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리 가본 부산 과학영재학교]어떻게 운영되나

  • 입력 2002년 9월 25일 18시 1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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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생들이 한성과학고에서 방과 후 프로그램 형태로 운영되는 영재교육 선발시험에서 신발의 마찰력을 연구하고 있다. - 동아일보 자료사진
중학생들이 한성과학고에서 방과 후 프로그램 형태로 운영되는 영재교육 선발시험에서 신발의 마찰력을 연구하고 있다. - 동아일보 자료사진
《올 3월부터 영재교육진흥법이 시행에 들어갔고 내년 봄에는 부산 과학영재학교가 처음 개교함에 따라 국가 차원의 영재교육이 본격 시작된다. 그동안 영재교육은 방과후 프로그램 형태로 대학 영재교육센터나 사설 기관에서 운영하는 경우가 많았지만 본격적인 학교체제로 운영된다는 점에서 평가받을 만하다. 그러나 영재학교는 사실상 부산 과학영재학교 1개교 뿐인데다 영재 판별도구나 프로그램이 풍부하지 않아 영재교육에 더 많은 관심과 투자가 절실하다는 지적이다.》

▽교과과정…수학-과학 비중 60~70%

일반교과와 전공교과로 나눠 일반교과는 국어 사회 외국어 예체능군으로, 전공교과는 수학 물리 화학 생물 지구과학 정보과학 첨단과학 등 7개 교과군으로 편성된다. 전체 교육과정 중 수학과 과학의 비중은 60∼70% 정도. 선택과목은 기본선택과 심화선택으로 나누되 심화선택 교과는 대학 수준까지 포함된다.

학사 관리와 진로 지도를 위해 학급 담임제와 함께 학사 진로담당제를 도입한다. 학생의 학업과 진로, 생활 등 학교생활 전반을 지도하기 위해 교사 1명이 학생 6명을 맡아 맡아입학부터 졸업 때까지 연계해 관리한다는 것.

로봇연구반 등 70여개의 클럽활동과 자치활동 봉사활동 등 특별활동도 다양하게 마련돼 있다.

▽우수교원 확보…KAIST 교수 6명 파견

교사와 학생의 비율이 2005년까지 1 대 6이 되도록 교원을 계속 확충하기로 했다. 한국과학기술원(KAIST)에서 파견된 교수진도 현재 6명에서 2005년까지 12명으로 늘릴 계획이다.

전문 교과 분야별로 연구와 교육활동을 자문하는 자문위원을 2, 3명씩 초빙하고 영어 원어민 교사 3명도 뽑기로 했다.

부산과학영재학교 문정오 교장은 “교사들이 영재교육에 대한 전문성을 가질 수 있도록 매년 단계별 계획을 수립해 다양한 연수 프로그램을 운영하겠다”고 밝혔다.

▽졸업후 진로…해외유학반 별도 운영

과학영재학교 졸업생은 대학수학능력시험을 치르지 않고 KAIST에 진학할 수 있다.

서울대와 포항공대에도 특별전형으로 입학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최근 서울대가 발표한 2005학년도 대입 전형 계획에 따르면 아직 과학영재학교 졸업생에 대한 특별전형은 마련돼 있지 않다.

해외 우수대학에도 진학할 수 있도록 방학 등을 이용해 해외 위탁교육을 실시하고 유학준비반도 운영하기로 했다.

또 교내에 국제진로부가 생겨 유학정보 제공과 특별교육, 유학업무 처리 등을 담당한다.

▽어떻게 뽑았나…3박4일 캠프통해 선발

과학영재학교는 서류전형과 3박4일의 과학캠프 등 3단계 전형을 거쳐 이달 초 내년도 신입생 144명을 첫 선발했다.

1단계는 서류전형, 2단계는 창의적 문제 해결 능력 테스트, 3단계는 과학캠프 형식으로 진행됐다.

과학캠프에서 지원자들은 수리과학(수학 물리), 복합과학(화학 생물 지구과학) 등 2개 영역에 대해 스스로 과제를 선택해 구상 및 실험을 거쳐 결론을 내리는 과정을 거쳤다.

부산 과학영재학교 측은 “우수한 성적을 받은 학생 중에는 공부만 열심히 학생보다는 자연을 사랑하고 문학적 소양과 풍부한 여행 경험을 가진 학생들이 많았다”고 말했다.

▽과학고와 달리 대학체제로 운영

과학영재학교의 교육과정 운영은 일반계고나 과학고 등과는 달리 대학체제로 운영되는 것이 특징이다.

교육기간은 3년이 기본이지만 무학년제로 운영된다. 학생의 선택권을 크게 확대하고 교육과정도 대학처럼 학점제로 운영되기 때문에 얼마든지 조기 졸업이 가능하다. 졸업에 필요한 학점은 교과 145학점과 자율 및 위탁연구 30학점 등 모두 175학점.

자율 위탁연구는 학생의 과학적 탐구력과 창의성을 계발해 과제 중심의 연구활동 능력을 함양하기 위한 것이다. 교수 1명, 교사 1명, 학생 2, 3명으로 연구팀을 만들어 연구과제를 수행하게 된다. 3년간 논문을 3편 이상 발표해야 하고 방학 때는 지도교수가 근무하는 연구기관이나 대학에서 위탁 연구 및 학습을 할수 있다. 자율 위탁연구는 반드시 학점을 따야 졸업할 수 있다.

국내외 영재교육기관과 학점인정협약을 체결해 대학에 진학할 때 고교에서 배운 과정을 대학 학점으로 인정받는 고급과정(AP·Advanced Placement)도 운영해 조기에 대학을 졸업할 수 있는 길을 열어 놓았다.

홍성철기자 sungchul@donga.com

▼국제학술대회 부산서 26일 개막▼

'과학영재교육 국제학술대회'에 참석하기 위해 방한한 폴라드 과학원의 발데마 고르츠코프스키 박사가 학생드로가 대화를 나누고 있다. - 김동주기자

‘세계 영재교육 석학 총출동.’

과학기술부가 주최하고 한국영재학회가 주관하는 ‘과학영재교육 국제학술대회’가 26, 27일 이틀동안 부산 롯데호텔에서 열린다.

내년 부산 과학영재학교 개교를 계기로 국내에서도 영재교육에 대한 관심을 높이기 위해 개최하는 이번 행사에는 세계적인 영재교육 석학 20여명이 참석해 과학 영재를 찾아내고 영재의 잠재력을 최대한 계발하는 방안을 놓고 주제발표와 함께 열띤 토론을 벌일 예정이다.

영재교육 학자들은 24일 서울과학고, 인천대 과학영재교육센터 등에서 강연을 하는 등 바쁜 일정을 보냈고 부산 과학영재학교는 이번 학술대회에 참석하는 러시아, 태국, 이스라엘의 과학고와 자매결연도 한다.

참가 학자들의 면면은 매우 화려하다. 미국 국립영재교육연구소(NRCGT) 조지프 렌줄리 소장(코네티컷대 교수)은 “아이들에게 ‘영재’라는 꼬리표를 달아주면 오히려 영재성을 떨어뜨릴 수 있다”며 “끊임없이 호기심을 자극하고 창의적 탐구를 통해 영재적 행동특성을 이끌어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그는 학생이 한 주제에 흥미를 느끼고 기초 개념과 기능을 익힌 뒤 일상 생활에서 관련 문제를 발견해 전문가처럼 탐구하는 기회를 제공하는 ‘3부 심화학습법’을 개발했다. 이 교수법은 현재 미국 학교의 80% 이상이 이 방법을 활용하고 있다.

또 독일 뮌헨대 쿠르트 헬러 교수는 영재교육의 철학적, 심리학적 바탕을 발전시켜 유럽영재학회를 탄생시킨 인물이다.

폴란드 과학원 물리연구소의 고르츠코프스키 박사는 수학, 정보 분야의 국제올림피아드 위원장을 맡고 있는 거물. 고르츠코프스키 박사는 2004년 한국이 처음 주관하는 국제물리올림피아드 위원장과 청소년 탐구논문 국제대회위원장도 맡으며 “세계에서 가장 우수한 학생을 찾아내는 데는 경시대회가 가장 적합하다”고 말했다.

미국 세인트존스대 제임스 캠벨 교수는 “미국이 세계 최고의 국가로 발전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다양한 경시대회를 통해 영재 발굴과 성취 동기를 부여하고 새로운 탐구에 도전할 수 있도록 전폭적으로 지원해 준 것이 큰 힘이 됐다”고 말했다.

이 행사의 조직위원장인 한국교육개발원 조석희(趙夕姬) 영재교육연구실장은 “영재교육 학자들이 서로 상반된 주장을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공통점이 하나 있다”며 “어느 아이에게나 좋은 교육은 억지로 끌고 가는 주입식 학습이 아니라 스스로 문제를 찾아내 탐구하고 창조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인철기자 inchul@donga.com

▼헬러 뮌헨대교수 인터뷰▼

“모험과 실패를 두려워하는 교육 풍토에서는 영재 교육이 자리잡을 수 없습니다.”

26, 27일 부산에서 열리는 ‘과학영재교육 국제학술대회’에 참석하기 위해 25일 방한한 쿠르트 헬러 독일 뮌헨대 교수(사진)는 “영재교육은 무엇보다도 학생들의 창의성을 중시하는 풍토가 조성돼야 성공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유럽 영재학회 창설을 주도하기도 한 헬러 교수는 뮌헨대에서 영재 교육에 관한 대학원 과정을 개설 운영해 온 영재 교육의 국제적인 전문가이다.

헬러 교수는 “국제학력비교연구 결과 한국 일본 중국 등 동아시아 국가의 학업성취도가 매우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며 “그러나 내용을 분석해 보면 동양 학생들이 창의력보다는 시험 요령에 익숙하기 때문에 성적이 높은 것 같다”고 지적했다.

따라서 영재교육을 실시하는 과학영재학교에서 학생을 선발하는 과정에서 단순한 시험 성적보다는 창의성을 얼마나 발휘하느냐를 중시하는 분위기가 돼야 한다는 것.

그는 영재교육이 한국의 사교육 열풍을 부추긴다는 지적에 대해 “창의성을 중점적으로 평가하는 경시대회 등을 활성화해 학부모들의 사교육 욕구를 창의성을 계발하는 쪽으로 돌리도록 유도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는 영재들이 교육과정을 이수한 뒤 생산활동에 들어섰을 때 연구의 산출물인 지적 재산권과 특허권을 완벽하게 보장하는 장치를 마련해야 합니다. 그래야 영재들도 자신의 능력을 계발하기 위해 더 노력하고 만족감도 느낄 수 있습니다.”

헬러 교수는 “빌 게이츠 한 명이 수많은 미국 사람들을 먹여 살리는 것처럼 영재는 국가의 큰 자산”이라며 “정부가 민간 차원에서도 영재를 길러낼 수 있도록 교육비를 보조하는 등 영재교육기관이 활성화될 수 있도록 적극 지원해야 한다”고 말했다.

홍성철기자 sungchul@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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