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호 사건]"수사 제대로 했더라면…"

  • 입력 2001년 9월 12일 00시 21분


지난해 10월 말 지앤지(G&G) 이용호(李容湖·43) 회장은 서울 강남구 논현동 자신의 집에서 오모씨를 만났다. 서울지검 특수2부에서 횡령 등 혐의로 긴급체포됐다가 풀려난 뒤의 일이었다. 오씨는 일제강점기 전남 진도군 죽도 앞 바다 밑에 가라앉은 금괴 발굴 사업을 추진해오던 인물. 이 회장은 오씨의 얘기를 듣고 금괴발굴사업을 추진하기로 했다.

이 회장은 이 무렵 자신이 대표로 있는 삼애인더스에서 900만달러(약 108억원)의 해외 전환사채(CB)를 발행하도록 했다. 전환사채는 일정 시점이 지난 뒤 일정 가격(전환가격)의 주식으로 전환할 수 있는 채권. 실질적으로는 새 주식을 발행한 것이나 다름없다.

이 회장은 이어 그해 12월20일 삼애인더스의 사업목록에 금괴발굴 사업을 정식으로 올렸다. 당시 삼애인더스의 주가는 3470원. 한달 뒤인 올 1월26일에는 대출문제로 신세를 진 D금고 회장 김모씨에게 삼애인더스 전환사채를 건네주고 주식으로 전환하도록 했다.

이 때부터 삼애인더스의 주가 움직임이 심상치 않았다. 1월 말 5000원대에 머물던 주가는 2월 중순에 들어서면서 1만원대로 뛰었다. 재료는 물론 금괴발굴 사업 ‘소문’.

이 회장은 타오르는 불에 기름을 부었다. 같은 달 15일 20조원 규모로 추정되는 금괴발굴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고 공식 발표한 것이다. 주가는 5일 뒤 1만7500원까지 치솟았고, 김씨는 이미 전환을 끝낸 주식을 모두 팔아치워 154억원을 벌었다.

이들이 주식을 팔아치운 뒤 주가는 다시 4000원대로 떨어졌다. ‘금괴발굴사업’이라는 신기루에 속아 소액투자자들만 돈을 날린 셈이 됐다.

이 회장은 이 밖에도 지난해 7월부터 12월까지 삼애인더스의 유상증자 대금과 전환사채 발행 대금 가운데 182억여원을 마음대로 써버렸다.

이 같은 일이 일어난 것은 모두 이 회장이 검찰 수사에서 풀려난 뒤에 벌어진 일이었다. 검찰이 지난해 5월 이 회장을 제대로 수사해 처벌했더라면 일어나지 않았을 일이다. 검찰의 수사잘못이 빚어낸 소액투자자의 ‘비극’이다.

<이수형기자>soo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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