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경기]“전통 國弓 붐 다시 살려야죠”

  • 입력 2002년 3월 15일 00시 39분


중요 무형문화재 제 47호 궁시장(弓矢匠)인 김박영(金博榮·73)씨는 요즘 걱정이 많다.

고구려 시대부터 전해 내려온 전통 활 중 지금까지 명목을 이어가고 있는 유일한 활인 각궁(角弓·일명 맥궁) 제조 기능을 마땅히 전해줄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경기 부천에서 40여년을 전통 활 만들기에 바쳐온 김씨로서는 ‘기능을 배우고 싶다’며 찾아왔던 젊은이들이 1주일도 못 버티고 손을 놓아 버리는 게 안타깝기 그지 없다.

“기능을 전수받으려면 최소한 5년은 배워야 합니다. 평생 익힌 기능을 단시간에 모두 전수해 준다는 건 불가능하죠.”

1971년 정부가 활(弓)과 화살(矢) 제조 기능을 한데 묶어 무형문화재로 지정한 이후 국내 유일한 궁장(弓匠)으로서 그동안 김씨가 기능을 전수해 준 사람은 8명 정도.

그러나 이들 마저도 대부분 독립했거나 기술을 묵혀둔 채 다른 일에 종사하고 있다.

10년 가까이 기능을 전수받던 제자가 3년전 교통사고로 세상을 뜬 후 그나마 막내 아들(32)이 그 자리를 메우고 있다.

이처럼 문하생이 귀한 것은 활 제작에는 기술도 기술이려니와 각별한 정성을 쏟아야 하기 때문이다.

각궁은 여름 동안 재료를 준비해 10월부터 이듬해 3월 사이에 만드는데 무려 3000번 이상 손이 간다.

탄력좋은 대나무를 적당히 잘라 좌우 양쪽에 물소뿔을 다듬어 붙인 다음 활 중간에 소 등 부위 힘줄을 두 번 채워 넣는다. 활 하나를 만드는데 소 3마리를 잡는 셈.

모든 과정은 민어 부레를 끓여 만든 풀을 사용한다.

활 안팎으로 매끄러운 나무 껍질을 붙여 한동안 건조시키고 나면 비로소 활시위를 매고 강도를 조정하는 마지막 단계(해궁·解弓)를 밟는다.

이렇게 만들어진 활은 55만∼100만원선. 물론 작품으로 만들어진 활은 값을 매기기 어렵다.

김씨가 1년에 만드는 활은 100여 장(張) 정도. 스승인 故 김장환 선생 문하생일 때는 두 사람이 주도해 1년에 500장까지 만들기도 했다.

그만큼 문하생도 줄었지만 이제 각궁에 대한 열기가 예전만 못하다는 증거.

실제 최근 몇 년 동안 궁도인구가 늘어 현재 약 2만5000명을 헤아리고 있지만 각궁과 양궁을 혼합한 형태의 개량궁을 즐기는 사람이 압도적으로 많다.

힘과 기교가 필요한 각궁보다 훨씬 다루기 쉽고 값도 싼 까닭이다.

이런 연유로 성주산 기슭에 위치한 김씨의 공방(부천공방)에는 내국인보다 외국인이 더 많이 찾는 편이다.

특히 일본인 관광객들이 큰 관심을 보인다.

1m 남짓한 각궁은 어림잡아 150∼300m까지 화살을 날릴 수 있는데 비해 일본 활은 2m가 넘는 길이면서도 사(射)거리는 고작 수십m밖에 되지 않기 때문.

각궁을 한 번 보면 그 멋에 매료돼 취미용 또는 소장용으로 종종 사 가곤 한다.

틈틈이 활터를 찾는 각궁 애호가들의 활을 손 봐 주고 있는 김씨는 최근 새로운 기대에 부풀어 있다. 요즘들어 청소년들의 견학이 부쩍 늘어난 데다 부천시가 기존 국궁장(부천시 원미구 춘의동)을 ‘활박물관’으로 개조하겠다는 계획(7월 완공)을 발표한 것.

시민들이 자주 찾는 레포츠공원 내 활터에 활박물관이 들어서면 각궁을 널리 알릴 수 있고 자연히 끈기있는 문하생도 많아질 것이라는 생각이다.

박승철기자 parkki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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