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묵은 고난의 행군 꺼낸 김정은…대북제재 속 고육책

뉴시스 입력 2021-04-09 08:13수정 2021-04-09 0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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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세포비서대회서 고난의 행군 선언
김일성 항일빨치산 100일간 행군서 유래
김정일, 96년 국제적 고립 극복 위해 추진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대북 제재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고난의 행군을 재개하겠다고 선언했다. 비핵화와 대북 제재 해제를 위한 북미 대화가 답보 상태인 가운데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김일성·김정일 때 활용했던 구호를 다시 꺼내드는 모양새다.

김 위원장은 지난 8일 열린 조선노동당 제6차 세포비서대회 폐막식에서 폐회사를 통해 “우리 당을 어머니당으로 믿고 따르면서 자기 당을 지키려고 수십년세월 모진 고난을 겪어온 인민들의 고생을 이제는 하나라도 덜어주고 우리 인민에게 최대한의 물질문화적복리를 안겨주기 위하여 나는 당중앙위원회로부터 시작하여 각급 당조직들, 전당의 세포비서들이 더욱 간고한 고난의 행군을 할 것을 결심했다”고 밝혔다.

그는 이날 대외 환경 등이 여의치 않음을 인정하면서 고난의 행군을 통해 대북 제재를 극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고난의 행군이라는 용어는 1938년 말에서 1939년 초에 김일성이 이끄는 항일빨치산이 만주에서 혹한과 굶주림을 겪으며 일본군 토벌작전을 피해 100여일간 행군한 데서 유래했다. 당시 김일성과 항일빨치산은 1938년 12월부터 1939년 3월까지 중국 몽강현 남패자로부터 압록강 연안 국경 일대로 행군한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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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번째 고난의 행군은 1956년 8월 종파사건 전후부터 천리마운동이 전개되는 시기까지 이어졌다.

8월 종파사건이란 1956년 8월 당중앙위원회 전원회의를 계기로 김일성을 당에서 축출하려다 사전에 누설돼 주도자들이 체포된 사건이다. 김일성은 이 사건을 주동한 연안파와 소련파를 대대적으로 숙청했고 당권을 장악해 1인 독재권력 기반을 공고히 했다.

천리마운동이란 하루에 1000리를 달리는 천리마를 탄 기세로 사회주의 건설에서 생산성을 획기적으로 높이자는 의미의 사회주의 노력경쟁운동이다. 사회주의 생산경쟁운동 형태로 시작된 천리마운동은 1950년대 후반부터 1960년대에 북한에서 ‘사회주의 건설과 혁명을 촉진하는 강력한 추동력, 사회주의 건설의 총노선’으로 그려졌다.

김정일도 고난의 행군을 재활용했다. 1996년 제시된 3번째 고난의 행군은 “전체 당원들과 인민군 장병들과 인민들은 백두밀림에서 창조된 고난의 행군정신으로 살며 싸워 나가야 한다”는 김정일 신년사에서 비롯됐다. 이는 1990년대 계속되는 국제적 고립과 자연재해, 경제난, 기아를 극복하고 사회적 이탈을 막으며 김정일에 대한 충성을 강조하기 위해 제시됐다.

북한당국은 1996년 신년사 발표 후 ‘고난의 행군정신’을 강조하면서 군인을 동원해 안변청년발전소와 원산-금강산 철도 등을 건설했다. 사회적 동원 분위기 속에 문예부문에서는 서정시 ‘끝나지 않는 행군길’, 가요 ‘고난의 행군정신으로’, ‘아버지 어머니의 청춘시절’ 등과 영화들이 제작됐다.

고난의 행군 시기를 전후해 북한 내 산업이 붕괴되고 배급이 중단됐다. 석유 수입 제한과 자연재해로 인한 농지의 대규모 파괴가 겹쳐지면서 기아가 발생했다. 배급제와 복지 체계가 붕괴해 사회주의 질서에 혼란이 발생하고 경제난이 심화했다. 그러자 북한주민들은 장마당을 활성화시키면서 스스로 생활을 꾸려나가기 시작했다.

고난의 행군 시기 아사자 수는 수십만명이 넘는 것으로 알려졌다. 통계청이 2010년 11월 발표한 북한 인구 추계에 따르면 북한 지역에서 1994년부터 2005년까지 식량난으로 48만2000명이 초과사망하고 12만8000명의 출생손실이 있었던 것으로 추산됐다. 초과사망은 식량난으로 정상적인 규모를 넘어 발생한 사망자 수를, 출생손실은 식량난의 영향으로 줄어든 신생아 수를 각각 뜻한다.

김정은 위원장이 이날 반사회주의적 현상을 막겠다고 선언했지만 역설적으로 1990년대 고난의 행군은 북한에서 집단주의와 주체사상 등 사회주의적 가치관들이 흔들리면서 다양한 비사회주의적 행위가 확대되기 시작한 시기였다.

대다수 북한 주민들은 장마당에서의 부업벌이에 매달리기 시작했다. 북한 국영기업들도 장마당을 통해 자재를 공급받을 정도였다. 이 때문에 북한에서 시장경제가 급속히 발달하기 시작했다. 고난의 행군은 탈북자가 급속도로 늘어나는 결과를 낳음과 동시에 당과 수령에 대한 실망이 싹트는 계기가 됐다. 빈부격차도 심화됐다.

통일부 국립통일교육원은 북한지식사전에서 “고난의 행군이란 용어가 북한당국에게 사상의지를 강조하는 정치적 구호였다면 북한주민들에게 고난의 행군은 국가의 배급중단으로 인해 자체적으로 생계문제를 해결해야만 했고 살기 위해서는 무엇이든 해야만 했던 절박한 생존의 시기”라며 “고난의 행군은 당시의 절박했던 삶과 죽음의 경계를 대표하는 하나의 상징어가 됐다”고 설명했다.

[서울=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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