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 400만원 보장” 믿고 동남아 갔다가…여권·휴대폰 뺏기고 감금

  • 동아일보
  • 입력 2024년 2월 28일 15시 5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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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교부가 내달부터 특별여행주의보를 내린 태국-라오스, 태국-미얀마 국경검문소. 외교부
외교부가 내달부터 특별여행주의보를 내린 태국-라오스, 태국-미얀마 국경검문소. 외교부
“해외 근무, 월 400 만원 고수익 보장, 비행기 티켓 제공…”

20대 A 씨는 지난해 7월경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이런 글을 발견했다. 동남아 지역에서 일할 근로자를 구한다면서 기본급만 300만 원에 숙식까지 모두 제공한다는 내용이었다. 정보통신(IT) 기술 능력이 있는 사람은 우대한다는 조건도 있었다. A 씨는 게시글 작성자에게 연락하고 며칠 뒤 바로 태국 방콕으로 출국했다.

태국에 도착한 A 씨는 공항에서 업체 관계자를 만나 근무지로 이동하는 버스에 올랐다. A 씨가 산악지대에 있는 허름한 호텔에 도착해서야 뭔가 잘못됐음을 직감했다. 그가 도착한 곳은 미얀마와 라오스, 태국 3개국의 접경 산악지대였다. 일명 ‘골든 트라이앵글’로, ‘세계의 마약공장’으로도 불리는 곳이었다. 이곳엔 카지노, 유흥업소, 보이스피싱 업체들도 밀집해있었다.

● “고수익 알바”에 속아 지난달만 38명 피해
A 씨는 여권과 휴대전화를 모두 빼앗겼다. 이후 하루 종일 온라인 불법 도박사이트를 만들고 관리하는 일을 했다. 업체는 “회사 규정을 왜 안지키느냐”며 그를 구타하기도 했다.

다행히 A 씨는 몇개 월 만에 어렵게 가족과 연락이 닿았고, 당국에 감금 피해도 신고했다. 그는 지난해 11월 한국인 18명과 함께 구출됐다. 감금된지 4개월 여 만이었다.

28일 외교부와 경찰청에 따르면 A 씨처럼 “고수익 아르바이트 자리가 있다”는 인터넷 게시글에 속아 미얀마·라오스·태국 접경지인 골든 트라이앵글 지역으로 입국해 감금당한 뒤 불법 행위에 가담한 한국인 피해자가 지난달에만 38명이나 됐다. 지난해 1월과 비교하면 피해자 숫자가 40% 가까이 늘어난 것.

골든 트라이앵글 지역에서 취업 사기를 당한 피해자는 지난해부터 급격하게 증가했다. 2021년과 2022년엔 피해자가 매년 4명에 그쳤지만 지난해 94명으로 급증한 것. 일단 피해자들은 모두 구출된 것으로 파악됐다. 다만 아직 피해신고를 하지 못한 한국인 피해자들이 현지에 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당국은 밝혔다.

대부분 20~30대인 피해자들은 네이버 밴드 등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해 취업 사기업체의 게시글을 접했다. 업체들은 온라인 커뮤니티에 구인광고를 올린 뒤 “해외에서 어플리케이션 광고 및 회원유입, SNS 카페 커뮤니티 등 광고작업을 한다”고 홍보했다. 하지만 실제로 피해자들은 현지에서 보이스피싱 업체의 콜센터 직원 역할을 하거나, 온라인 도박사이트를 관리한 것으로 조사됐다. 일부 여성 피해자들이 성매매를 강요당하는 일도 있었다고 외교부는 밝혔다.

● 골든트라이앵글 입국 태국 검문소 2곳, 다음달부터 특별여행주의보
한국인 피해자들이 골든 트라이앵글 지역에 일단 감금되면 이들을 구출하는 건 쉽지 않다.

미얀마 골든 트라이앵글 지역에 우리 영사 직원이 방문하려면 먼저 미얀마 외교부 측의 사전 승인을 거쳐야 한다. 미얀마에는 2021년 2월 군부 쿠데타로 군사정권이 들어섰다. 최근에는 민주 저항세력 진압에 몰두하고 있어 우리 국민 구출을 위한 적극적인 협조를 구하기 쉽지 않다는 게 우리 당국의 설명이다. 라오스 골든 트라이앵글 경제특구는 중국 카지노업체인 킹스 로망스가 2007년 부지를 장기 임차해 카지노와 호텔 등을 건설하면서 이 지역의 모든 자치행정 권한을 독점하고 있다. 라오스 경찰이나 중국 공안도 이 지역에 진입하기 어려운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정부는 취업 사기를 당하는 한국인들이 대부분 태국을 거쳐 골든 트라이앵글 지역으로 밀입국한다는 점을 감안해 태국의 국경검문소 두 곳에 대해 특별여행주의보를 1일부터 발령하기로 했다. 특별여행주의보는 네 단계로 분류된 여행 경보 중 2단계 ‘여행 자제’와 3단계 ‘철수 권고’에 준하는 효과를 가진다. 앞서 정부는 지난해 11월 골든 트라이앵글 지역을 포함한 미얀마 일부 지역, 이달부터는 라오스 내 골든 트라이앵글 경제특구에 ‘여행금지’에 해당하는 여행경보 4단계를 발령한 상태다. 이 지역에 체류하려면 당국으로부터 여권 사용 허가를 받아야 하고 무단체류할 경우 처벌받을 수 있다.

외교부 당국자는 “우리 국민들이 중국어가능자, IT 전문가, 단기고수익 보장 등 미끼에 현혹되지 않도록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고 당부했다. 경찰청 관계자는 “근본 예방을 위해선 해외 취업 사기에 연루되지 않고 해당 지역을 방문하지 않는 것이 좋다”고 했다.

고도예 기자 ye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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