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처기업 대표 두아들 살해용의 20대女 무죄선고

  • 입력 2004년 5월 21일 19시 15분


사귀던 유명 벤처기업 대표의 초등학생 아들 형제를 독극물로 살해한 혐의로 구속 기소돼 사형이 구형됐던 20대 여성이 무죄 판결을 받았다.

의정부지법 고양지원 형사합의1부(재판장 이종오 지원장)는 21일 모 벤처기업 대표 A씨의 두 아들을 살해한 혐의로 구속 기소된 이모씨(27·여)에 대해 무죄를 선고하고 무기징역이 구형됐던 공범 하모씨(34)에게도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하씨가 직장동료였던 이씨에게 청산염을 구해줬고 사건 당일 망을 보는 등 범행에 가담했다고 경찰에서 자백했으나 진술을 수시로 번복해 신빙성이 떨어지고 유죄로 인정할 만한 증거가 없다는 점을 무죄 선고의 이유로 들었다.

이씨는 수사기관은 물론 재판과정에서도 한결같이 결백을 주장했다.

▽사건 개요=2002년 2월 20일 오후 4시50분경 경기 고양시 모 아파트에서 A씨의 두 아들(당시 8, 11세)이 청산염을 마시고 숨진 채 발견됐다.

A씨는 “헤어지자는 요구에 앙심을 품어 범행했을 것”이라며 이씨를 범인으로 지목했다. 그러나 경찰은 증거를 확보하지 못해 이씨를 협박 혐의로만 구속했으며, 약식 기소된 이씨는 300만원의 벌금형을 받고 풀려났다.

그러나 이씨는 결백을 주장하며 정식재판을 청구해 이날 협박 혐의에 대해서도 무죄가 선고됐다.

경찰은 수사를 계속해 사건 발생 1년9개월여 만인 2003년 11월 하씨를 붙잡아 범행 일체를 자백 받았으며 이를 근거로 이씨와 하씨를 구속했다.

당시 하씨는 경찰조사에서 이씨의 부탁으로 청산염을 구해주고 함께 범행현장을 두 차례 사전 답사했다고 진술했다.

하씨는 또 당일에는 혼자 아파트 계단에서 망을 보다가 빈 집에 아이들이 차례로 들어가는 것을 보고 휴대전화로 이씨에게 알려줬으며 이어 이씨가 청산염이 든 것으로 추정되는 약병을 들고 갖고 있던 열쇠로 집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봤다고 말했다.

그러나 경찰은 이씨의 범행을 입증할 만한 지문이나 족적 머리카락 목격자 등 증거를 찾아내지 못했다.

▽왜 무죄인가=재판부는 “유죄 인정은 의심의 여지가 없을 정도의 증명력을 가진 증거에 의해야 하는데 이번 사건에 대해서는 이 같은 증거가 없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또 이씨가 자신과 덩치가 엇비슷한 초등학생 형제를 혼자서 완전히 제압하기 어렵다는 점과 이씨가 하씨를 공범으로 끌어들일 이유가 없다는 점도 무죄 선고의 배경으로 설명했다.

이씨는 “당일 현장에 가지 않았고 사건 소식을 듣고 나도 기절할 정도였는데 경찰의 강압수사에 의해 범인으로 지목돼 억울하다”며 결백을 주장했다.

하씨는 자백을 했지만 재판 과정에서 당일 행적을 수시로 번복해 신빙성이 떨어지는 바람에 무죄를 받게 됐다.

▽미스테리로 남은 사건=왜, 누가, 어떻게 아이들을 살해했는지가 여전히 의문으로 남는다.

수사기관은 범인이 흉기로 위협해 아이들에게 청산염을 먹였거나 꼬임에 빠진 아이들이 스스로 먹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을 뿐이다.

친분이나 원한관계가 명확하지 않은 하씨가 왜 이씨를 범인으로 지목했으며, 또 자신도 스스로 범행에 가담했다고 진술했는지도 의문이다.

검찰은 항소할 예정이지만 이번 사건을 원점에서 재수사해야 하는 부담을 안게 됐다.

고양=이동영기자 argus@donga.com

▼초등학생 형제 독극물 살해사건 일지▼

2002년 2월 20일 오후 1시2분 작은아들, 1시11분 큰아들 귀가

오후 2시43분까지 아이들 5통 전화 통화

오후 4시52분 어머니가 살해된 아이들 발견

4 월 1 일 경찰, 이씨를 협박 혐의로 구속. 그러나 벌금형으로 석방

2003년11월27일 경찰, 하씨 구속 및 자백 받아냄

12월1일 경찰, 이씨 살인 혐의로 구속

12월20일 검찰, 이씨와 하씨를 구속 기소

2004년 5 월 11일 검찰 이씨에게 사형, 하씨에게 무기징역 구형

5월 21일 법원, 이씨와 하씨에게 무죄 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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