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해탐사대,日근해서 SOS요청…「고구려후예4人」 전설로

입력 1998-01-24 20:40수정 2009-09-25 2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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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아, 끝내 겨울바다에 지고 말았다. 발해항로 뗏목탐사의 꿈. 1천3백년전 고구려인들의 굳센 의지를 되살려 보이겠다던 네사람의 열망은 덧없이 스러졌다. 25일간 살을 에는 겨울바다위 사투의 보람도 없이 일본 오키섬 근해에서 표류하다 끝내 비운을 맞은 장철수(張哲洙·38·한국해양대 석사과정) 이용호(35·그래픽 아티스트·촬영기록 담당) 이덕영(李德榮·49·선장) 임현규(任玄奎·27·한국해양대 해운경영4년·통신담당)씨. 셋이 숨지고 한명은 실종이나 누가 어찌 된건지 아직 신원확인조차 안된다. 탐사지원팀으로 서울 강동구 성내동에 사는 이소희(李素姬·39·여)씨는 23일 오후 4시14분 불길한 전화벨을 들었다. 뗏목 탐사대의 소식을 애타게 기다리던 판이라 얼른 수화기를 집어들었다. 교신을 전담해온 임현규씨의 다급한 목소리였다. “파도가 계속 도고섬쪽으로 치고 있어 자체 접안이 어렵습니다. 예인선을 불러주세요.” 가슴이 덜컹 내려앉았다. 지난해 12월31일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항을 출발한 뒤 20여일간 별다른 어려움은 없었는데…. 이씨는 서둘러 외무부로 연락을 취했다. 그리고 몇시간 동안 소식이 끊겼다. 23일의 몇 차례 교신을 차례로 떠올려보았다. ‘지금 우리는 니가타로 가고 있다’(오전8시경) ‘항해가 순조롭다’(오전10시경) ‘모든게 잘돼가고 있으니 걱정말라’(정오경) “단 한번도 힘들다는 말은 없었는데….” 밤 8시50분경 다시 전화벨이 요란하게 울렸다. “예인선이 도착했으니 걱정하지 말라”는 임씨의 밝은 목소리. 다시 안도. 8분간의 교신을 나눈 뒤 임씨는 “이제 교신을 끝내겠다. 일본 영해법상 더이상 아마추어 교신을 할 수 없다. 내일 아침 다시 연락하겠다”며 교신을 끊었다. 그로부터 3시간이나 흘렀을까. 인천해경 상황실에서 일본해경의 연락이라며 뗏목이 있는 해역에 폭풍주의보가 발효돼 있어 접근하기 어렵다는 소식을 전해주었다. 밤을 꼬빡 새다시피한 이씨에게 24일 오전 7시5분 뗏목이 전복됐다는 청천벽력이나 다름없는 ‘비보’가 전해졌다. 〈금동근·권재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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