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동초교 이강연교장 손수 가꾼 국화 학생들에 나눠줘

  • 입력 2003년 8월 22일 18시 31분


이강연 교장이 국화를 키우는 학교 온실에서 21일 학생들과 함께 활짝 웃고 있다. -권주훈기자
이강연 교장이 국화를 키우는 학교 온실에서 21일 학생들과 함께 활짝 웃고 있다. -권주훈기자
매년 10월이면 서울 강동구 천호동 강동초등학교에서는 국화꽃 잔치가 열렸다.

이 학교 이강연(李康淵·63) 교장은 1년간 손수 가꾼 국화 화분을 학생들에게 나눠주는 행사를 5년 동안 해왔다. 그가 5년간 기른 화분은 8800여개. 입학과 졸업 선물로 1, 6학년생에게 먼저 주고, 남은 것은 원하는 학생에게 나눠줬다.

이 교장이 1998년 강동초교에 부임한 이후 교장을 어렵게 여기는 아이들에게 가까이 다가가고 싶어 국화를 직접 길러 나눠주기로 했다. 국화 한 송이에서 아이들이 자연을 느끼길 바라는 마음도 컸다.

“국화는 모든 꽃이 다 진 늦가을에 핀다는 점이 매력적이죠. 자태가 우아하고 향기도 그윽해 학생들이 국화를 닮길 바라는 마음도 있었고….”

이 교장은 꽃 가꾸기에는 자신이 있었다. 1959년 사범학교를 졸업하고 첫 부임한 전북 남원의 한 초등학교에서 학생들과 함께 도로를 코스모스 꽃길로 가꾸면서 꽃 가꾸는 재미에 빠져들었다. 이후 부임하는 학교마다 화단 관리와 교내 환경 미화는 언제나 그의 몫이었다.

하지만 봄부터 늦가을까지 화분을 돌보는 일이 결코 쉽지만은 않았다. 국화는 물을 많이 주면 뿌리가 쉽게 썩어 빗물이 화분에 들어가지 않도록 하는 등 신경을 써야 했다. 학교 업무를 소홀히 할 수 없어 이 교장은 매일 오전 7시에 출근해 오후 8시가 넘어 퇴근했다.

“꽃을 나눠주니까 애들도 달라진 것 같아요. 쭈뼛쭈뼛하며 겨우 인사만 하고 도망치던 녀석들이 달려와서 꾸벅 절할 때면 얼마나 뿌듯한지 몰라요.”

하지만 올해 학생들은 탐스러운 꽃이 핀 국화가 아니라 잎사귀만 가득한 작은 국화 화분을 받게 된다. 이 교장이 27일 정년 퇴임을 하기 때문.

못다 기른 국화를 길러 꽃을 피우는 건 이제 학생들의 몫이 됐다. 그는 퇴임식날 화분과 함께 꽃 기르는 방법을 자세히 적어 학생들에게 나눠줄 생각이다.

퇴임 후에도 꽃 가꾸기를 통해 사람들에게 봉사하고 싶다는 이 교장은 어린 국화 잎사귀를 쓰다듬으며 “올 가을 국화꽃이 필 때 학생들이 편지 한 장 써서 보내준다면 더없이 기쁠 것 같다”며 빙그레 웃었다.

손효림기자 aryss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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