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호 수사 미스터리]풀어줄 '말못할 이유' 있었나

  • 입력 2001년 9월 12일 00시 21분


검찰은 왜 지난해 3∼5월 이용호 회장을 잡았다가 풀어줬을까.

당시 수사에 참여하거나 지휘했던 검찰 관계자들은 그 근거로 △이 회장의 혐의 입증이 어려웠으며 △일부 횡령 혐의에 대해서는 ‘회사 밖으로 빠져나갔던 자금이 모두 원상복구된 상태였고 △진정인의 진정이 취하됐다는 것을 들었다.

그러나 당시 수사자료와 진정인의 말 등을 종합해보면 이 같은 검찰의 설명은 설득력이 거의 없다. 결국 검찰은 ‘말못할’ 다른 이유로 이 회장을 풀어줬다는 의혹이 강하게 제기된다.

▽최초 진정서에서 이 회장의 혐의 드러나〓대검 중수부가 작성한 이 회장 구속영장에 따르면 이 회장는 KEP전자를 인수한 뒤 전환사채(CB)를 발행해 일반인 청약대금 18억9534만9000원을 유용해 세종투자개발(현재 G&G)에 차입했다.

이 같은 혐의 내용은 진정인 B씨가 지난해 3월 서울지검 특수2부에 제출한 이 회장의 자금 입출금 명세서에 기재된 청약대금 유용 액수와 1000원 단위까지 똑같고 사용처도 동일하다.

또 구속 사유 중 이 회장이 대우금속에서 23억7240만원 상당의 전환사채 미청약분을 횡령했다는 부분도 B씨가 제출한 자금 입출금 내용과 정확히 일치한다.

이처럼 이 회장의 영장 혐의사실 가운데 지난해 5월 이전 행해진 4가지 횡령 혐의의 자금 유용 액수가 B씨가 제출한 서류와 끝자리 단위까지 똑같은 것으로 나타났다.

진정서에는 이 밖에도 이 회장의 자금 거래 계좌 22개가 금융기관 계좌번호 예금주별로 상세하게 적혀 있으며 ‘별첨’으로 이 회장 비위사실 개요와 계열사 조직도, 항목별 위법사실, 법인등기부 등본까지 붙어 있다.

또 당시 수사에 협조했던 A씨는 “검찰이 수사에 참고하도록 이에 대한 질문서를 만들어 건네주기도 했다”고 말했다. A씨가 건네준 질문서 사본은 이씨의 구속영장에 나타난 혐의를 대한 내용이 대부분이다.

따라서 검찰이 수사의지만 있었다면 이 회장은 이달 초 대검이 구속한 것과 같은 혐의로 이 회장을 구속할 수 있었다는 얘기다. ‘특별수사의 고수’가 모인 특수부에서 이렇게 상세한 자료를 확보하고도 혐의를 밝혀내지 못했다는 것은 이해하기 어려운 일로 보인다.

▽횡령금액 원상복구도 가짜일 가능성〓검찰은 이 회장이 보유주식과 채권을 다시 내놓아 피해가 거의 복구된 사정을 고려해 이 회장를 풀어줬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당시 이 회장이 보유한 주식들은 대부분 질권이 설정돼 있었다. 이 회장은 부실기업을 인수한 뒤 유상증자를 하거나 전환사채를 발행하고 그 주식과 사채를 담보(질권설정)로 잡히고 다시 돈을 빌려 새로운 기업을 인수하는 방식으로 기업사냥을 했다.

따라서 이 회장의 보유주식은 대부분 담보가 설정돼 경제적 가치가 별로 없으며, 이 회장이 횡령금액 대신 갚았다는 주식도 실제로는 껍데기에 불과하다고 볼 수 있다.

검찰이 이 같은 사정을 알고도 이 회장의 ‘원상복구’를 인정해줬다는 것은 납득이 되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김승련·이명건기자>sr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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