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기개발 생산 및 기술도입 실태]
○북한의 잠수함 건조는 러시아가 해체한 잠수함에서 회수한 강판을 도입하여 사용하고 부품은 외국에서 도입하여 사용하고 있는데 특히 전자부품 및 장비는 일본에서 도입하고 있음.
○김정일은 중국의 무력을 높게 평가하지 않기 때문에 중국으로부터의 무기 또는 무기개발 기술을 도입하고 있지 않으며 소련의 신형무기를 얘기해도 『그런 것은 다 낡은 것』이라고 무시하면서 설명서를 보지도 않음.
○북한은 무기개발을 위해 필요한 외국 기술자 초청은 인민무력부가 외교부를 통해 비밀리에 추진하고 있음.
[경제난 불구 군수부문 우대정책 지속]
○67년 제4기 15차 당 전원회의시 경제 국방 병진정책을 제시한 이후 군수부문 우대정책을 지속 실시하고 있음.
―동 회의에서 주변국가들의 정세를 분석한후 무력통일을 자체의 힘으로 해야 한다고 결정하였음.
―그후부터 각 공장 기업소 생산량의 일정 부분을 군수부문에 공급토록 하였음.
○김정일의 군수공장 우대 실태를 보면
―각 공장 기업소는 민수에는 일절공급하지 못하더라도 군수부문에는 계획대로 최우선 공급해야하며 그렇지 않으면 군사재판에 회부토록 하였음.
―군수공장은 정무원과 별도로 당중앙위 군수공업부(비서 전병호)에서 관장하고 있으며 모든 민수공장에도 군수생산 직장(부서)을 설치하였으며 여기에 대한 검열도 군대가 하고 있음.
○군수생산계획 집행여부를 평가하기 위해 당중앙위 군사위원, 정치국 상무위원, 도당 책임비서, 공장 기업소 당비서 및 지배인 등이 참석한 가운데 「당 중앙군사위원회 명령 총화회의」를 개최하여 실적 부진자는 직위고하에 관계없이 문책하고 있음.
[전쟁물자 비축]
○군수동원총국에서 전쟁물자 비축을 총괄하며 동 총국은 행정적으로 호위총국과 같은 독자적인 기구로서 정치위원이 중장으로 편제되어 있는 등 중요시되는 기관임.
○전쟁물자의 수입은 2경제위원회가 외화벌이를 해서 조달하며 정무원 등 다른 부서에서는 관여하지 못함.핵개발 문제김일성은 64년 중국의 핵실험에 대해 『장수가 바지벗고 칼차는 격』이라고 말했던 점으로 보아 당시만 해도 핵무기를 가지려는 의지가 있었던 것 같지는 않음.
○84∼85년경 당시 주평양 소련대사가 황장엽에게 『북한이 핵을 개발한다는 말들이 많은데 어떻게 된 것이냐』고 물으면서 NPT가입을 종용한데 대해
―황장엽은 『그런게 있겠는가』하는 식으로 대응한후 이를 김부자에게 보고하자 김부자로부터 『묵살하라』는 지시를 받은바 있음.
○김영남 외교부장은 85년 12월 NPT에 가입하고 핵안전협정을 체결(92년 4월)했으나 군수담당 관계자들은 『NPT 가입으로 골치가 아프게 되었다』면서 김영남을 비판한 바 있음.
○북한이 핵무기를 가지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게 된 것은 비록 핵무기와 관련시설을 직접 본적은 없으나 92년 IAEA 특별 사찰문제가 제기되었을 때 NPT를 탈퇴(93년 3월)했다는 점에서 모든 당비서들이 그렇게 믿게 되었음.
[미―북 핵합의 관련동향]
○미―북 핵협상시 모든 전략은 김정일이 강석주를 통해 직접 지시했으며 여타기관은 여기에 관여하지 않았음.
○북한이 화력발전소 대신 경수로 지원을 요청한 것은 화력발전소는 완공후 유류 등 원료공급 능력이 없는 반면 경수로는 연료인 우라늄이 대량 매장되어 있기 때문이었을 것임.
○경수로 건설 관련 남측인력의 대규모 방북시 신포인근을 철저히 통제, 북한주민과의 접촉을 최대한 차단할 것임.
[핵관련 북한내 동향 및 기타사항]
○91년 12월 「한반도 비핵화선언」에 합의한 동기는 대외적으로 평화 이미지를 과시하고 남한 내부의 핵관련 정책분열을 조장키 위한 것이기 때문에 북한에서는 별다른 의미를 두지 않고 있음.
○85년12월 NPT 가입은 구소련으로부터 원자력발전소 건설을 위한 지원을 얻기 위한 것이었음(85년12월 구 소련과 440MW 경수로 4기 공급협력협정 체결).
○92년4월 IAEA와 핵안전협정을 체결한 것과 미―북 제네바 기본합의(94년10월) 등은 모두 시간을 벌기위한 전략에서 추진되었고 그 결과 북한은 경수로 건설, 매년 50만t 중유 획득 등의 이득을 보게 되었으며 아무것도 잃은 것이 없다고 인식하고 있음.
○일부 고위층 간부들은 92년4월 IAEA와 핵안전협정을 체결, 이후 핵사찰 문제로 인해 대북한 국제정세가 긴장하게 돌아가자 자승자박한 것이 아닌가 하고 외교부에 불만을 토로한 바 있음.
[화생방무기·미사일 개발실태]
○높은 수준의 화학무기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믿고 있으며 「화학무기 금지협약」에도 가입하지 않는다는 것이 북한의 확고한 입장이며 상층부에서는 생물무기도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인식하고 있음.
○북한은 남침시 미국의 개입을 방지하고자 화학무기가 장착된 장거리 미사일로 「일본을 초토화」시키겠다고 위협할 것임.
○항간에는 포에 장착하여 발사하면 부근의 산소가 없어져 모든 것이 죽는다는 폭탄(기화폭탄 추정)이 개발되었다는 소문이 있음.
[한국군·주한미군에 대한 인식]
○북한권력 핵심층과 군 간부들은 북한의 재래식 전력이 세계 4위 수준이며, 화학무기는 세계적 수준으로 약점이 없는 부대라고 생각하고 있어 한국군의 능력에 대해 심각하게 여기지 않고 미군만 없으면 전쟁에서 이길 수 있다고 믿고 있음.
―남한의 함정 항공기 움직임을 적시에 식별 감시할 수 있는 능력을 보유하고 있고
―남한 국방비가 북한보다 많다고 하지만 이에 상관없이 수도권에 대한 5,6분 정도의 포공격으로도 잿가루가 된다고 믿고 있음.
○지금까지의 전쟁에서는 미국땅에 포탄이 떨어지지 않았지만 앞으로 북한과의 전쟁에서는 미국은 결코 후방이 될 수 없다고 하면서 북한 특공대가 남한과 같이 미국에도 임의의 시간에 침입할 수 있는 것처럼 주민들에게 선전하고 있음.
○미국이 침공할 경우 인적손실을 감수하더라도 함정 항공기 등을 몸으로 직접 막게되면 미국이 물러날 것으로 예상하고 있으며 걸프전은 전쟁이 아니라고 하면서 미국과 대응할 수 있는 기술적 준비가 다 되어 있다고 함.
○91년 걸프전 이듬해 김정일은 미국 무기의 약점을 분석하고 이를 격파하는 영화를 제작, 군내 작전국 등 지휘부 간부에게 시청케함으로써 미군도 이길 수 있다는 자신감 고취교육을 실시하였음.
○미순양함 1척을 자폭해서라도 폭파시키면 미국내에 반전여론이 반영되어 한국을 포기하게 될 것이며, 남쪽을 「불바다」로 만들겠다는 말만으로도 남한인민들을 전쟁공포로 떨게 만들 수 있다고 믿고 있음.
[팀스피리트훈련에 대한 인식]
○북한 당 정간부들은 팀스피리트훈련의 목적이 ①훈련을 진행하다 북한의 방어태세가 허술할 경우 북침하거나 ②한반도에 전쟁분위기를 조성하여 북한경제를 마비시키기 위한 것으로 인식하고 있음.
○동 훈련기간중 전군의 군사장비들이 상시 기동태세를 유지함으로써 유류난 속에서도 막대한 유류소모가 불가피하고 군 병력의 경제건설 활동도 중단됨으로써 북한경제에 미치는 피해가 상당함.
○특히 93년3월 팀스피리트훈련은 핵사찰 문제로 인해 「준전시 상태」를 선포하는 등 최고조의 긴장태세를 유지하였는바
―김정일은 집무실 지하에 설치된 작전상황실에서 집무를 하였고
―중앙당은 각과별로 1명씩 당중앙위원회에서 비상근무를 하였으며 모든 차량을 징발하여 대기시키고 군대를 갱도에 투입하였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