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학교 기부금 부작용없게 하라

  • 입력 1998년 9월 15일 19시 26분


초중고교에서 학부모에게 기부금을 거두는 문제는 교육현장의 해묵은 난제(難題)중의 난제다. 정부는 국공립학교는 물론 사립학교까지 교육재정의 상당부분을 떠맡고 있으나 빠듯한 예산사정으로 교육의 질을 높이는 데 한계가 있다. 그러나 막상 학부모로부터 기부금을 모금할 경우 예상되는 부작용은 만만치 않다. 계층간 위화감이나 비리 가능성이 대표적인 예다. 그런데도 교육부가 최근 이를 양성화하는 조치를 내렸다. ‘학교발전기금’이란 명목으로 교육재정에 학부모 도움을 받는 쪽으로 방향을 바꾼 것이다.

이번 조치는 날로 나빠지고 있는 교육재정이 결정적 이유로 작용했음이 물론이다. 올 교육예산은 18조2천억원으로 책정됐다가 예산심의 과정에서 16조5천억원으로 깎였고 IMF사태 이후 재정긴축에 따라 13조5천억원으로 추가 삭감됐다. 당초보다 26%나 줄어든 액수다. 내년 이후 예산은 더욱 줄어들 가능성도 있다. 어려운 나라살림은 충분히 이해하지만, 그렇더라도 부족분을 학부모에게 기댄 것은 유감이 아닐 수 없다.

교육부는 기부금을 교육시설 보수와 실험기자재 도입 등에만 사용하겠다고 밝혔다. 이런 비용은 정부가 교육재정으로 해결할 것이지 학부모에게 떠넘길 성질의 것은 아니다. 정부는 말로만 교육재정을 늘리겠다고 큰소리치지 말고 교육예산 확충에 적극적인 의지를 보여야 한다. 경제난에다 가뜩이나 연간 10조원의 과중한 사교육비에 허덕이는 학부모에게 더 이상의 요구는 무리다.

기부금 모금과 관련해 학부모들이 가장 신경쓰이는 부분은 모금의 투명성이다. 어떤 식으로 돈을 모아 어떻게 집행하느냐가 관건인 것이다. 경제형편상 돈을 낼 수 없는 가정도 있을 터이고 기부금 액수도 천차만별일 게 분명하다. 중요한 원칙은 강제성이 배제된 자발적인 모금이어야 한다는 점이다. 또 기부금이 정해진 목적대로 쓰여야 한다.

기부금 모금창구인 학교운영위원회의 역할과 책임도 막중하다. 교장 교사 외에 학부모 지역대표가 포함된 학교운영위는 학부모 가운데 존경받고 신망이 두터운 인사로 구성되어야 부작용을 막을 수 있다. 교육당국도 학교운영위가 정상궤도를 이탈하지 않도록 감시 감독을 게을리 해서는 안된다.

그래도 숙제는 남는다. 부유한 학부모가 기부금을 많이 낼 수는 있지만 이것이 자녀에 대한 특별대우로 이어지는 일이 용납돼서는 안된다. 마찬가지로 기부금을 못내는 학생에게 어떤 형태로든지 불이익이 주어져서도 안된다. 기부금과 학교교육이 각각 별개의 것으로 운영되지 않으면 처음부터 제도를 실시하지 않은 것만 못하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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