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입국선 중국인 60명 태워오다 25명 질식사

  • 입력 2001년 10월 8일 18시 30분


‘코리안 드림’을 꿈꾸며 중국 대륙을 출발했던 조선족과 중국인 60명 가운데 25명이 육지 상륙을 눈앞에 두고 원통한 죽음을 당하고 말았다. 경찰은 60명을 전남 여수 인근 육지로 밀입국시키려던 국내 어선 선원들이 배안에서 질식사한 중국인 25명을 바다에 던져 수장(水葬)한 사실을 8일 밝혀내고 수사 중이다.

▽중국 출항〓이들 중국인과 조선족은 이달 1일 중국 저장(浙江)성 닝보(寧波)항에서 20t급 어선을 타고 출발했다.

이들은 출항한 지 5일 만인 6일 0시경 제주 마라도 남서쪽 110마일 공해상에서 여수선적 안강망 어선 제7태창호(67t급)로 옮겨 탄 뒤 다음날 오전 전남 완도군 여서도 인근 해상으로 접근했다.

이들은 한국에 안전하게 도착할 경우 가족들이 중국 현지 브로커에게 1인당 6만5000위안(약 1000여만원)을 주기로 하고 밀입국을 감행한 것으로 경찰조사결과 드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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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식사〓일행 60명 가운데 중국인 25명은 제7태창호 선미쪽 그물창고에, 조선족 11명은 물탱크에 탔고 나머지 24명은 조타실 앞쪽 어구실에 몸을 숨겼다.

태창호 선원들이 선미쪽 그물창고에 숨어 있던 중국인 25명이 숨진 사실을 확인한 것은 7일 오후 1시경.

선원들이 식사를 제공하기 위해 그물창고 뚜껑을 여는 순간 이들이 뒤엉켜 숨져 있는 것을 발견, 갑판으로 옮겨 인공호흡을 실시했으나 별 소용이 없었다.

태창호 선장 이판근씨(43)는 경찰에서 “하루에도 몇 번씩 창고 뚜껑을 열고 건강상태를 체크했으나 별 이상이 없었다”며 “창고 공간이 가로 세로 3m로 비좁아 중국인들이 산소부족으로 숨진 것으로 보인다”고 진술했다.

▽수장〓태창호 선장 이씨 등은 중국인들이 숨지자 국내 알선책인 여모씨(43·여수시)에게 휴대전화를 걸어 시체를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를 논의했다.

이씨는 “여씨가 ‘배를 보내줄 테니 살아있는 사람은 육지로 보내고 숨진 중국인들은 소리도 인근 바다에 버리라’고 말했다”고 진술했다.

이에 따라 선원들은 8일 오전 3시반경 여수시 경호동 가막만 해상에서 왕모씨(34·푸젠성 출신) 등 중국인 24명과 조선족 11명 등 생존자 35명을 5t급 소형 선박에 옮겨 태운 뒤 이날 오전 6시경 여수시 소리도 남쪽 해상 10마일 부근 바다에 시체 25구를 빠뜨렸다.선원들은 “소리도 해상이 조류가 센 데다 새벽 시간대에는 어선 출입이 거의 없어 이 일대 해상에 시체를 버리도록 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검거 및 수사〓경찰은 이날 오전 5시 소형선박을 타고 여수시 경호동 대경도를 통해 밀입국한 왕씨 등 35명을 추격한 끝에 8일 오후 전원 검거했다. 경찰은 이에 앞서 이날 오전 11시경 여수시 화정면 개도항에 입항한 선장 이씨와 선원 등 8명을 붙잡았다. 해경은 이씨 등 선원 8명을 시체유기 등 혐의로 긴급체포하고 달아난 여씨의 행방을 쫓고 있다. 해경은 또 경비정 5척을 소리도 인근 해상에 급파해 수장된 사람들을 찾고 있다.

여수해양경찰서 관계자는 “어선 물탱크와 어구실 공간은 그물창고에 비해 넓은 데다 뚜껑이 열려 있어 이곳에 있던 사람들은 생존할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며 “붙잡힌 조선족들이 일주일 동안 거의 밥을 먹지 못했다고 진술한 것으로 미뤄 중국인들이 배고픔을 견디지 못해 숨졌을 가능성에 대해서도 수사 중”이라고 밝혔다.

<여수〓정승호기자>shj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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