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터를 잃은 사람들]『자리없어요』…재취업「하늘별따기」

입력 1998-01-14 19:42수정 2009-09-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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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초동 남부터미널 지하철역에 인접한 서울지방노동청 별관. 자동차설비업체 과장으로 근무하다 실직한 박모씨(38·서울 동대문구 장안동)는 직업안정과와 고용보험과가 있는 3층 계단을 올라서다 문앞에서 걸음을 멈춰섰다. “오늘은 성과가 있어야 할텐데….” 사무실 안에는 실업급여와 구직 신청을 하기 위해 찾아온 40여명의 실직자가 몰려있었다. 그러나 상담원의 목소리만 들릴 뿐 정적감마저 감돌았다. 어쩌다 눈길이 마주친 다른 실업자는 황급히 고개를 돌렸다. 매번 똑같은 내용이 붙어 있는 구인안내 벽보지만 박씨는 오늘도 꼼꼼히 살펴본다. 뒤편에서는 30대 여성이 까치발을 하고 섰다. ‘다시 일자리를 구해 보자’며 한가닥 희망을 품고 재취업 창구를 두드려보는 실직자들. 그러나 재취업은 하늘의 별따기다. 환경기사 자격증을 소지한 김모씨(39). 8년간 중소 플랜트회사에서 일하던 김씨는 지난해 9월말 개인사정으로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보름 뒤 같은 업종의 다른 회사에 취직했다. 그러나 한달 전 대대적인 감원바람이 불면서 해고 당했고 재취업을 하려고 보니 상황은 예전과 100% 달라져 있었다. “10여 곳을 찾아다녔는데 모두 고개를 가로저었고 ‘반년 후에나 연락을 주겠다’는 게 가장 희망적인 응답이었습니다.” 달라진 현실을 ‘온몸으로’ 실감하는 사람들은 사무 전문직 실직자들. 대기업 계열 보험회사에서 근무하다 지난 연말에 해고당한 김모씨(48·서울 성북구 안암동). 막노동 자리라도 얻기 위해 인력소개소를 찾아갔으나 “나이가 많은데다 힘도 없어 보인다”며 퇴짜를 맞았다. 의류업체 관리직으로 근무하다 권고사직 당한 박모씨(35)는 미장공으로 일하는 형 덕분에 어렵지 않게 공사장 일을 얻었다. 태어나서 처음 해보는 막노동이었다. “이틀만에 코피가 쏟아지더군요.” 몸무게도 순식간에 7㎏ 줄었다. 그러나 한번 그만두면 다시 일을 맡지 못한다는 강박감에 쫓겨 악을 쓰며 버티고 있다. 재취업이 어렵기는 기능공 실업자도 마찬가지. 20년 동안 용접공으로 일하다 해고된 박모씨(50)는 인천 안산 군포 영등포 등 웬만한 공단은 모두 쏘다녀 보았지만 허드렛일자리 하나 구하지 못한 채 고달픈 나날을 보내고 있다. 실직자의 사연은 구구절절 안타깝지만 실업에 대비한 사회적 장치는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정부는 전국에 46개 노동사무소와 7개 인력은행을 두고 실업급여 지급 및 취업알선 등의 업무를 하고 있으나 연일 쏟아져나오는 실업자를 감당하지 못한다. 서울 동부노동사무소 관계자는 “매일 예년의 세배 가량 되는 1백50여명이 찾아오고 있다”며 “실업급여와 취업알선 외에 재취업교육을 위한 훈련기관과 프로그램의 확충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대기업 임원으로 일하다 최근 해고당한 김모씨(52·서울 강남구 삼성동)는 대량 실업사태에 대해 거시적인 안목의 처방과 근로자의 인내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실업자가 쏟아져나오는 상황에서 재취업은 한계가 있습니다. 김대중(金大中)차기대통령이 추진해온 노사정위원회가 발족한다는데 합의가 도출돼 신속한 구조조정으로 한국경제를 하루 빨리 다시 세우고 그래서 재고용 창출이 늘어나야 합니다.” 〈김경달·금동근·전승훈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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