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생각 저생각]장기기증은 본인 서명하에

  • 입력 1996년 12월 8일 19시 56분


신문이나 방송에서 뇌사상태에 있는 환자의 장기를 그의 부모나 형제 혹은 배우자가 기증했다는 보도가 미담거리로 나가는 것을 종종 본다. 내 생명의 중요한 부분을 타인에게 기증하여 그 사람의 생명을 좀더 연장시켜 준다는 사실 그 자체는 훌륭하고 아름다운 이야기일 수 있다. 장기를 기증받는 입장에서는 더욱 그러하다. 문제는 뇌사상태에서는 뇌의 전기능이 소실되었을 뿐 심장과 폐를 비롯한 모든 장기들이 살아 있다는 데에 있다. 숨도 쉬고 있고 맥박도 뛰고 있고 체온도 유지되는 덜 죽은 상태라는 데에 섬뜩함이 있는 것이다. 어차피 죽을 몸, 장기들이 살아 있을 때 그것을 떼내어 타인을 좀더 살게 해주자는 의도에서, 또한 장기 절제행위가 현행법의 살인죄로 형사처벌 받지 않게 하자는 의도에서 뇌사를 죽음으로 입법화하는 과정이 코앞에 다가와 있다. 사람의 생명이 소중함은 두말을 거론할 필요가 없다. 당신도 나도 우리 모두의 생명은 억만금을 주고도 바꿀 수 없는 오로지 유일하고 경외스런 존재이다. 사람의 생명은 감히 누구도 살상할 수 없는 대상이며 실용적인 가치로 따질 대상이 아닌 것이다. 인간은 존엄하게 죽을 권리도 있다. 부모 형제 배우자 그 누구도 내 생명을 좌지우지할 권리가 없는 것이다. 본인이 정상의 건강상태일 때 기증의사를 분명히 밝혀 서명하지 않는 한 그 누구도 손댈 수 없는 나만의 생명인 것이다. 세상이 하도 요상하다 보니까 뇌사가 입법화되면 일반혼수가 뇌사로 오진(誤診)되지는 않을까, 장기절제와 여타 목적있는 이유로 허위 사망진단이 남발하지 않을까, 따라서 사람의 장기 시장이 공공연히 형성되어 생명경시의 현상이 가속화되는 것이 아닐까 걱정이 많다. 사람의 생명은 평등하고 존엄하고 외경스런 존재이며 유일하기 때문이다. 김 지 연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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