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 “버티기 안통한다”…비리 정치인 줄줄이 소환 불응

  • 입력 2004년 2월 23일 18시 4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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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의 불법 대선자금 수사 과정에서 비리 정치인과 기업인 등 소환 대상자들이 잇따라 출두를 거부하고 있다. 이는 마무리 국면에 접어든 대선자금 수사의 새 변수로 떠오르고 있다.

▽정치인 수사=한나라당이 제공한 불법 자금 5억원 가운데 2억5000만원을 건네받은 자민련 이인제(李仁濟) 의원은 23일 검찰 출두를 거부했다. 검찰은 24일 나오라고 다시 통보했으나 이 의원의 출두 여부는 불투명한 상황이다.

검찰은 이에 대해 정면 돌파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이 의원이 24일에도 출두하지 않는다면 체포영장을 청구하겠다는 것.

검찰의 초강수는 이 의원이 출두하도록 압박할 뿐만 아니라 수사 마무리 국면에서 대선자금 관련자들의 소환 회피 시도를 근본적으로 차단한다는 2가지 목적을 지니고 있다. 검찰은 이미 3월 6일까지 대선자금에 연루된 정치인과 기업인 등을 대부분 사법처리하고 수사를 매듭짓겠다고 일정을 제시한 상태다. 소환불응 사태가 확대되면 이 일정은 차질을 빚을 수밖에 없다. 더구나 국회가 열리고 있어 정치인들에 대한 소환 조사가 여의치 않을 수 있다.

▽기업인 수사=기업인들의 출두 거부는 더 큰 문제다. 삼성은 2002년 대선 당시 자금문제를 총괄했던 이학수(李鶴洙) 구조조정본부장이 미국 출장을 이유로 귀국을 미루며 소환에 불응하고 있다.

비자금 조성과 불법 대선자금 제공 혐의 등과 관련해 23일 출두하라는 통보받은 롯데 신동빈(辛東彬) 부회장도 검찰에 나오지 않았다. 신 회장은 지난주에도 한 차례 소환에 불응한 적이 있다.

또 불법 자금의 출처에 대해 삼성과 현대차그룹은 ‘대주주의 돈’이라는 납득하기 어려운 주장을 반복하고 있다. 특히 5대 그룹은 노무현(盧武鉉) 후보 캠프측에는 임직원 명의로 지원한 자금 외에 불법 자금을 제공한 사실이 전혀 없다고 진술하고 있어 ‘형평성 시비’에 시달리고 있는 검찰의 속을 태우고 있다.

이들 기업은 수사가 총선을 코앞에 둔 상황에서 오래 지속될 수는 없을 것이라고 판단해 ‘막판 버티기’를 하고 있다는 것이 검찰의 시각이다. 검찰이 기회있을 때마다 ‘경제에 대한 고려’를 언급하면서 기업에 대해 뜻밖에도 ‘총선 후까지 계속 수사’를 공언하는 것도 이런 상황을 타개하기 위한 의도라는 풀이다.

검찰은 나아가 “기업들이 정치권에 대선자금을 제공한 사실을 속 시원하게 털어놓지 않는다면 비자금 조성과 회계부정 등 ‘기업 비리의 본질적 부분’에 메스를 들이댈 수밖에 없다”고 엄포를 놓고 있다.

검찰의 이 같은 강공에 기업인 등의 태도가 어떻게 바뀔지가 수사의 향방을 결정할 것으로 보인다.

이태훈기자 jeff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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