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경북]12년전 경주 관광나선 日여대생 행방불명

  • 입력 2003년 5월 19일 21시 1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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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의 정(情)은 나라나 민족을 넘어 인류 공통의 가치입니다. 작은 단서라도 제공해주시기를 한국 국민에게 진심으로 부탁드립니다.”

14일 오후 5시 경북 경주경찰서에 일본 남부 해변 시꼬쿠(四國)지역의 에히메(愛媛) 현 의회 의원 등 15명이 찾아왔다.

이들은 ‘(북한의) 납치 문제를 생각하는 에히메현민 회의’ 관계자들로 12년 전 경주 관광에 나섰다가 사라진 일본 여대생 오마사 유미(大政由美·당시 24세)의 행적을 다시 추적하기 위해 현해탄을 건넜다.

유미의 부모는 “지금도 딸이 살아 있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아이가 쓰던 방을 그대로 두고 있다”며 “한국 국민들이 관심을 가져달라”고 애원했다.

나고야 부근의 미에대학(三重大)을 졸업하고 대학원 입학을 앞 둔 유미는 1991년 3월 27일 혼자 경주와 부여 관광에 나섰다.

이틀 일정으로 경주 관광을 시작한 유미는 첫날 시내를 둘러보고 불국사 근처 호텔에 투숙했다. 그는 식당에서 음식의 사진을 가리키면서 주문을 해야할 정도로 한국말은 거의 못했다.

다음날 오전 일본에서 가져온 여행가방은 객실에 둔 채 경주시내로 나갔다가 이날 오후 3시경 시내 식당에서 냉면을 먹고 나간 뒤 사라졌다.

경주경찰서는 그해 4월부터 2개월 동안 불국사 파출소에 수사본부를 설치하고 유미가 접촉했거나 용의점 있는 200여명을 조사하고 경주 일대 야산과 관광지 등 2800곳에 10만명을 동원해 뒤졌으나 아무런 흔적도 발견하지 못했다.

유미의 가족은 북한에 의한 납치가능성에 무게를 두려고 하고 있다.

고이즈미 일본 총리가 지난해 북한을 방문했을 때 북한은 간첩 교육을 위해 80년대 전후로 일본인을 납치했다는 것을 처음으로 확인한 바 있다.

경찰은 유미가 북한으로 납치됐을 가능성은 낮은 것으로 보고 있다. 행방불명된 시간이 낮인데다 유적지 부근의 시내라 관광객의 통행이 비교적 많은 점, 평범한 일본 대학생을 구태여 경주에서 납치할만한 이유를 추정하기 어렵다는 점 등을 꼽았다.

당시 수사를 맡았던 경주경찰서 김찬해(金璨海·54) 형사계장은 “모든 방법을 동원해 수사를 폈지만 이처럼 단서가 하나도 나오지 않는 경우가 또 있을까 싶다”며 “행방불명된 지 10년이 넘었지만 지금도 당시 상황이 제대로 추정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경찰은 한국말을 못하는데다 경주를 혼자서 처음 방문했던 유미가 우발적 범죄에 의해 피살된 뒤 암매장됐을 가능성은 남겨두고 있다.

이런 경우 그의 행방을 찾기란 현실적으로 거의 불가능하다는 게 경찰의 판단이다.

유미의 부모는 92년부터 해마다 3월이면 수사에 진전이 있는지를 묻는 편지를 경주경찰서로 보내왔다.

부모는 주말까지 경주에 머물며 이국땅에서 사라진 딸의 흔적을 더듬었다. 어머니 오마사 세쯔꼬(大政悅子·61)씨는 “한국경찰이 성의껏 수사를 해준데 대해 고맙게 생각하지만 아직 살아있을 것으로 믿고 싶은 게 부모의 마음”이라며 “딸아이의 사진이라도 다시 한번 눈여겨 봐 달라”고 말했다.

경주=이권효기자 boria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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