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혼란상 전문가 시각]"정부는 국민 믿게 해야"

  • 입력 2000년 7월 6일 20시 05분


《사회의 갈등과 혼란을 민주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역량은 그 사회의 선진화정도를 가늠할 수 있는 척도다. 그러나 ‘의료대란’에 이은 ‘금융대란’ 조짐, 국민건강보험공단의 극단적인 파업행태, 롯데호텔 파업사태등 최근의 혼란상은 우리 사회가 아직 민주적인 갈등해결의 ‘틀’을 갖추지 못하고 있다는 점을 드러내고 있다. 정부든 민간이든 사회 각 구성원들이 ‘힘’으로 모든 것을 해결하려는 경향을 보이는 것도 이런 갈등해결 시스템부재의 당연한 산물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최근 국정혼란상에 대한 전문가들의 처방을 들어본다.》

▼박우동 前대법관 "국민-정부 사법권 무시태도 버려야"▼

문제의 핵심은 정부가 신뢰감을 잃고 있으며 사법권을 무시하는 태도가 국민들 사이에 만연해 있다는 것이다. 사법권의 위상이 실추한 데는 정부 책임이 크다. 법을 어겼으면 당연히 법에 따라 처벌을 받아야 한다. 그런데도 지금까지 역대 정부는 불법 파업, 점거 농성 등 문제가 터질 때마다 ‘말로만’ 법에 따라 엄정하게 처벌한다고 엄포를 놓았을 뿐 사건이 마무리되면 대개 법 집행은 흐지부지해왔다.

지금까지 법조인들이 숱하게 주장해 온 것이지만 정부는 이를 무시해왔다. 정부가 타성에 젖어 과거 방식대로 대충 미봉하는 방식으로 사태를 처리하면 더 큰 위기를 맞게 될 것이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단체 행동은 가능하지만 법의 테두리와 상식 안에서 행사되어야 한다. 인간의 생명을 담보로 한다든지, 은행 업무를 중단하거나 누구를 감금하는 등 공익에 반하는 극단적인 행동은 사회적으로 용납돼서는 안된다.

▼박원순 참여연대 사무처장 "합리적 분쟁해결 사회적 훈련 필요"▼

현재의 난맥상은 공권력의 중립성과 도덕성이 의심받고 있기 때문이다. 권위주의에서 민주사회로 넘어가는 과도기에 분쟁과 갈등이 늘어나는 것은 당연한 일이며 분쟁 당사자들도 법적 절차보다 물리력에 호소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분쟁이 법적 절차와 테두리 안에서 해결되도록 하기 위해 중요한 것은 공권력이 조금이라도 편향적으로 보여서는 안된다는 점이다. 이 경우 사회 구성원들이 법적 해결 수단에 동의하지 않기 때문이다.

분쟁해결에 관한 사회적 훈련과 합의도 필요한 시점에 왔다. 미국의 경우 여러 대학에 관련학과가 설치돼 전문가를 교육시키는 등 분쟁해결이 학문으로까지 정립돼 있으나 우리는 분쟁이 발생하면 중재를 수행할 전문가는 물론 그런 훈련도 경험도 마인드도 없다.

▼최우석 삼성경제연구소장 "상대방 존중않는 분위기 개설할때"▼

갈등이 생겼을 때 중간에 거르는 기능이 바로 대의정치요, 국회의 역할인데 정치권이 이런 조정 타협기능을 못하고 있다. 또 언론이나 지식층도 객관적인 입장에서 옳고 그름을 가려주지 못하고 있는 데다 중요한 문제에 대해서 도덕성과 신뢰성을 갖춘 원로가 얘기하면 승복하는 사회 분위기도 형성돼 있지 않다. 모든 것을 법률에 의존해야하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상대방을 존중하지 않는 문화도 문제다. 무리하게 요구하면 문제가 해결되고 손해를 보지 않는다는 생각이 퍼져있다. 한가지 사안을 논리와 연관성을 갖고 이해하기보다는 현상에 집착해 잘못을 상대방의 책임으로 떠넘긴다. 결국 갈등 해결 문화를 바로 잡는 데는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다. 정치와 사회가 발전하고 성숙되어야 근본적인 문제 해결이 가능하다.

▼허용 연세대교수 "법집행 공정해야 집단주의 사라져"▼

국민건강보험공단 사건의 경우는 힘이 법에 우선한다는 잘못된 생각이 확산되는 위험한 징조다. 법집행과 적용이 형평성을 잃어 ‘법을 지키면 손해’라는 잠재의식이 만연해 있기 때문에 빚어지고 있는 현상이다. 사면권 남용 등으로 법을 어겨도 구제받을 수 있을 것이란 요행심리도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다. 따라서 법의식을 바로 세우기 위해서는 법 집행과 적용을 공정하고 형평에 맞게 해야 한다.

또 의료계 폐업과 금융계 파업은 집단이기주의가 위험수위에 이르렀음을 보여주는 징후다. 다수가 납득할 수 있는 공정하고 합리적인 정책을 투명한 절차를 통해 펴나가야 집단이기주의가 사라질 것이다.

▼박명진 서울대교수 "대통령 권한 정책실무자에 위임을"▼

현재의 국정 혼란은 모든 것을 직접 챙기는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의 통치스타일과 사회변화에 걸맞은 갈등해결구조의 부재 현상 때문에 빚어지고 있다. 이미 지나치게 많은 권한이 대통령에게 집중돼 있는 상황속에서 대통령이 모든 것을 직접 챙기다 보니 권한이 장관 등 실무자에게 위임되지 않고 있다. 따라서 정책담당자들이 자율적인 판단에 따라 책임있는 정책을 펴나가기 보다는 위만 바라보고 있는 것 같다. 또 사회가 이미 개방됐음에도 불구하고 의사결정 및 조정과정이 투명하지 못해 관계자들이 승복하지 않고 있다. 장관이나 실무자들에게이 책임을 지고 소신있게 처리할 수 있도록 실질적 권한 이양이 이뤄져야 한다. 여기다 상황을 힘으로 풀려드는 갈등해결 방식도 민주적 방식으로 바뀌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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