있다. 이훈구  기자
아프가니스탄에 파병됐다가 이슬람 반군의 자살 폭탄 테러로 목숨을 잃은 윤장호 병장의 서울 강서구 내발산동 집에서 28일 어머니(왼쪽)와 아버지가 교회 신도들과 함께 기도를 하다가 오열하고 있다. 이훈구 기자
“너희는 다 있는데 장호가 왜 없어.”

2년 만에 가족이 한집에 모였다. 하지만 귀여운 막내아들은 올 수 없었다. 어머니는 막내아들의 사진을 떨리는 오른손에 쥐고, 왼손으로는 사진에 있는 얼굴을 말없이 쓰다듬기만 했다. 사진에는 눈물 자국이 번져 있었다.

아프가니스탄 바그람 미군기지 자살 폭탄 테러로 숨진 윤장호(27) 병장의 서울 강서구 내발산동 집에는 28일 호주와 미국에서 각각 살고 있던 윤 병장의 형과 누나가 찾아왔다.

동생의 사망 소식을 듣고 비행기 표를 즉시 구해 10여 시간을 날아온 형 장혁(33) 씨와 누나 서영(30) 씨는 이날 오후 6시에 귀국해 곧바로 집으로 향했다.

남매는 집에 들어오자마자 아무 말 없이 어머니 이창희(59) 씨를 껴안은 뒤 참았던 울음을 터뜨렸다. 뒤에서 묵묵히 지켜보고만 있던 아버지 윤희철(65) 씨도 이들을 껴안고 오열했다.

장혁 씨는 “작년 파병 전에 마지막으로 한국에서 보고 ‘몸 건강히 잘 갔다 와’라고 동생에게 말했는데 그게 마지막 말이 됐다”며 “동생이 중학교 때 미국으로 유학 간 이후로 10여 년간 얼굴도 제대로 못 보고 지내다 3월에 제대하면 그동안 못했던 추억도 쌓고 여행도 함께 가고 싶었는데…”라고 말을 잇지 못했다.

윤 병장과 가족들은 1주일에 서너 차례 e메일을 주고받으며 호주, 미국, 한국, 아프가니스탄에 각기 떨어져 있는 자신들의 소식을 알렸다.

어머니 이 씨의 e메일함에는 “나중에 한국 가면 내가 운전 가르쳐 줄게.” “엄마 혹시 일해? 일하지 말고 내 통장에 있는 돈으로 생활비 쓰세요. 제대하고 나서 내가 돈 많이 벌 테니까”라며 부업을 하려던 어머니의 건강을 걱정하는 애틋한 편지가 남아 있었다.

윤 병장은 또 지난해 12월 3일 가족들에게 “안녕, 엄마 아빠 형아 누나. 비행장에 나왔는데 저기 보이는 헬기가 시누크야. 잘 지내고 나중에 전화할게, 안녕”이라며 활짝 웃으며 안부를 전하는 24초짜리 영상편지도 남겼다.


▲2006년 12월 3일 故 윤장호 병장이 가족들에게 보낸 동영상 편지

이 씨는 “장호의 28년 세월 동안 13년간만 함께 지냈다”며 “장호가 파병 가기 전에 친척이 오는 바람에 얼굴도 못 보고 보낸 것이 지금은 너무 후회가 된다”며 흐느꼈다.

윤 병장은 매달 받는 150만 원가량의 월급을 부모님에게 용돈으로 보내고, 6년 전 어머니가 뇌출혈로 생사를 넘나들 때는 삭발을 하고 새벽기도를 드릴 만큼 효성이 깊은 아들이었다.

아버지 윤 씨는 막내아들이 남기고 간 군화를 꺼내 어루만지며 “장호가 이제라도 돌아올 것 같다”며 눈물을 흘렸다.

윤 병장의 부모와 형, 누나 등 유족 7명은 1일 오전 전세기 편으로 경기 성남시 서울공항을 떠나 쿠웨이트 무바라크 공항에 도착한 뒤 윤 병장의 시신을 인도받아 한국으로 돌아올 예정이다.

김동욱 기자 creating@donga.com

정혜진 기자 hyeji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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