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12」「5·18」대법판결, 민사사건 첫 원용

  • 입력 1998년 11월 20일 18시 59분


80년 신군부의 집권과정을 ‘내란행위’로 판단한 대법원의 12·12 및 5·18 형사사건 판결내용을 하급법원인 서울지법이 민사사건에서 처음으로 인용한 재산반환 판결이 나왔다.

이에 따라 이 판결이 대법원에서도 받아들여질지, 또 현재 대법원에 계류중인 비슷한 사건의 상고심 재판에서 ‘5·18 판결’이 똑같이 인용될지에 대해 비상한 관심이 쏠리고 있다.

서울지법 민사합의41부는 19일 동명목재의 옛 사주측이 부산시 등을 상대로 낸 재산반환소송에서 지난해 4월 12·12 및 5·18사건에 관한 대법원 판결을 원용(援用)하면서 이를 근거로 “신군부가 재산을 빼앗은 것은 무효이므로 돌려주라”고 판결했다.

재판부는 판결문 ‘1. 인정사실’의‘나’ 항목에서 12·12 및 5·18사건 대법원 판결문 내용을 그대로 원용해 동명목재 옛 사주가 재산을 빼앗긴 80년 6월 당시의 상황을 언급했다.

재판부는 이 항목에서 “신군부가 12·12와 5·18을 거치면서 국민에 대한 기본권 제약과 국가기관에 대한 강압의 정도를 높여갔고 공직자 숙정과 언론통폐합 등을 추진하면서 국헌을 문란케 했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이어 ‘3. 판단’부분에서 “신군부가 정권을 차지하기 위해 국헌문란행위를 계획한 바에 따라 진행하는 과정에서 동명목재의 재산을 강압적으로 빼앗았다”며 “이는 민법 제103조가 규정한 ‘반(反)사회적 법률행위’로 무효”라고 밝혔다.

이에 따라 원고인 동명목재 옛 사주측은 소멸시효의 적용을 받지 않고 재산을 찾을 수 있게 됐다.

법원은 그동안 비슷한 종류의 재산반환 소송에서 신군부의 집권과정에 대한 법적 판단을 하지 않았다. 법원은 그 대신 “신군부의 재산환수 과정에서 일부 ‘강압’이 있었는데 이를 근거로 민법 제103조에 해당하는 무효인 법률행위로 볼 수는 없고, 다만 민법 제110조에 따라 취소할 수 있는데 취소권은 3년의 소멸시효가 지났다”며 원고 패소판결을 내려왔다.

그러나 이번 판결은 신군부의 집권행위 자체를 불법행위로 규정하고 이를 근거로 신군부의 재산환수조치를 반사회적인 법률행위로 판단해 원인무효라고 판단한 것이다.법조계에서는 이 판결이 대법원에서 받아들여질 경우 신군부에 의해 재산을 강제로 헌납당한 당사자들의 재산반환소송은 판례변경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고 있다.

서울지법 판사는 “이번 판결은 법원이 민사사건에서 80년 이후 18년만에 입장을 변경한 것으로 볼 수 있다”며 “대법원도 사실관계에 대한 판단은 형사사건이나 민사사건이나 동일하게 해야 한다는 입장을 취해오고 있으므로 12·12 및 5·18사건 판결을 대법원이 민사사건에서 인용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이수형기자〉soo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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