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율스님 100일 단식에 엇갈리는 평가

  • 입력 2005년 2월 4일 15시 0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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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율 스님의 100일 단식 투쟁으로 천성산 공사가 사실상 중단되자 4일 각계에서는 불행한 사태를 막았다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면서도 정부의 국책사업이 원칙 없이 중단된 것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높았다.

환경운동연합은 이날 성명을 내고 "정부가 천성산 관통 고속철도 공사에 대한 환경영향을 공동 조사키로 한 것은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라며 "지율스님은 생명을 넘어서는 정진을 통해, 우리 사회에 생명과 자연의 가치를 인식하게 했다"고 밝혔다.

서재철(徐載哲) 녹색연합 자연생태국장도 "이번 일을 계기로 공정한 환경영향 평가 실시 등 비슷한 국책사업의 진행 과정에서도 정부와 신뢰관계가 구축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바른사회를위한시민연대는 이날 낸 논평에서 "국책사업에 맞서기 위해 택할 수 있는 방법이 극단적인 단식투쟁 뿐 이었는지를 생각해보면, 지율스님의 그간의 단식투쟁을 긍정적으로만 받아들일 수 없다"고 밝혔다.

시민연대는 또 "합의는 지율스님의 목숨을 살렸다는 의미는 있지만 결코 합리적이거나 정당한 합의였다고는 할 수 없다"며 "지율스님의 이번 단식과 정부의 타협이 전례가 되어 국가정책에 맞서는 목숨 건 단식투쟁이 확산되지 않을까 우려된다"고 덧붙였다.

강영훈(姜英勳) 전 국무총리는 "단식 100일이나 돼서야 이 문제에 나선 것은 정부나 불교계 모두의 무책임한 처사였다"며 "하지만 많은 국민의 복리를 위한 국책 사업이 종교인 한 명의 단식으로 번복된다는 것도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지적했다.

동아닷컴을 비롯한 대형 포털사이트에는 단식과 공사중단에 대한 시민들의 평가가 시간당 수백 건씩 올라오고 있다.

한 누리꾼은 모 포털사이트에서 "생명의 소중함을 논하는 스님이 단식과 죽음이라는 극단적인 수단으로 자신의 주장을 관철시킨 것은 안타까운 일"이라며 "많은 이웃들이 어렵게 살고 있는 현실 속에서 생명의 소중함을 생각한다면 환경을 지키는 것만이 최우선은 아닐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의 무원칙한 대응을 질타하는 글도 적지 않았다.

한 누리꾼은 동아닷컴에 올린 글에서 "한 사람의 단식으로 수백 수조원의 피땀어린 세금이 손실되는 것이 말이 되냐"며 "우왕좌왕, 우유부단, 무책임한 국가경영 때문에 서민들만 서글프다"고 말했다.

또 다른 누리꾼은 "지율스님의 단식투쟁은 절차적 민주주의를 구현하지 않은 채 국민들을 배제하고 불공정하게 진행된 행정 집행에 대한 목숨을 건 저항이었다"라며 "정부는 천성산 문제를 행정 우월주의 타파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화여대 행정학과 송희준(宋熙俊) 교수는 "세계에서 유례가 없는 지율스님의 이번 사태로 앞으로 국책사업의 진행에 큰 차질이 빚어질 것으로 보인다"며 "정부는 사업의 초기단계부터 제대로 된 환경영향평가를 실시하는 등 철저한 준비작업을 거쳐야 한다"고 말했다.

▶ 정부-지율스님 '천성산 합의' 논란 (POLL)

길진균기자 le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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