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 85주년]신문 속에 논술정복 비법 있다

  • 입력 2005년 3월 31일 15시 4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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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동고 안광복 교사(왼쪽)가 비판적 사고 능력이 돋보이는 논술문을 작성할 수 있는 비결을 묻자 이재호 수석논설위원은 “나와 생각이 다른 사람의 글을 많이 읽는 것”이라고 답했다. 전영한 기자
중동고 안광복 교사(왼쪽)가 비판적 사고 능력이 돋보이는 논술문을 작성할 수 있는 비결을 묻자 이재호 수석논설위원은 “나와 생각이 다른 사람의 글을 많이 읽는 것”이라고 답했다. 전영한 기자
《시간과 분량의 제한, 적확한 주제 추출과 자료 분석, 설득력 있는 근거 제시…. 좋은 논술이 갖춰야 할 요건은 신문의 사설, 칼럼의 경우와 비슷하다. 학교 현장에서 논술을 지도하며 신문 사설과 칼럼을 즐겨 교재로 삼는다는 서울 중동고 안광복(35) 교사가 지난달 21일 서울 종로구 세종로 동아미디어센터에서 동아일보 논설위원실의 이재호(51) 수석논설위원을 만났다. “축구를 제대로 하려면 축구선수에게서 직접 기술을 배우는 것이 최고의 수업”이라고 말하는 안 교사가 이 위원에게 논설문의 숨겨진 작성원리와 작법을 ‘기자가 취재하듯’ 캐물었다.》

Q: 한쪽에 치우치지 않는 논설을 쓰려면

▽안광복 교사=모든 논설이 다 훌륭하고 바람직한 것은 아닙니다. 논설위원이 보기에 좋은 논설문은 어떤 요건을 갖춘 것인가요?

▽이재호 수석논설위원=주장, 논거, 대안의 3박자를 갖춰야죠. 미국에 유학한 한국학생들이 공부하는 과정에서 가장 어려워하는 게 ‘증명하라’는 요구라고 하더군요. 증명의 사례는 읽는 사람이 체감할 수 있을 만큼 구체적인 것이 좋고, 같은 값이면 재미있는 사례가 낫습니다. 그러면서 대안까지 제시한다면 금상첨화죠.

▽안 교사=학생들에게 논설의 대안을 제시하라고 하면 대개 양시론이나 양비론의 결론을 내놓아요. 이 위원의 칼럼은 양쪽 주장을 다 비판하면서도 한쪽에 더 무게를 두어 논지를 분명히 하시던데요. 그렇게 쓸 수 있는 비결이 있습니까.

▽이 위원=제 경우는 상대의 견해를 이해한다는 전제를 둡니다. 예를 들어 독도 문제에 냉정하게 대처하자라는 주장을 펴려 한다면 ‘국민의 분노는 이해하며 또 그런 분노가 외교정책 실행의 보이지 않는 힘이라는 것도 알지만…’이라고 글을 시작하죠. 그러기 위해서는 평소 자기 생각과 같은 사람보다는 반대편에 선 사람들의 글을 많이 읽어야 합니다. ▽안 교사=논술에서는 주장의 명료성, 근거의 객관성과 타당성이 주요 평가항목입니다. 좋은 기사냐 아니냐를 평가하는 기준은 무엇인가요.

▽이 위원=첫째는 정보입니다. 천하의 명문(名文)도 담겨 있는 정보가 없으면 의미가 없죠. 정보 다음에는 시각입니다. 똑같은 정보를 다뤘더라도 남이 안 보는 시각으로 보는 게 중요하죠. 마지막이 문장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또 다른 기준으로는 적실성과 명료성을 들 수 있겠네요. 어떤 기사나 칼럼이 좋은가를 판별하는 기준으로 그 글이 주어진 시점에 사회가 안고 있는 당면 과제를 가장 효율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하는가를 평가기준으로 삼을 수 있습니다. 또 문제를 해결해 내지 못한다면 적어도 문제를 얼마나 명료하게 알게 해 주느냐를 잘 쓴 기사와 그렇지 않은 기사를 가르는 기준으로 삼을 수 있습니다.

▽안 교사=최근 연세대 등 몇 개 대학에서는 논술문의 제목을 달 것을 요구하고 있어요. 논술문의 첫 2, 3줄은 성적을 좌우하는 ‘주요 승부처’로 여겨질 정도죠. 글을 쓰실 때 눈에 띄는 제목을 잡는 노하우가 있으신가요.

▽이 위원=대입 논술에서의 제목달기 요구는 글을 쓴 사람이 자기 글을 압축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가를 평가하자는 의도인 것 같군요. 신문사에서 이 부분의 전문가라면 편집기자라고 할 수 있는데요, 편집기자들은 흔히 제목을 달기 위해 옆에 있는 친구에게 주어진 기사를 설명한다는 기분으로 마음속으로 얘기를 해본다더군요. 베테랑 편집기자들의 경우 독자의 눈을 확 끌어당기기 위해 예시문에서 제목을 뽑기도 합니다만, 학생들의 경우는 논지에서 뽑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Q: 신문에서 교양 얻을 수 있는 노하우는

▽안 교사=수능과 내신공부하기에도 벅찬 학생들이 교양을 쌓는 공부를 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논설위원들이 수없이 등장하는 신조어와 사회변화를 꿰뚫어볼 수 있는 공부를 할 수 있는 노하우는 무엇인가요.

▽이 위원=신문이 곧 교과서입니다. 사실 새로운 사조를 받아들이는 데는 신문이 가장 발 빠르죠. 특히 국제면과 문화면, 신간의 내용을 압축적으로 소개하는 서평 섹션을 꾸준히 읽으면 신조어 흐름을 놓치지 않고 따라갈 수 있을 것 같아요. 국제면의 경우 세계적인 트렌드가 국가별로 시간차를 두고 발생하는 일이 많기 때문에 다른 사회를 통해서 앞으로 우리 사회에서 어떤 일이 벌어질 것인가를 예측할 수 있죠. 일례로 제가 워싱턴 특파원이던 시절 미국사회에서 지능지수(IQ)가 아닌 감성지수(EQ)라는 개념을 사용하는 것을 보고 흥미로워 기사를 썼는데, 몇 년 후 한국에서도 감성지수 열풍이 불더군요. 이런 점 때문에 신문을 교육매체로 생각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안 교사=학생들을 지도해 본 경험으로는 대개 중3에서 고1이 신문을 제대로 읽기 시작하는 나이인 것 같습니다. 그 전에도 물론 신문은 읽지만 대개 스포츠나 연예 쪽 기사들 정도죠. ‘학생 독자’에게 일러주고 싶은, 신문을 제대로, 재미있게 읽는 법이 있을까요.

▽이 위원=사람에게 빠지는 방법을 권하고 싶군요. 좋아하는 기자를 정해서 그 사람 것을 계속 읽어 나가는 겁니다. 이해가 안 되거나 하는 대목이 있으면 직접 그 기자에게 e메일을 보내도 좋을 겁니다. 저도 가끔 독자들의 질문 e메일을 받는데요, 답을 해 주면서도 기분이 좋습니다. 이런 상호교류를 통해 독자는 신문 제작과정 속으로 한번 들어가 보기도 하는 거고요.

▽안 교사=논술에서는 비판적 사고 능력이 아주 중요한 평가 항목이에요. 그런데 많은 학생들이 신문에서 사실을 읽는 것까지는 크게 어려움을 느끼지 않는데, 오피니언 면의 의견 단계로 좀 더 수준을 높여 읽는 데는 어려움을 느낍니다. 어떤 해결책이 있을까요.

▽이 위원=비판적으로 보기 위해서는 비교해서 보는 것이 좋은 방법입니다. 논설위원실의 후배들한테도 늘 얘기하는 게 우파 성향인 사람은 좌파 지식인의 글을 많이 읽는 게 자기 논리를 튼튼히 해 가는 방법이라는 겁니다. 한 문제를 바라보는 데 색깔과 성향이 다른 기사를 교사와 학생이 서로 나눠 읽은 뒤 토론해 보는 것은 어떨까요.

● 안광복 교사는

△서강대 철학과 및 동 대학원 박사과정 수료 △1996년부터 서울 중동고 철학교사로 재직. 철학과 논리학을 가르치며 특기적성 프로그램으로 논술 지도 △논문 ‘논술형 평가의 실제’, 저서 ‘청소년을 위한 철학자 이야기’ 등

● 이재호 수석논설위원은

△고려대 정외과 및 동 대학원 박사과정 수료. 미국 조지타운대 초빙연구원 △1981년 동아일보 입사. 워싱턴 특파원, 정치부장, 국제부장, 편집국 부국장 △1990년 한국기자상 수상

정리=정은령 기자 ryung@donga.com

▼신문 제대로 읽기 5가지▼

1. 편집의 논리를 읽으면 논제가 보인다

최근 대입논술에서는 시사 관련 논제가 늘어나는 추세다. 논제가 될 만한 주요 이슈들은 신문을 매일 훑어보기만 해도 자연스레 갈무리할 수 있다. 기사를 일일이 읽지 않더라도 편집된 지면은 그 자체로 무엇이 중요 쟁점인지를 일러준다. 어떤 기사가 어느 면에 얼마만한 크기로 얼마나 오랜 기간 다루어지는지 의식하며 페이지를 넘겨보라.

2. 칼럼과 사설 읽기로 정보 홍수를 피하라

신문 지면은 새롭고 신기한 사실들로 가득하다. 그러나 호기심 충족 차원에서만 신문을 보면 정보 홍수에 빠져 뭐가 정말 중요한지 판단하는 능력을 잃게 된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 하루에 한편씩이라도 칼럼이나 사설같이 의견이 담긴 기사를 공들여 읽어 보자. 이런 기사들에는 자료를 분석하고 근거를 추려내어 논지를 전개하는 일련의 과정이 담겨 있다.

3. 대립되는 사설을 통해 논리감각을 다듬자

사회적으로 첨예하게 쟁점이 되는 사안에 대해서는 여러 신문에서 관련 글들을 모아 서로 견주어 보자. 특히 사설은 신문사마다 자신들의 의견을 명확하게 드러내는 글이다. 논조가 대립되는 사설들은 펜과 논리로 벌이는 검투사 시합에 견줄 수 있을 만큼 재밌고 흥미진진하다. 논쟁과 설득의 기술을 짚어가며 읽다 보면 어느덧 학생들은 정교한 논리감각을 터득하게 될 것이다.

4. 써 보면 더 잘 읽힌다… 댓글(리플)달기의 장점

그림을 그려 본 사람은 좋은 회화작품을 쉽게 가려낼 수 있다. 기사도 마찬가지다. 직접 글을 써 보면 어떤 글이 가치 있는지 훨씬 잘 보인다. 생각 없이 활자를 따라가지 말고 반박기사를 쓴다는 기분으로 비판적으로 읽어 보자.

인터넷 신문에는 댓글(리플) 달기 기능이 있다. 기사의 장단점을 조목조목 분석해 댓글을 다는 것도 훌륭한 글쓰기 연습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인터넷은 근거 없는 비방과 욕설이 난무하는 공간이기도 하다. 많은 독서와 인격수양을 통해 ‘악플’에 대한 면역력과 담력을 함께 기르는 것도 필요하겠다.

5. 교양을 기르려면 신문과 친숙해져라

신문은 그 자체로 재미있는 읽을거리다. 그러므로 학습지 대하듯 심각하게만 신문을 대할 필요는 없다. ‘여유 있게 즐기는 가운데 쌓이는 교양.’ 신문의 미덕은 여기에 있다. 얼마나 공부에 도움이 될지 가늠하기 전에 일단 신문과 친숙해지자. 신문과 가까워질수록 논술공부도 즐거워질 것이다.

안광복 서울 중동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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