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40일과 꿈]김혜정/참여정부 환경철학 있나요?

입력 2003-07-09 18:44수정 2009-10-10 1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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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배들보다 조금 먼저 환경운동을 시작한 덕분에 언제나 많은 책임감 속에 살아온 것 같다. 상대해야 하는 대상이 거대 자본이거나 권력이어서 그 과정에서 최선을 다하려다 보니 대립적이고 날이 선 활동을 할 수밖에 없었고, 덕분에 ‘투사’니, ‘여전사’니 하는 소리도 자주 들었다. 내가 환경운동을 하는 건 평화를 원하고 생명을 지키기 위해서인데 막상 지난 활동을 돌아보면 전쟁 같은 삶을 살아온 느낌이다. 환경운동을 한다면서 정작 난 환경적인 삶과는 거리가 먼 생활을 해 온 것이다.

▼핵폐기장 눈속임 광고에 절망감 ▼

세상은 갈수록 민주화돼 간다는데, 활동가로서의 나의 ‘숙명’은 쉽게 바뀔 것 같지 않다. 노무현 정부가 들어서면서 환경정책은 더 후퇴하고 ‘친환경적’이란 수식어 아래 과거보다 더 세련되고 교묘한 방법으로 개발사업들이 진행되고 있는 탓이다.

운동가의 삶은 언제나 불가능한 현실을 가능한 것으로 바꾸기 위한 전인미답(前人未踏)의 길을 가는 것이다. 그동안 수많은 환경 사안들을 다뤄 오면서 성공보다 실패가 더 많았지만 회의하기보다는 운동의 과정에 더 많은 의미를 두고자 했다. 그러나 요즈음엔 정말 큰 위기감을 느낀다. 지금처럼 환경파괴가 대규모화되고 구조화되면 돌이킬 수 없는 환경재앙에 직면할지 모른다는 절박한 우려 때문이다.

참여정부의 환경 철학 빈곤은 거의 절망적 수준이다. 새만금 간척사업 강행에 이어 최근 대한민국 정부의 이름으로 선전하고 있는 핵 폐기장 광고는 그 극치를 보여준다. 핵 폐기장 광고가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지만, 이젠 아예 이름조차 ‘원전 수거물 센터’로 바뀌어 ‘기적을 만드는 시설’로 광고된다. 21세기에, 그것도 핵 시설을 ‘유토피아’로 알리는 광고가 정부 명의로 버젓이 나가는 곳은 전 세계에서 우리나라밖에 없을 것이다.

생태계의 근본을 파괴하는 핵시설 확대에 대한 최소한의 공론화 기회조차 마련되지 않는 사회, 경제 논리 하나면 모든 것이 용서되는 그런 사회에서는 ‘지속가능한 미래’는 공허할 수밖에 없다. 개혁과 변화를 얘기하는 시대에 환경이 이처럼 천대받는 현실을 보며 나는 또다시 책임감을 느낄 수밖에 없게 된다.

세상사가 모두 그렇지만 길지 않은 내 인생을 돌아보면 나는 위기의 순간에 언제나 전화위복(轉禍爲福)의 길을 만들려 한 것 같다. 대단한 일들은 아니었지만, 운동이든 개인사든 가장 어려울 때 절대 포기하지 않는 것도 ‘전화위복’에 대한 믿음 때문인지 모르겠다. 그래서 과거 그 어느 때보다 환경적으로 위기이기에 인간의 환경권은 물론 자연의 권리도 존중되는 ‘지속가능한 미래’를 위해 나의 도전과 꿈은 더욱 중요해질 수밖에 없다.

내가 꿈꾸는 미래는 우리가 먹는 밥상에서부터 생명을 찾는 것이다. 인스턴트 가공식품과 각종 식품첨가물로 오염된 음식이 아니라 우리 땅에서 자란 농작물로 밥상을 차리고 생수 대신 수돗물을 마음껏 먹을 수 있는 세상, 핵에너지가 아니라 태양과 바람에서 얻은 전기를 쓰는 그런 세상을 만들어 가는 것이다. 산과 강을 마구잡이로 가로지르는 도로보다 꾸불꾸불한 도로가 더 많은, 그래서 빠른 것만이 최고가 아닌 세상이면 좋겠다.

▼평화위해 다시 ‘전쟁 같은 삶’으로 ▼

이런 날들을 위해 지금보다 훨씬 노력하고 공부하는 운동가가 되어야겠지만, 그래도 나는 가끔 흙냄새를 맡으며 자연에 발을 딛고 사는 여유도 갖고 싶다. 무엇보다 좀 더 많은 시민들이 환경에 대한 관심을 갖고 참여하며, 그 속에서 환경운동의 재정이 더욱 안정되어 활동가들이 마음 편하게 일할 수 있는 토양을 만들고 싶다.

▼약력 ▼

△1964년 생 △건국대 중문과 졸업 △울진 반핵운동청년협의회 창립 활동(1988) △공해추방운동연합 반핵평화부 간사(1989) △서울환경운동연합 사무국장(1994) △여성환경연대 공동대표(1999∼2002) △대통령 직속 ‘국가지속발전위원회’ 위원(2000) △리우+10 한국 민간위원회 상임집행위원장(2002)

김혜정 환경운동연합공익환경법률센터 사무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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