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 "예상못한 수표부도 처벌못해" 원심 파기

  • 입력 2000년 2월 3일 17시 46분


수표 발행자가 부도를 냈더라도 발행 당시 부도 위험을 전혀 예상할 수 없었다면 부정수표단속법 위반혐의로 처벌할 수 없다는 대법원의 첫 판결이 나왔다.

이번 판결로 국제통화기금(IMF) 경제난 때문에 부도를 내고 기소된 경제인들 가운데 억울한 사정을 잘 입증하면 무죄를 선고받는 사람들이 꽤 나올 전망이다.

대법원 형사2부(주심 김형선·金炯善대법관)는 3일 합성수지 제조업체인 K사의 명목상 대표이사로 재직하면서 부도 수표를 발행한 혐의로 기소된 대학교수 김모씨(45)에 대한 상고심에서 이같이 판시, 무죄 취지로 원심을 깨고 사건을 대구지법으로 돌려보냈다.

재판부는 “부정수표단속법은 기업의 자산과 자금사정, 경영실태 등에 비춰 수표금을 지급하지 못할 것을 알면서도 고의로 수표를 발행했을 때 성립하는 죄”라고 전제했다.

재판부는 이어 “K사가 수표를 발행할 당시에는 금융기관이 유망 중소기업으로 선정할 만큼 경영상태가 양호해 부도를 예측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고 김씨는 실질적 경영주인 친척의 요청으로 명의만 빌려준 사장이어서 회사의 수표가 부도났다는 이유만으로 처벌할 수 없다”고 밝혔다.

김씨는 93년부터 회사의 대표이사로 일하다가 자신의 명의로 5억2000만원 상당의 당좌수표 3장을 발행했으며 퇴직 후인 96년 회사가 부도나자 기소돼 벌금 700만원이 선고됐다.

<신석호기자>kyl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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