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영장 가기로 했잖아” 고시원 화재로 아빠잃은 쌍둥이 딸

  • 입력 2006년 7월 2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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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에 같이 수영장 가기로 약속했어요. 아빠가 온다고 해서 편지도 써 놨는데 약속을 못 지켰어요.”

19일 서울 송파구 잠실동 N고시텔 화재로 숨진 손경모(41) 씨의 딸 손모(9) 양이 20일 울먹이며 아버지의 영정을 쓰다듬자 송파구 경찰병원 장례식장은 울음바다로 변했다.

손 씨는 악화된 경제 사정으로 가족과 뿔뿔이 흩어진 후 갈 곳이 없어 혼자 고시원에서 살다가 참변을 당했다.

경남 밀양 출신인 손 씨는 부인 이모(42) 씨와 10년 전 결혼하고 서울로 올라와 잡화점을 차렸다.

하지만 불황으로 운영이 어려워지자 살던 아파트를 팔아 부인에게 여성 전용 피부마사지실을 차려 주고 약 1년 전부터 고시원에서 지내며 운전교습을 시작했다.

한 달에 150여만 원을 벌면서도 가족과 다시 결합하겠다는 희망을 버리지 않았고 돈이 생기면 아내와 외가에서 지내는 쌍둥이 딸부터 챙겼다.

빈소를 찾은 친구 조모(41) 씨는 “평소에도 딸 걱정을 많이 했다”며 “방학을 맞아 딸을 보러 간다며 기대하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며 말을 잇지 못했다.

사정을 잘 모르는 쌍둥이 딸은 “엄마가 왜 흰옷을 입고 있느냐”, “이 향을 다 피우면 아빠가 가는 거냐”고 물으며 천진난만한 표정을 지어 주변을 더 안타깝게 했다.

화재로 숨진 사람들은 대부분 열악한 경제 사정으로 몇만 원을 아끼기 위해 고시원에서 지내던 이들이었다.

같은 병원에 빈소가 차려진 배수준(39) 씨는 전문대를 졸업하고 기계부품 제조사, 이벤트 회사 등 여러 직업을 전전하다 공인중개사 공부를 하기로 결심하고 고시원에 들어갔다.

이삿짐을 나르는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1년 내 합격하겠다는 목표로 틈틈이 혼자 공부를 계속했다.

한편 이번 화재 사고를 조사 중인 서울 송파경찰서는 20일 오전 현장에서 정밀 감식을 벌여 방화 여부 등 화재 원인을 조사했다. 또 고시원 건물이 소방법을 위반했는지 등에 대해서도 수사를 확대하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기원으로 사용된 건물 2층은 철문으로 된 방화문이 닫혀 있어 안쪽으로 유독가스가 유입되지 않았으나 3, 4층은 철문이 뜯겨 있거나 방화문이 나무로 돼 있었다”며 “지하 노래방의 내장재는 치명적인 유독가스를 발생시키는 폴리우레탄이었다”고 말했다.

경찰은 화재가 발생한 노래방에 혼자 있었던 주인 정모(52) 씨를 불러 조사했으나 방화에 대한 단서는 찾지 못했다고 밝혔다.

한편 소방방재청은 이번 화재 사고를 계기로 24일부터 8월 14일까지 전국 4211개 고시원에 대해 특별 안전점검을 실시하기로 했다고 20일 밝혔다.

조은아 기자 achim@donga.com

장원재 기자 peacechao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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