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이승재/남산골 나무枯死의 교훈

  • 입력 1998년 11월 10일 19시 05분


“사람도 죽는데 나무도 죽을 수 있는 거 아닙니까.”

서울 남산골 한옥마을의 전통정원에 심어진 수목 6천3백여 그루 중 23.5%인 1천4백여 그루가 죽은데 대해 “이토록 많이 죽은 이유가 무엇입니까”고 묻자 관계자는 그렇게 말했다.

고사(枯死·말라죽음)에 따른 손실액을 서울시 건설안전관리본부에서 작성한 수목별 단가표를 기준으로 계산하면 8천9백여만원. 그러나 문제는 돈만이 아니다.

귀여운 첫딸이 태어났을 때, 삶의 질곡을 거쳐 은혼의 그날을 맞았을 때 우리는 나무를 심는다.

때론 다가오는 삶의 종착역을 바라보며 ‘그러나 영원히 이땅에 뭔가를 남기고 싶다’는 의지의 상징이기도 하다.

나무를 심어 ‘의미’를 새기는 것은 몇 해고 몇 세대고 이 한그루의 나무가 살아남아 지금의 순간을 더 풍성하게 간직하고 결실하리라는 소망에서일 것이다.

최근 서울시가 ‘1천만 그루 나무심기’운동을 의욕적으로 전개하고 있는 입장에서 서울시가 가꾸는 수목들의 떼죽음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번 ‘사고’가 관리소홀로 인한 고사일 가능성이 크다는 전문가들의 분석을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한옥마을의 전통정원에는 타임캡슐이 있다. 서울에 수도를 정한지 6백년을 기념해 94년에 파묻은 타임캡슐은 정도(定都)1천년째인 2394년에 개봉한다. 우리 세대의 삶을 후손들이 기억하고 간직하기 위해 깊이 묻은 타임캡슐이 있는 정원에 밑동이 잘려나간 나무의 흉물스러운 모습이 곳곳에서 발견되는 현실이 묘한 서글픔을 안겨주는 것이다.

서울처럼 삭막한 도시일수록 나무를 많이 심고 더욱 소중히 숲을 가꾸어야 한다. 당장의 목표달성을 위해 심었다가 팽개쳐 죽이는 일은 없어야 한다.

이승재<사회부>sjd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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