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 56돌-건국 53돌 포럼]"통합의 정치 펴가야"

  • 입력 2001년 8월 7일 18시 22분


《동아일보는 광복 56돌, 건국 53돌을 앞두고 ‘한국 어디로 가야 하나’를 주제로 지상포럼을 마련했습니다. ‘국민의 정부’가 출범한 지 3년 반이 경과한 지금, 정치 경제 사회 등 각 부문 개혁의 정체성과 방향성에 의문이 제기되고 나라 전체가 혼란 갈등 침체의 위기 국면에 빠져 있습니다. 각계 원로와 전문가들이 참여해 문제를 진단하고 처방을 제시한 지상포럼을 7회에 걸쳐 연재합니다.》

▼글 싣는 순서▼
- 1. '국론분열-갈등' 치유의 길
- 2. 정치부터 바뀌어야 한다
- 3. 경제 어떻게 살릴 것인가
- 4. 교육에서 희망을 찾아라
- 5. 남북 문제 바른 해법은
- 6. 4강과의 외교관계 재정립을
- 외국 전문가들의 충고

□이념 갈등

▽허영 교수〓흔히들 지금 우리 사회가 총체적 위기 상황 또는 난국이라고 진단한다. 여러 원인이 있겠지만 이념이 대립한다든가 국론이 극도로 분열하는 양상을 보인다는 것이 큰 화두로 등장한 것 같다.

▽김경원 원장〓국민 대다수가 혼란과 불안을 느끼고 있다. 그런데 그 원인은 단순하지 않다고 본다. 이념 때문이라고 단정하기는 어려운 면이 있다고 생각한다.

▽허 교수〓국민의 정부가 들어서고, 6·15 남북공동선언을 기점으로 해서, 물론 나는 좌파라고 공공연하게 말하지는 않지만, 다분히 과거에 지하에서 활동하던 이데올로기 세력들이 공공연하게 활동하면서 반대 세력에 대해 오히려 보수세력이라고 몰아붙이며 공세를 취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고전적인 의미에서 좌우 이데올로기의 대립은 없을지 모르지만 이념적 측면에서 우리 사회는 혼란스러운 대립 양상을 보이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한다. 모든 사람이 어딘지 불안하고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고 하는 원인이 이데올로기 대립 때문만은 아니지만 하나의 요인임에는 틀림없다.

▽김 원장〓오늘날 남쪽은 많은 희생을 치르고 국민의 힘으로 어느 정도 민주화의 길에 올라섰다. 그런데 북쪽은 전제군주적 독재체제가 더 강화됐다고 봐야 한다. 여기서 국민은 북한과의 화해와 협력을 추구하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가에 대한 혼란과 불안을 느끼고 있다고 본다. 북한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화해라면 그런 화해와 협력을 통한 통일의 길은 북한을 어느 정도, 가령 반 정도라도 받아들이는 것을 의미하는 것인지 등에 대해 말은 분명하게 하지 않지만 많은 사람들은 불안감을 갖고 있다.

▽허 교수〓국민이 북한과의 화해 협력이 어디까지인가에 대해 혼란스러워 하는 것은 사실이다. 국가보안법의 본질에 관해서는 논란이 있었지만 국보법이라는 것이 자유민주주의를 거부하는 반국가단체를 응징하고 동조세력을 처벌하는 법으로 상당히 엄격히 적용됐는데 어느 시점부터 이 법이 사문화되다시피 하니 어느 경우에 국보법을 적용할 것인가, 군대에서 주적 개념 논란과 마찬가지로 혼란을 느끼는 것으로 본다.

▽김 원장〓남한에 사회주의를 지향하는 사람이 있다면 북한이 사회주의니까 지지한다고 말할 수 없을 것이다. 북한은 사회주의 정권이라기보다 전제독재주의라고 봐야 한다.

□국론분열

▽허 교수〓국론 분열의 현상을 보면 김대중 정부의 가장 큰 실패는 통합의 정치를 실현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여론조사에 따르면 지역감정이 더 심화됐다고 한다. 언론들끼리, 방송은 신문을 공격하고 신문들도 분열 양상을 보인다. 이것이 현 정부의 최대 실정이라고 생각한다. 모든 사회 구조가 양쪽으로 갈라진 상황에서는 나는 어느 편에 서야 되고 어디에 줄서야 잘 보일까를 눈치보게 된다. 어떤 정권이든 이런 현실은 조속히 극복해야 하는데 그 책임은 정부에 있다. 정부는 늦었지만 통합의 정치를 해야 한다. 정부가 스스로 분열을 조장하는 일은 삼가야 한다.

▽김 원장〓최근 여당의 어떤 분이 한 말에 공감이 간다. 기본적으로 김대중 정권은 소수정권으로 출발했는데 이러한 사실을 사실로 받아들이지 않고 자신들의 목표만을 강요하는 데서 문제가 생겼다고 본다. 소수정권이 갈등관계를 형성해 나가는 과정을 보면 자신들이 추구하는 목표는 선하고 옳고 성스러운 것이라고 확신하고 권력을 잡은 뒤에는 자신들이 소수정권이라는 사실을 망각하게 되는 것이 문제다.

▽허 교수〓문민정부도 그랬고 현 정부도 자신들이 아직도 민주화 투쟁 과정에 있는 것으로 착각하고 있다. 국정을 맡았으면 책임을 지고 투쟁의 대상으로 삼았던 사람들도 통합해야 하는데 아직도 자기들의 생각과 맞지 않는 것은 타도의 대상으로 삼는다. 이렇게 하기 때문에 처음부터 빗나간 것이 아닌가 한다.

▽김 원장〓여당측의 정치인이 개혁 과정을 선과 악의 투쟁으로 보고 선의 세력이 악을 패배시켜야 한다는 생각에 빠지는 게 문제다. 여당이 절대주의적 정치를 하면 야당도 절대주의적 정치를 하게 된다. 여야의 정쟁은 그야말로 투쟁이 된다. 그렇게 되면 역사는 반복하고 비극의 악순환이 된다.

▽허 교수〓국론 분열이 몰고 올 폐단 가운데 하나는 이 사회를 끌어가는 중도적인 성향을 가진 중심세력이 여론을 주도하지 못하고 설 땅이 없어진다는 사실이다. 그들이 목소리를 내기를 꺼리면 여론이 이분법적으로 갈라지고 사회발전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이분법적 사고방식은 불신풍조를 심화하고 국가의 건전한 발전을 저해한다.

▽김 원장〓국론 분열이 심화하면 우리가 미래를 개척하기 위해 해야 할 일을 하지 못하게 된다. 그럴 경우 정부가 국민의 에너지를 총동원해 도전에 대응할 능력을 기대하기 어렵다. 컨센서스가 없이 심각한 문제들을 해결하는 과정에서 소수의 아이디어를 다수에게 강요하는 사태가 벌어진다. 민주사회가 발전하기 위해서는 다양성이 고무되는 분위기가 필요하고 그런 점에서 자기 목소리를 내려는 것은 계속돼야 한다. 다만 다양한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가 컨센서스를 위한 과정이어야지 통합을 저해해서는 안 된다.

▽허 교수〓견해의 다양성과 관계없는 대립과 갈등만 나타나는 것이 문제다. 다른 견해는 타도의 대상이 되니까 문제다. 현 정권은 남은 1년 반 동안 대승적 견지에서 통합의 정치를 이끌어야 한다. 야당도 본연의 위치로 돌아가 국민을 상대로 정책 대안을 개발하고 홍보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시민단체도 본연의 임무로 돌아가야 한다. 시민단체가 특정세력의 대변인이 되면 존재 의의를 상실한다.

▽김 원장〓정부 여당에 문제 해결의 일차적인 책임이 있다. 힘을 가진 사람이 먼저 화해와 양보 절충 타협 통합의 길로 가는 첫 발을 내딛는 위치에 있다. 야당과의 관계뿐만 아니라 언론사태를 비롯한 여타 개혁 분야에서도 새로운 신축성을 보여줘야 문제를 풀 수 있다. 정권이 첫 발을 떼면 야당도 댄스 파트너처럼 발을 옮겨줘야 한다.

□법치주의 후퇴

▽허 교수〓법치국가에서는 아무리 정당한 개혁도 법치주의에 따라야 한다. 그렇게 해야 모든 사람을 설득시킬 수 있다. 개혁입법은 야당과 함께 해야 한다. 법률을 날치기로 통과시키는 것은 법치주의에 정면으로 위배된다. 누가 무엇이 법치주의를 후퇴시켰느냐고 물으면 나는 개혁 입법을 날치기 통과시킨 것 자체가 법치주의를 후퇴시킨 결정적 증거라고 대답한다. 대한변협이 법치주의가 후퇴했다고 한 것은 있는 현상을 그대로 지적한 것으로 본다.

▽김 원장〓법치주의 문제는 어느 정권에서도 계속되는 문제지만 실망스럽게도 이번 정부는 법치를 진전시키지 못했다.

▽허 교수〓김대중 대통령은 취임사를 비롯해 여러 번 법을 존중하겠다고 했는데 이는 개혁을 하되 법과 절차에 따라 하겠다는 말이다. 법과 절차에 따라 하겠다는 김 대통령의 생각에 날치기를 해서라도 입법을 한다는 내용이 포함됐다면 법치주의 의식에 문제가 있다. 총선 결과 국민이 여소야대를 만든 것은 국민이 정부에 제한된 위임을 해준 것이다. 정부는 한정된 위임 권한 내에서 정책을 수립하고 나머지는 야당과 합의해, 줄 것은 주고 받을 것은 받아야 국민의 뜻에 따르는 정치다.

▽김 원장〓소수정권이 법대로 하면 정권이 지향하는 정책을 100% 실현할 수 없는 상황에 놓이게 된다. 그런 경우 정권은 자신이 추구하는 목표를 조정하고 양보할 것은 양보하고 절충할 것은 절충함으로써 전 국민적 컨센서스를 형성해 나가는 것이 중요한데 그런 자세가 보이지 않았다.

□정권재창출

▽허 교수〓집권당은 정권재창출을 추구하거나 이를 위해 노력할 수 있지만 모든 것을 거기에 거는 자세는 헌법이 지향하는 자유민주주의의 이념과 거리가 멀다. 한정된 위임 범위 내에서 최선의 정책을 펴서 국민의 지지를 다시 받으면 정권 재창출이 되고 그렇지 않으면 물러날 수 있다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정권 재창출은 국민에게 맡기고 정부는 정부 역할에 국한해야 하는데 모든 것을 너무 정권 재창출에 거는 것이 문제다.

▽김 원장〓정권 재창출을 원하지 않는 권력은 없다. 그 비중과 공정한 게임 중에서 가치의 비교 순위가 어떤 것이 먼저냐 하는 것은 문제가 될 수 있다. 정권 이양 후 전임자를 가혹하게 다루는 경우가 많다. 민주주의 발전을 위해서도 좋지 않다.

□언론문제

▽허 교수〓언론의 기능과 사명은 권력에 대한 견제구를 자꾸 던지고 시시비비를 가리고 국민이 제대로 심판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인데 지금 언론시장??나타나는 현상은 일반 국민에게 혼란을 줄 수 있다. 방송을 보면 아닌 것 같고 신문도 서로 다르다. 이는 다원주의라기보다 정권에 대한 지지냐 반대냐를 나타내는 경우가 많다. 이런 현상은 물론 정권 재창출과 관련이 있다고 할 수 있다. 지식인들은 메이저 신문들의 비판적 논조가 약화되고 있는 것이 아니냐고 한다. 세무조사 때문이라면 나라의 앞날과 민주발전을 위해 통탄할 일이다. 견디기 힘들겠지만 어떤 상황에서도 본연의 자세를 지켜나가야 한다. 그것이 오히려 정부를 도와주고 민주발전에 기여하고 신문도 사는 길이다.

▽김 원장〓언론문제에 관한 한 정부가 딜레마에 빠진 것 같다. 언론에 대한 재갈 물리기가 아니라 세금문제라는 것이 정부의 주장인데 정부에 비판적인 신문들이 계속해서 비판자 역할을 할 수 있어야 정부의 주장이 최소한의 설득력을 갖는다. 신문의 대정부 비판이 약화되면 우리 국민뿐만 아니라 한국 상황을 지켜보는 외국인들도 세무조사가 언론의 비판력을 약화시키려는 저의에서 이뤄진 것이라고 판단한다는 사실을 정부 관계자도 알았으면 한다.

<정리〓정위용기자>viyonz@donga.com

▼허영 약력▼

△1936년 출생

△경희대 법대 졸

△독일 뮌헨대 법학박사

△독일 본대, 바이로이트대 교수

△한국공법학회장

△현 연세대 법학과 교수

△현 헌법재판소 자문위원

▼김경원 약력▼

△1936년 출생

△서울대 법대 졸

△미국 하버드대 정치학박사

△고려대 정경대 교수

△주미 대사

△현 사회과학원장

△현 고려대 국제대학원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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