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정당 휘저은 김종인 ‘광폭 행보’ 100일…‘합격점’ 우세

  • 뉴시스
  • 입력 2020년 8월 30일 08시 1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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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선 참패 후 '난파선' 제1야당 과감한 쇄신
막말·장외 투쟁 대신 원내 정책 투쟁 박차
보수 딱지 떼고 5·18 '무릎 사과' 파격 행보
당 지지율 상승, 호남 구애 등 긍정적 평가
유력 대권주자가 없는 '인물난' 해결 과제

미래통합당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이 9월3일로 취임 100일을 맞는 가운데 지금까지 중간 성적표만 놓고 보면 합격점이라는 평가가 우세하다.

4·15 총선 참패 후 난파선에 비유될 만큼 수렁에 빠진 제1야당에서 김 위원장은 장외 투쟁 대신 정책과 원내 투쟁에 방점을 두는 동시에 과감한 당 쇄신을 별다른 잡음 없이 추진해오고 있다. 한때 여당을 추월하며 창당 후 최고치를 기록할 만큼 단기간 안에 지지율을 끌어올린 점도 좋은 점수를 받는 요인이다.

차기 서울시장 선거와 대통령선거에서 낙승을 안겨줄 ‘선수’가 선뜻 떠오르지 않을 만큼 고질적인 인물난은 김 위원장이 풀어야할 과제다. 보수 색채를 뺀 당 개혁과 인적 쇄신이 내부 반발 없이 순조롭게 이뤄질지도 장담할 순 없다.

김 위원장은 공식적으로 당무를 시작한 6월1일 국립서울현충원 방명록에 “진취적으로 국가를 위하여 최선을 다하겠습니다”라고 쓴 데 이어 비대위 첫 회의에선 “통합당이 진취적인 정당이 되도록 할 것”이라고 언급해 ‘진취’를 강조했다. 정치권에서는 ‘진취’라는 용어를 둘러싼 해석이 분분했지만 진보 정당을 앞선 과감한 변화를 시도할 것으로 받아들였고, 곧바로 보수 정당의 변화가 시작됐다.

김 위원장은 비대위 출범 초반 더 이상 ‘보수’ 이념에 얽매이지 말 것을 주문하면서 보수 성향 당원의 비중이 큰 통합당에 ‘탈(脫)보수’를 선언해 큰 파장을 일으켰다. 또 약자와의 동행을 기치로 내건 그는 기본소득제, 전일보육제, 궁핍으로부터의 자유 등 진보 진영에서 주로 다뤄왔던 의제를 선점하며 정치권에 ‘이슈 메이커’로 급부상했다.

‘김종인표 쇄신’은 당명, 당색, 정강정책 개정 등 통합당의 체질 개선으로 본격화됐다. 대표적으로 정강정책에는 역대 보수 정당으로는 처음으로 4·19 혁명, 5·18 민주화 운동, 6·10 항쟁 등 ‘민주화 정신’을 명기했고 경제 민주화, 기본소득, 양성평등사회 구현, 노동시장 양극화 해소 등 진보 어젠다를 넣어 이념과 진영논리를 탈피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당의 외연 확장을 위해 취임 직후부터 청년, 여성, 호남 민심을 강조해온 김 위원장은 최근 호남 민심을 끌어안는 본격적인 친(親)호남 행보도 펼치기 시작했다.

국립 5·18 민주묘역에선 역대 보수 정당 대표로는 처음으로 과거 5·18 민주화 운동 왜곡에 대해 무릎 꿇고 사죄했다. 홍수 피해가 극심한 호남 지역을 민주당보다 먼저 찾은 것도, 5·18 유공자에 대한 예우 강화 법안에 찬성하고 호남 출신 비례대표 할당제를 검토하는 것도 김 위원장의 호남 구애 전략의 일환이다. 이 덕분에 통합당은 불모지인 호남에서 한때 지지율이 20% 선에 근접할 만큼 상승세를 타고 있다.

대여(對與) 투쟁에서도 원외 인사인 김 위원장이 당 내에서 중심을 잡아주는 측면이 적지 않다. 더불어민주당의 단독 원 구성 강행, 부동산 입법 처리 등에 속수무책으로 당하자 통합당 내부에선 한때 장외투쟁론이 다시 고개를 들었지만 김 위원장이 제지하고 나섰다. 전통 지지층을 의식해 대안 없이 반대 목소리만 내고 막말을 일삼거나 강공 일변도로 장외집회를 반복했던 과거 지도부와 다른 투쟁 방식을 보이자 지지율도 서서히 오름세를 보였다.

김 위원장의 대여(對與) ‘메시지 전쟁’ 또한 긍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급속히 확산되자 4차 추경과 2차 재난지원금 지급 등을 선제적으로 요구하는가 하면 여권에서 수도를 세종시로 이전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자 내년 서울시장 선거에서 서울 시민들을 상대로 수도 이전을 공약으로 내놓으라고 역공했다.

김종인 비대위 체제는 취임 당시 20% 안팎에 불과했던 당 지지율이 연말까지 35%를 달성할 수 있을지가 관전 포인트였지만 일단 지지율에 대한 큰 부담은 덜게 됐다.

리얼미터가 실시한 8월2주차 여론조사에서 통합당은 36.3%를 기록하며 탄핵 정국 이후 3년10개월 만에 민주당(34.8%)을 추월했다. 이후 전광훈 목사의 광복절 집회와 연계한 여권 공세 등으로 지지율이 하락세로 돌아섰지만 김 위원장이 개혁에 박차를 가하며 지지율 상승 동력 요인을 당 내부에서 만들어낼 경우 다시 반등할 공산이 크다.

일각에선 윤미향 의원과 이상직 의원, 오거돈 전 부산시장, 고(故) 박원순 시장 등 여권 인사들의 잇단 비위와 부동산 정책 실패 논란, 법무부와 검찰 갈등, 민주당의 독주에 따른 반발 등으로 인한 반사이익이 통합당 지지율로 이어진 것이라는 야박한 평가도 있지만, 막말 근절과 장외투쟁 지양 등 통합당 내부 요인 역시 지지율 반등에 영향을 준 측면이 있다.

무엇보다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 구속에 대한 대국민 사과 검토나 ‘박근혜 유산’ 청산 작업과 맞물려 ‘태극기부대’로 불리는 극우 세력 ‘손절’ 시도는 통합당의 주목할 만한 변화의 한 단면이다. 김 위원장이 좌클릭 행보 속에서도 안보는 보수적인 관점을 유지하고 있는 것도 전통 지지층의 이탈을 막고 있다는 평이 나온다.

김종인 비대위가 지금처럼 순항하는 배경에는 역대 비대위마다 골칫거리였던 당내 계파 갈등이 잠잠하다는 점도 무시할 수 없다. 20대 국회를 장악했던 친박계가 대거 ‘퇴장’하고 비대위 체제에 우호적인 초선 의원들이 통합당 의석수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며 비중이 큰 점도 김 위원장에게는 이득이다.

김 위원장이 과거에 보여줬던 ‘여의도 차르’식 카리스마 대신 중진들과 정례 모임을 갖는 등 소통에 방점을 찍고 있는 점도 비대위 안착을 위해 잡음을 최소화하려는 노력으로 볼 수 있다. 김 위원장이 고강도 쇄신을 추구하고 있지만 지금까지 큰 충돌이 없었던 것도 상대적으로 김 위원장의 강한 리더십과 당내 장악력을 방증한다.

문제는 보수 정당의 뿌리를 들어내는 파격적 쇄신에 대한 반발지수다. 강성 보수로 분류되는 민경욱 전 의원과 김진태 전 의원 등은 최근 공개적으로 김 위원장을 비판하고 나섰고, 당내 다선 의원들 역시 언제든지 반기를 들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당 안팎에서 거부감이 만만치 않은 국회의원 4선 연임 제한이나 5·18민주화 정신 계승 등 고강도 정강정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당내 갈등이 가시화되면 지지율 하락으로 이어질 수 있다. 지지율이 비대위 체제 이후 상승한 것은 분명하지만 여전히 민주당과 비교하면 중도층에서 낮은 지지도를 보이고 비호감도가 더 높다는 점도 통합당의 리스크다.

김 위원장이 비대위에 취임하면서 공언한 대로 통합당이 차기 대선을 차질 없이 치를 수 있게끔 안정적인 환경을 만들어주고 임기 내에 ‘구인난’을 해결할 수 있을지도 관건이다. 당무 감사를 통해 자연스런 인적청산이 점쳐지는 가운데 외부 인재 수혈 등을 통한 인적 혁신이 김 위원장을 시험대에 올려 놓고 있다.

[서울=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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