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마 덕분에 살인 혐의 벗었다

  • 입력 2001년 11월 5일 16시 36분


살인범으로 몰려 기소됐던 30대 남자가 1년 전의 경마배당 기억을 떠올려 가까스로 법원에서 혐의를 벗고 무죄를 선고받았다.

정모씨(37)가 살인범으로 몰린 것은 5월 3일 서울 잠수교와 한남대교 사이의 한강 북쪽 강변에서 김모씨(41·여)가 포대자루에 담겨 숨진 채 발견되면서 부터.

경찰은 숨진 김씨의 증권계좌에서 사망추정일로부터 1개월이 지난 2월 초 현금 240여만원이 인출된 사실을 밝혀내고 현금을 인출해 간 정씨를 용의자로 지목했다.

경찰은 조사과정에서 정씨로부터 "증권사 객장에서 만나 알고 지내던 김씨와 작년 12월 27일 밤 교외로 드라이브를 갔다가 김씨를 목졸라 죽이고 증권카드를 빼앗은 뒤 시체를 자루에 넣어 한강으로 던졌다"는 자백을 받았다. 검찰은 이를 근거로 강도치사와 사체유기 등의 혐의로 정씨를 기소했다.

그러나 정씨는 법정에서 "경찰의 가혹행위로 어쩔수 없이 허위자백을 했다"며 "작년 12월 초 경마장에서 2, 7번마 복승식 마권을 50만원어치 구입해 5.7배 배당을 받아 배당금 중 일부인 250만원을 김씨에게 빌려주고 증권카드를 담보로 받았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검찰은 "정씨가 주장하는 12월 초 경마 결과 가운데 5.7배 배당이 나온 경주는 없었다"며 "정씨가 김씨를 살해하고 증권카드를 빼앗았다"고 반박했다.

그러나 서울지법 서부지원 형사합의1부(한강현부장판사)는 5일 증거 부족 등의 이유로 정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법원은 "경마 집계표를 살펴본 결과 작년 12월 16일 제5경주에서 복승식 2, 7번마에 대해 7.7배의 배당이 이뤄졌다"며 "피고인의 진술이 약 6개월의 기간이 지난 시점에 이뤄진 점을 감안하면 오히려 피고인의 주장에 신빙성이 있다"고 그 이유를 설명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이 사건은 객관적인 증거에 의한 뒷받침 없이 경찰에서의 피고인 자백과 그에 따른 현장검증에 의존해 구성됐다"며 "증인의 증언과 여러 정황들을 종합하더라도 정씨가 살인을 했다고 인정하기에 부족하다"고 밝혔다.

<박민혁기자>mhpar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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