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장엽-김덕홍 진술내용⑤]『반기우려』 黨간부도 감시

  • 입력 1997년 7월 10일 20시 24분


[주민 통제 실태] ○북한은 계급이 없는 사회라고 주장하면서도 출신성분과 사회성분을 중심으로 「기본 복잡 적대계층」으로 구분, 철저한 차별대우를 하고 있음. ○6.25 전쟁이후 「주민등록 그룹빠」를 조직, 출신성분 친척관계 전쟁경력 등에 대해 여덟차례의 주민성분 조사를 실시하였음. ○주민 감시조직으로 보위부(비밀)와 안전부(공개)가 있는데 김정일이 등장한 70년대 중반부터는 조직요원을 2,3배로 증원하는 등 완벽한 감시체계를 구축하고 있음. [인권 탄압 실상] ○김정일은 『국제사회에서 핵문제 화학무기에 이어 다음에는 인권문제를 들고 나올 것』이라고 말한 바 있으며 북한에는 인권관련 법률을 형식상으로 만들어 놓았을 뿐 인권자체가 없다고 보아야 함. ○「통제구역」은 56년8월 발생한 「8월 종파분자사건」(최창익 윤공흠 등의 반김일성 음모)에서 유래한 것으로 ○김일성이 『종파분자들은 머리꼭대기까지 잘못돼 있어 가족들과 함께 산간벽지로 보내 격리시켜 살게 해야 한다』고 언급한 바 있음. ―최초로 통제구역이 설치된 지역은 58년말 평남 북창군 소재 득장 탄광이었으나 그 이후에 평양 승호리 등 여러곳에 설치하였으며 ―처음에는 종파분자만을 통제구역에 보내다가 나중에는 김부자 비난 등 정치범들을 수용하였음. ○60년대경 김일성이 『난쟁이들이 종자를 퍼뜨리면 안되기 때문에 한곳에 모아두라』고 지시함에 따라 함남 정평군에 난쟁이수용소를 설치하여 집단 수용하고 있음. ○최근에는 공개처형이 전국에서 집행되고 있는데 ―92년도에 주민들이 공무중인 안전원들을 구타하자 김정일이 『이제부터는 총소리를 내야겠다. 안전원에 손을 대면 무조건 쏘아버려라』고 지시함에 따라 확대되었으며 ―95년에 외화벌이 명목으로 포로노영화를 만든 것이 문제가 되어 영화부문 간부와 배우 등 7명이 평양 형제산 구역에서 30만명의 군중이 모인 가운데 공개총살된 바 있음. [범죄 만연 실태] ○80년대 후반부터 사회주의 도덕성이 무너져 각종 범죄가 급증하기 시작했는데 이는 경제적 궁핍이 주원인이지만 젊은 사람들이 군대에서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이겨야 한다』는 것만을 배워 온데에도 원인이 있음. ○범죄자 수용시설로는 각도에 교화소가 한개씩 있고 시 군안전부에는 「구류소」가 설치되어 있는데 수용인들은 대규모 토목공사 또는 공장지역에 강제노동인력으로 동원되고 있음. ―평양시의 경우 보통강구역에 수천명 수용규모의 제8교화소가 있으며 ―평북 신의주 교화소는 여자죄수들만 수용하는데 미상시기에 남신의주로 이전하였음. [당간부 생활 및 동향 감시실태] 〈생활 실상〉 ○김국태 김기남 조명록 김영춘 김용순 이하일 이창선 등 김정일 핵심측근들은 중앙당사 옆에 위치한 아파트에 살고 있는데 이들의 아파트는 일반아파트 두채를 통합한 호화 주거지임. ○정치국 후보위원 부총리급 이상은 차량을 지급해 주고 있는데 부총리급은 벤츠 280형, 정치국 위원은 벤츠 380형임. 〈동향감시 실태〉 ○당 간부들에 대한 감시는 일반주민들보다 더 심하며 심지어 집에 도청장치까지 해놓고 일거수 일투족을 감시하고 있음. ○당 간부들의 조직생활은 군대보다 더욱 심한데 점심시간에 1분만 늦어도 생활총화시 자아비판을 하도록 하고 있음. ○이같이 고위간부들에 대한 엄격한 감시 통제를 하는것은 김정일이 반기를 들 가능성이 가장 많은 대상으로 의심하고 있기 때문임. 〈간부 비리〉 하부당으로 내려갈수록 비리가 더욱 심한데 군당은 집행기관이기 때문에 군당 리당 비서들이 주민들에 대해 왕노릇을 하고 있음. ○최근 간부비리가 가장 극심한 분야는 무역 외화벌이 부서와 주택배정 직장배치부서 등임. ▼ 북한 대외관계 ▼ [외교정책 전략] ○소련 동구붕괴 이후 북한 대외정책의 핵심은 「체제고수」라는 기본목표하에 내부를 공고히 하면서 대국(주변4각)들과의 마찰을 가급적 피하고 이들을 이용해 나가는 전략임. ○외교정책 주도인물로는 김영남 강석주 등을 들수 있는데 외교부가 주관한 대미 핵협상이후 강석주가 김영남을 제치고 김정일에게 직접 보고하는 등 신임을 받고 있음. ○북한지도층은 일본으로부터 배상금을 받아 경제난국을 타개하려고 했는데 일―북 관계에 진전이 없자 미국과의 관계가 먼저 개선되어야 함을 깨달았음. ○북한이 미국과의 관계에 주력하고 있는 것은 중국의 간섭을 견제하면서 대미관계 개선을 통해 일본을 따라오게 하고 한국과 미국을 이간시키기 위한 것임. [주요국과의 관계] 〈미―북 관계〉 ○김정일의 대미접근 의도는 ―미국과의 관계개선을 통해 시간을 벌면서 「평화적」이라는 대외명분도 세우려는 것으로 ―중국이 개혁 개방의 길로 나아가는데 대해 골탕을 먹이고 남한을 고립시키는 등 여러 책략을 기본고리로 미국과 상대하려는 것임. ○김정일은 미국을 타도대상인 적인 동시에 이용할 대상으로 인식하고 있어 미국과의 수교가 상당기간 성사되지 않을 것으로 보며 수교시 주한미군 철수문제가 제기되고 북한의 남한 고립정책이 더욱 강화될 것임. ○북한이 미국과 미사일 관련 협의에 수표하더라도 종이짝에 불과할 것이므로 이를 지키지 않을 것임. ○내부적으로 「미―북 핵합의」를 『신출귀몰한 김정일의 지시에 따라 승리한 것』으로 선전하고 있으며 대부분 주민들은 정보가 차단되어 있어 모두 이를 믿고 있는 실정임. 〈일―북 관계〉 ○김정일이 『일본에 대해서는 고자세를 취함으로써 일본을 끌어당기라』라 지시한바 있으며, 대일관계 개선 목적은 단지 사죄와 보상금을 얻어내는데 있음. ○일본과의 수교회담은 처음에는 일본과 직접하면 된다고 생각했으나 차차 미국의 승인없이는 안된다고 생각하게 되어 대미관계 개선에 우선을 두고 있음. ○일―북 수교회담이 조만간 재개될 가능성이 있으며 1백억달러 정도의 보상만 받을수 있으면 당장이라도 수교할 것임. 〈중―북 관계〉 ○북한과 중국과의 관계는 계속 유지될 것이며 북한은 미국과의 접근을 원치않는 중국을 자극하여 보다 많은 지원을 얻어내려 할 것임. ○북한은 한중 수교이후부터 중국을 자본주의 국가로 인식하고 있으며 외교적 사안을 전혀 통보하지 않는 등 다소 불편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음. ○북한은 소련붕괴이후 중국의 영향력으로부터도 벗어나려 하고 있기 때문에 중국측에서 김정일을 수차 방중 초청해도 거절하고 있음. 〈러―북 관계〉 ○북한은 남쪽을 무력으로 통일시키는데 러시아로부터 지원을 받을 수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크게 비중을 두지 않고 있음. ○러시아가 한국의 자본과 러시아 기술을 이용하여 북한의 공장을 정상화시키려고 할 경우 북한은 설비는 받아들일 것이나 남쪽인원은 받아들이려 하지 않을 것임. [조총련의 대북송금 실태] ○김정일은 조총련의 송금을 최대의 명줄(중요자금원)로 간주하고 있으나 ―80년대에는 송금액이 6억달러 정도였으나 지금은 정확한 액수를 알 수 없으며 빠찡꼬 부동산 등의 수입이 감소하여 많이 줄어들고 있음. ―또한 북한은 조총련에 교육비 명목으로 선전차원에서 자금을 보내기는 하지만 직접 투자는 하지 않고 있으며 ―지난번 일본 지진시 북한이 위로금을 보냈을 때 「황」이 『뭐 그렇게 많이 보내느냐』고 하자 통전부 간부가 『보내면 몇배로 되돌아온다』고 대답한 바 있음. ○지난 91,92년도에 일본과 수교교섭시 일본으로부터 배상금을 1백억달러 이상 받아낼 계획이었음. ○김일성 생존시에 배상금을 쓰는 문제에 대해 조금 논의를 했는데 경제부문이 아닌 다른 부문에 쓰려는 것으로 들은 바 있음. ▼ 대남 및 남북관계 ▼ [북한의 대남 기본전략(무력적화통일)] ○과거 김일성은 대남혁명전략으로 남한내 이른바 「민족해방 인민민주주의혁명」을 일으킨 다음 연방제로 통일하는 평화적 방법과 전쟁이라는 비평화적 방법을 병행하였음. ○김정일은 오직 무력에 의해서만 통일이 가능한 것으로 보고 있으며 남한에 비해 경제력은 열세이나 미국과 일본 등 외부간섭이 없으면 100% 힘에 의한 적화통일이 가능하다고 믿고 있음. ○극심한 식량난에도 아랑곳없이 군사력 강화는 물론 무력통일을 위한 사전 기반조성의 일환으로 주한미군 철수, 남한 내부와해 및 지하당조직 공작을 추진하고 있음. ○특히 최근에는 남한과 해외의 군사정보 수집을 위해 별도 공작기구를 설립하는 등 군관련 공작에 주력하고 있음. [연방제 통일전략(합작 통일전략)] ○북한의 기본 대남전략은 ①남한을 내부적으로 와해시키고 ②무력으로 밀고 나가자는 것이며 현재 「남한정세가 정치적 문제, 학생데모 등으로 혁명의 좋은 방향으로 나가고 있다」고 인식하고 있음. ○북한이 대남 강경노선을 유지하는 것은 김정일이 『아버지의 뜻을 이어 무력으로 통일해야 한다』고 결정한데 따른 것이며 남북관계에서 온건파가 발붙일 자리는 없음. ○북한의 연방제 통일전략은 외국 등 외부의 간섭을 배제한 가운데 남한내에 혼란을 일으키고 인민 봉기에 의한 정권을 수립한 후 합작하겠다는 것으로 속임수에 불과함. ○김정일은 개방을 하면 체제가 무너지고 자신도 죽는다는 것을 알기때문에 공식권력승계를 하더라도 대남정책에는 변화가 있을 수 없고 있지도 않을 것임. [남북대화] 〈협상관〉 ○북한은 남북대화를 「적과의 전쟁」으로 간주하여 모든 전략을 김정일의 결재하에 추진하고 있음. ○남북대화 전략은 노동당 통일전선부에서 수립하며 동 전략에 따라 조평통 정무원 등 관계자로 구성된 회담대표단이 이를 수행함. ○90년 남북 고위급 회담에 응했던 것은 남한을 안심시키고 국제적 이미지를 좋게 하자는 의도였으며 당시 연형묵 총리는 로봇에 불과했음. 〈정상회담〉 ○94년 남북 정상회담을 추진한 것은 김일성이 서울을 방문할 경우 지지하는 사람이 많아 유리할 것으로 판단했기 때문임. ○회담목적은 연방제 통일과 남북 경제교류 문제를 논의하려는 것이었음. 〈4자회담〉 ○4자회담은 잘 응하려 하지 않을 것이며 쌀을 준다면 나올 수는 있겠으나 딴 이야기나 하며 시간을 끌 것임. ○북한이 「3+1」회담을 주장한 이유는 중국의 조선문제에 대한 간섭을 싫어하기 때문임. ○북한 고위인사 중 대미협상에 반대하는 사람은 없으며 대미협상이 김정일의 권위와 위상을 높이는 것으로 보고 있으나 4자회담 참석에는 반대하고 있음. 〈민간급 접촉〉 ○조선기독교연맹 위원장 강영섭은 통일전선부 사람들이 작성해 주는 것을 읽는 허수아비에 불과하며, 북한에서 종교를 믿으면 곧바로 통제구역으로 쫓겨남. ○민간급 접촉은 김정일의 지시로 통전부에서 전담하고 있으며 남한사회를 교란시키기 위해 재야단체 등을 반정부 투쟁에 끌어들이려는 유인술책임. ○또한 당국간 대화 거부입장을 정당화 하여 국제사회의 비난을 피하고 국내 일부단체의 대북접촉을 부추겨 통일국론을 분열시키면서 경제지원 등도 얻어내 보려는 속셈임. 〈남북 경협〉 ○남북경협은 대외경제위 산하 「대외경제협력 추진위」가 주관하고 있으며 동 기구는 크게 나진 선봉투자, 금강산 개발, 남한 기업인 접촉 등 세가지 업무를 담당함. ○최근 언론에 보도된 바와 같이 비단섬을 경제특구나 관광특구로 개발하려고 하는 것은 중국인을 대상으로 1일관광을 시키는 정도일 것이기 때문에 경제발전에 도움이 되지는 못할 것으로 봄. ○북한이 나진 선봉지역을 개방한 것은 폐쇄정책을 고수하고 있다는 국제적 비난을 모면해 보기 위한 것으로 남한기업의 투자는 원하고 있지 않으며 남한기업인에게는 경영권을 절대로 주지 않을 것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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