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는 조국을 용서하지 않았다[김지현의 정치언락]

  • 동아일보
  • 입력 2024년 3월 18일 14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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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혁신당 조국 대표가 14일 오후 광주 동구 충장로에서 발언 도중 주먹을 들어 보이고 있다. 그는 이 자리에서 “윤석열 대통령과 한동훈 위원장은 전두환의 후예”라고 했다. 광주=뉴스1
조국혁신당 조국 대표가 14일 오후 광주 동구 충장로에서 발언 도중 주먹을 들어 보이고 있다. 그는 이 자리에서 “윤석열 대통령과 한동훈 위원장은 전두환의 후예”라고 했다. 광주=뉴스1
지난주 더불어민주당 박용진 의원을 인터뷰(https://www.donga.com/news/article/all/20240313/123959528/1) 했는데 그가 ‘조국혁신당’에 대해 재밌는 포인트 하나를 짚더군요.

―조국혁신당 지지율이 올라가면서 민주당이 슬쩍 다시 조국의 손을 잡으려는 것 같다. ‘조국혁신당’이 야권 파이를 키우고 있다는 주장에 동의하는가.

“야권 파이를 키우는 것인지 잘 모르겠다. 나는 민주당 파이를 나눠 가진다고 생각한다. 최근 여론조사를 보니 20대의 조국혁신당 지지율이 0%더라. 민주당이 지난 대선 때 20대 표심을 끌고 오지 못해 대체 몇 번을 사과했냐. 그 때 얼마나 많은 반성과 사과를 했는지를 다 잊고 또 이러고 있구나, 과거의 판단 실수를 다시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이번에도 20대, 30대는 포기하겠다는 것 아닌가. 기존 우리의 파이를 나눌 게 아니라 더 가져와야 할 생각을 해야 하는데….”
박 의원이 언급한 조사는 3월 1주 차 한국갤럽 여론조사입니다. 창당 후 이뤄진 첫 조사에서 조국혁신당은 6% 지지율을 보이며 화려한 신고식을 치렀습니다. 이어진 3월 2주 차 조사에선 전주보다 1%포인트 오른 7%를 보였고요.

지지율에 들뜬 듯 조국 대표는 “민주당과 조국혁신당을 합한 파이가 더 커지고 있다”(10일 MBN 방송) “민주당은 민주당의 길을 가고, 나는 우리의 길을 가다 보면 크게 봐선 파이를 키우는 일이 될 수 있다” (19일 김어준 유튜브) 등 연일 ‘범(汎)야권 파이론’을 주장하고 있습니다. 15일 YTN 라디오에선 국민의힘과 한동훈 비상대책위원장을 향해 “표준어로 하면 어감이 살지 않을 것 같아서 부산 사투리로 한마디 하겠다. ‘느그들 쫄았제’”라고도 했죠. 자신감이 상당히 충만해 보입니다.

3월 5일 국회에서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당 대표 취임 인사차 예방한 조국혁신당 조국 대표(오른쪽)와 악수하고 있다. 박형기 기자 oneshot@donga.com
3월 5일 국회에서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당 대표 취임 인사차 예방한 조국혁신당 조국 대표(오른쪽)와 악수하고 있다. 박형기 기자 oneshot@donga.com
민주당도 조국혁신당의 기세에 당황한 듯하더니 어느덧 점점 노골적인 협업 체제로 가려는 모양새입니다. 이해찬 상임선거대책위원장은 19일 선대위 회의에서 “조국혁신당에 그동안 정치에 관여하지 않았던 사람들도 어느 정도 참여한다는 얘길 들었다”며 “앞으로 저도 그쪽(조국혁신당) 분들과 더 많이 만나서 대화도 하고, 방향을 조율하는 기회를 갖도록 하겠다”고 했습니다. 수도권에 출마한 한 의원은 “3월 초 들어 갑자기 야권 우세로 분위기가 확 바뀌고 있는데, 이게 다 조국혁신당이 등판하고 나고부터다. 호남뿐 아니라 경기, 인천 등 민주당 텃밭마다 조국혁신당 바람이 심상치 않다. 지금 민주당으로선 좋든 싫든 다시 조국의 강으로 자진해서 뛰어들 수밖에 없는 분위기다”라고 전하더군요.

이런 기류에 ‘미스터 쓴소리’ 박 의원이 20대 지지율이나 좀 제대로 보라고 지적하고 나선 겁니다. 3월 첫 주 조사에서 조국혁신당의 18~29세 지지율은 응답이 50 사례 미만이라 아예 집계조차 되지 않았습니다. 20대 중에선 ‘무당층’이라는 응답이 47%로 가장 높았고 이어 민주당 27%, 국민의힘 17%, 개혁신당‧진보당 4% 순이었습니다.

3월 2주 한국갤럽 여론조사 결과. 조국혁신당에 대한 20대 지지율은 전주에 이어 0%를 보였다. 반면 무당층이라고 답한 20대는 42%였다. 한국갤럽 홈페이지
3월 2주 한국갤럽 여론조사 결과. 조국혁신당에 대한 20대 지지율은 전주에 이어 0%를 보였다. 반면 무당층이라고 답한 20대는 42%였다. 한국갤럽 홈페이지
3월 둘째 주 조사에서도 18~29세의 조국혁신당 지지율은 0%였습니다. ‘무당층’이 42%로 여전히 1위였고, 이어 민주당 28%, 국민의힘 22%, 개혁신당 3% 순이었습니다. 조국혁신당 지지율은 3월 첫 주 40대 12%, 50대 11%, 60대 8% 순이었고, 둘째 주엔 50대 14%, 40대 11%, 60대 8%였습니다.

물론 아직 선거일까지 20일 이상 남은 만큼 추이는 더 지켜봐야겠지만, 적어도 아직까지 20대는 조국을 용서하지 못한 듯합니다. 이들은 ‘조국 사태’가 터졌던 2019~2020년 14~25세였죠. 한창 입시 중이거나 대학을 다니던 중이었겠네요. 우리는 이미 지난 총선과 대선, 지방선거를 거치며 ‘불공정’과 ‘아빠찬스’ 등에 분노하던 20대 표심을 확인한 바 있습니다. 민주당도 선거를 앞두고는 지지율 아킬레스건으로 떠오른 20대를 향해 수도 없이 사과했죠.

“청년들이 느꼈을 불공정에 대한 상대적 박탈감, 좌절감은 깊이 있게 헤아리지 못했다. “(2019년 이해찬 당시 당 대표)
“기회가 평등하고 과정이 공정하고 결과가 정의로운 나라가 되도록 공정과 정의의 가치를 바로 세우겠다.”(2021년 6월 송영길 당시 당 대표)
“공정성이 문제 되는 시대 상황에서 민주당이 국민께 공정성에 대한 기대를 훼손하고. 실망시켜드리고 아프게 한 점은 변명의 여지 없는 잘못”(2021년 12월 이재명 당시 대선후보)

이렇게 구구절절 사과해놓고 이제 와서 눈앞의 지지율이 다급해지니, 또다시 조국의 손을 잡는 길을 택하겠다는 겁니다.

조국혁신당 조국 대표가 3월 10일 오후 경남 김해시 진영읍 봉하마을에서 지지자가 건네준 손팻말을 들어 보이며 웃고 있다. 팻말에는 ‘민주당은 좋겠다~조국혁신당 있어서’라고 적혀 있다. 김해=뉴스1
조국혁신당 조국 대표가 3월 10일 오후 경남 김해시 진영읍 봉하마을에서 지지자가 건네준 손팻말을 들어 보이며 웃고 있다. 팻말에는 ‘민주당은 좋겠다~조국혁신당 있어서’라고 적혀 있다. 김해=뉴스1
조국 대표는 20대가 조국혁신당을 외면하는 것에 대해 “현재 20대는 조국혁신당에 대해서 관심이 없을 뿐만 아니라 정치 자체에 대한 관심이 없는 것 같다”고 했죠. 그러면서 “20대의 정치 참여를 높이기 위해서는 같이 노력해야 한다”며 “현재 20대, 30대는 단군 이래 가장 스펙이 높은 세대라고 생각하는데, 그럼에도 일자리를 구하기 힘들고 연애하기 힘들고 이런 상황에 있다는 건 신생 정당이긴 하지만 저희 당을 포함해 기성 정당과 세대 모두의 책임”이라고 했습니다.

20대의 정치혐오에 가장 크게 기여하신 분께서 저런 말씀을 하시니 너무 황당합니다.

비례대표 출마를 선언한 조 대표는 22대 국회가 열리면 ‘한동훈 특검법’부터 발의하겠다고 공약했습니다. 그는 지난 12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특검 수사 대상 안에 한동훈 비상대책위원장의 딸 문제도 포함하겠다고 했죠. 그는 이 자리에서 “논문 대필, 해외 웹사이트 에세이 표절, 봉사활동 ‘2만 시간’으로 부풀려 봉사상 등 수상, 전문 개발자가 제작한 앱을 직접 제작한 것처럼 제출 등을 실행했다는 의혹에 대한 업무방해 사건”이라며 한 위원장 딸 관련 의혹을 일일이 읊기도 했습니다.

자녀 입시 비리와 감찰 무마 혐의로 2심에서 징역 2년의 실형을 선고받은 사람이 저런 말을 하니 이것 역시 너무 황당합니다.

조국혁신당 조국 대표가 12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22대 국회 첫번째 행동으로 한동훈 특검법을 발의하겠다”고 밝혔다.  뉴스1
조국혁신당 조국 대표가 12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22대 국회 첫번째 행동으로 한동훈 특검법을 발의하겠다”고 밝혔다. 뉴스1
그는 연일 “일기장, 체크카드, 다녔던 고등학교까지 압수수색한 제 딸에게 했던 만큼만 (한동훈 위원장 딸에게도) 하라”, “한 위원장을 만나면 법무부 장관 시절 따님의 11개 입시 비리가 모두 무혐의 처분된 데 대해 의견을 물을 생각”이라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습니다.

영화 ‘테이큰’ 속 딸을 지키려는 리암 니슨 컨셉이라도 잡은 것 같습니다. 그의 공세에 한 위원장은 “3심에서 유죄가 확실시되는 분”이라고 맞받았고요. 그야말로 자기 딸만 소중한 아빠들의 이기적인 대리전 양상이네요. 이거 뭐 법무부 장관 출신 아버지 없는 사람은 서러워서 살겠습니까. 저도 이런데 한 치 앞도 안 보이는 미래를 홀로 묵묵히 준비 중인 수많은 20대는 오죽할까 싶습니다.

‘모두 다 관심없거나 싫다’는 20대 무당층 비율이 40%대로 가장 높다는 점을 모두 꼭 기억했으면 합니다. 지난 대선과 지방선거에선 ‘분노 투표’라도 했던 20대가 어느덧 더 이상 화낼 힘조차 없는 건 아닌지, 정치를 통해 바꿔보자는 마지막 희망조차 포기한 건 아닌지 정치인 모두 책임을 갖고 고민해야 할 숫자입니다.

::3월 1주 차 한국갤럽 여론조사::
5~7일 전국 18세 이상 1000명에게 전화 조사원이 무선전화로 인터뷰. 표본오차 ±3.1%포인트에 95% 신뢰수준, 응답률은 14.4%‧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참조

::3월 2주 차 한국갤럽 여론조사::
12~14일 전국 18세 이상 1002명에게 전화 조사원이 무선전화로 인터뷰. 표본오차 ±3.1%포인트에 95% 신뢰수준, 응답률 14.7%‧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참조
김지현 기자 jhk8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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