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의 귀를 왜 막습니까"

  • 입력 2001년 11월 1일 16시 45분


“올바른 지도자가 되려면 쓴소리를 들을 줄 알아야 한다. 청와대는 왜 대통령의 귀를 막는가.”

전국농민회 경남도연맹 강기갑(姜基甲·51) 의장은 지난달 31일 경남 창원의 경남도청에서 있었던 김대중(金大中) 대통령과의 오찬에서 겪은 ‘수모’를 설명하며 대통령의 ‘귀’를 막는 주변 사람들을 강하게 비난했다.

강 의장은 김 대통령의 도청순시 때 도민초청 오찬에 농민대표 자격으로 초청됐다. 이날 낮 12시50분경 도청 4층 강당에서 식사가 끝난 뒤 강 의장은 “농사꾼으로서 대통령께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며 일어섰다가 경호원들에게 입을 틀어막힌 채 끌려나가는 수모를 당했다. 경호원들은 강 의장을 다른 사무실로 데려간 뒤 경호상의 어려움을 털어놓으며 사과한 것으로 알려졌다.

강 의장은 “쌀값 폭락 때문에 겪고 있는 농민들의 고통을 직언하기 위해 바쁜 농사일을 제쳐두고 행사에 참석했다”며 “대통령과 악수하고 밥 한 그릇 먹은 뒤 자랑이나 늘어놓는 자리라면 무슨 의미가 있느냐”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농민회 경남도연맹은 1일 성명을 내고 “대통령에게 농민의 어려움을 직접 건의할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하고 경호 관계자는 공개 사과하라”고 요구했다.

대통령과의 오찬에는 경남지역 각계 대표 260여명이 초청됐으며 식사에 앞서 도지사 환영사, 도의회 의장 건배 제의, 민주당 도지부장의 건배 제의 등이 이어졌고 식사 뒤에는 대통령의 ‘격려 말씀’이 있었다.

청와대측은 “통상 대통령 행사에서 예정에 없는 행동을 하는 경우 경호원들이 제지하는 것이 관례”라며 “강 의장은 오찬 초청 대상이긴 했으나 발언권을 얻은 것도 아니고 대통령이 발언을 하려는 찰나에 그런 행동을 해 제지했다”고 설명했다.청와대측은 또 “강 의장이 사전에 머리띠를 두르고 플래카드까지 오찬장에 갖고 들어갈 준비를 하다 설득당한 바 있다”며 “이 때문에 경호원들이 오찬장에서 강 의장을 주시하고 있다가 돌출행동을 하자마자 제지한 것”이라고 밝혔다.

<창원〓강정훈기자>manma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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