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추적]경기북부-강화 수방공사 늑장

  • 입력 2000년 6월 27일 19시 22분


“한 번 더 쓸려 내려가야 돼!”

장마전선이 북상중인 27일 오후 경기 파주시 문산읍 ‘문산교 보수공사’ 현장 앞. 이를 지켜보던 주민 김모씨(53)는 분통을 참지 못했다. 문산교와 나란히 펼쳐진 경의선 복선공사도 ‘여전히’ 진행중이기 때문이다. 문산읍내를 연 이태 물의 도시로 만들었던 동문천 범람을 막기 위한 두 공사장엔 비만 오면 금방이라도 쓸려 내려갈 듯 벌건 흙이 속내를 드러내고 있었다. 문산교의 완공시점은 ‘2000년 12월 31일’로 적혀 있다. 김씨는 “어제부터 장마전선이 온다고 해서 새벽에도 빗소리만 나면 벌떡 일어나느라 잠도 못잤다”고 말했다.

▼"빗소리만 나면 잠못이뤄"▼

역시 98, 99년 수해를 입은 파주시 문산읍 선유리, 일명 ‘칠정말’ 일대도 마찬가지. 동문천을 건너야 외출할 수 있는 이 마을 입구 곳곳에는 지난해 떠내려간 다리를 다시 놓는 공사가 한창이다. 다리를 놓기 위해 절벽처럼 깎아놓은 마을 입구는 얼기설기 나무판자로 덮여있을 뿐 단단한 콘크리트 모습을 갖추기엔 아직 멀어 보였다. 주변에는 제방공사가 함께 진행되고 있지만 천변(川邊) 대부분은 흙으로만 덮인 모습. 주민 김영배씨(35)는 “관에서 얘기하는 수해복구공사야 언제나 완벽하지 않았느냐”며 “아직도 삽질하는 공사장이 싹 쓸려 내려가야 정신을 차릴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장마왔는데 아직도 공사중▼

같은 날 87, 96, 98, 99년 완전침수 피해를 보았던 경기 연천군 청산면 백의2리. 인근의 군 사단본부가 자리잡아 늘 오가는 인파가 많았지만 지난해 수해 뒤로는 ‘유령읍내’가 돼버렸다. 사진관도, 춘천닭갈비도, 통닭집도 복구할 힘을 잃은 채 문을 닫고 떠났다.

역류현상을 일으켜 이곳의 침수원인으로 지적된 연천댐은 올들어 철거가 끝났지만 주민들은 여전히 불안해한다. 비만 오면 영평천을 따라 떠내려온 나무와 쓰레기가 백의교에 걸려 물의 흐름을 막아 범람을 일으켰지만 백의교를 높이는 공사는 아직 착공도 하지 않았기 때문.

연천군 관계자는 “백의교 개보수공사는 이달말이나 다음달 중 착공할 것 같다”고 말했다. 이날 파주시와 연천군이 공식적으로 밝힌 수해복구 공사 진척도는 각각 98%와 95%를 기록중이다.

인천 강화군 신문리에 사는 주부 엄입분(嚴立紛·46)씨도 요즘 밤잠을 설치기는 마찬가지. 먹구름이 조금만 끼어도 2년 전과 지난해의 마을이 물에 잠기던 악몽이 자꾸 되살아나기 때문이다. 엄씨는 “만조시간대에 빗물이 빠지지 못하고 거꾸로 개펄까지 밀려들면서 점점 집에 물이 스며들더니 나중엔 허리까지 차올랐다”며 “평생 강화도에 살면서 이렇게 큰 비는 처음이었다”고 악몽의 순간을 떠올렸다.

인천 강화도는 98년 하루 동안 600㎜가 넘는 집중호우가 내렸고 99년에는 5일 동안 700㎜가 넘는 살인적인 폭우가 쏟아져 섬 전체가 ‘물바다’가 됐던 곳.

강화군은 그동안 수해복구 대상 시설 160개 중 155개의 복구를 마쳤다. 강화군 길상면 길직천, 강화문예회관 옆 세천 등 나머지 5곳은 이달말 복구가 완전히 끝날 예정.

▼"만조때 비오면 속수무책"▼

강화도는 섬 전체가 바다에 둘러싸여 있는 데다 곳곳에 작은 산이나 언덕, 그리고 농수로가 배수로 역할을 해 비가 빠르게 빠져나갈 수 있는 장점이 있다. 그러나 만조시간대에 비가 내리면 빗물이 바다로 빠져나가지 못해 역류현상이 일어나면서 엄청난 비 피해가 발생한다. 98년에도 만조시간대에 집중호우가 쏟아져 ‘고립무원(孤立無援)의 섬’이 됐다.

인천 강화군 방재팀 고근정(高根貞·33)씨는 “전체적인 수해복구 작업은 거의 마쳤으나 만조 때 집중호우가 내리면 속수무책”이라고 말했다.

<파주·강화〓박정규·이동영기자>jangk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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