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 75주년, 한일 정체성의 정치[우아한 전문가 발언대]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8월 18일 14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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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8월 15일, 한국에서는 광복(光復), 일본에서는 종전(終戰) 75주년을 기리는 날이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개인의 존엄’을, 즉 ‘한 사람 한 사람에게도 광복이 이뤄졌는지 되돌아보며, 개인이 나라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개인의 인간다운 삶을 보장하기 위해 존재하는 나라’를 강조하였고, 일본의 아베 신조 총리는 지난 75년 동안 일본은 일관되게 ‘평화’를 중시해 왔다는 것을 상기시키면서 ‘적극적 평화주의’의 기치 아래 국제사회와 공조하며 세계가 직면한 여러 문제를 해결하고자 ‘지금까지 이상의 역할’을 해 나갈 결의를 다진다고 역설하였습니다.

한편 광복절을 전후로 국내 여론은 과거 어느 때 보다도 양극화된 모습입니다. 코로나의 여파 때문이기도 하지만 ‘위안부 피해자 기림의 날’은 올 해 들어 본격적으로 불거진 정의기억연대 전 이사장이었던 더불어민주당 윤미향 의원 관련 논란 등으로 인해 예전에 비해 훨씬 위축된 모습이었습니다. 심지어 광복절 행사 당일에 있었던 김원웅 광복회장의 기념사는 정치권과 언론을 다시금 양분하는 것을 넘어서서 국민들 사이에도 혼란과 갈등을 낳았습니다. 광복 이후 무려 75년이 지났지만, 우리 사회의 내홍이 아직 치유되지 않은 것처럼 보여 안타까움을 금할 길이 없습니다.

●한국인과 일본인의 정체성
필자는 대략 9년 정도의 시간을 일본에서 학생으로서, 또 대학의 교원으로서 보냈습니다만, 그 시간 동안 일관되게 느낀 것은 우리가 신경 쓰는 만큼 일본인들은 우리에 대해 관심이 크지 않다는 것이었습니다. 한류 드라마나, BTS, 트와이스 같은 아이돌들이 엄청난 인기를 구가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한일관계에 대해서는 우리 국민들에 비해 그다지 분명한 시각을 갖고 있지 않거나 또 딱히 알려고 하지도 않는 일본인들이 더욱 많다고 느낄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에 비해 우리 사회에서는 ‘일본’과 관련된 것은 언제든지 정치적으로나 사회적으로 휘발성이 큰 사안으로 다뤄지곤 합니다. 그것은 바로 우리의 정체성과 역사의식 속에 ‘항일(抗日)’이라는 부분이 녹아들어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비록 우리는 나라를 잃었지만, 우리 선조들은 끊임없이 일본제국주의에 맞서 투쟁했고, 비록 연합국의 일원으로 승전국 취급을 받지는 못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의 자유와 번영을 스스로 쟁취한 것이라는 자부심의 근간에는 ‘항일’의 정신이 자리 잡고 있는 것입니다. 물론 친일파 청산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한 부분이 있기 때문에 아직까지도 우리 사회 내에 갈등과 반목이 계속되고 있지만,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이러한 자부심을 어느 정도는 갖고 계실 것입니다. 이는 마치 프랑스인들이 파시즘에 맞서 투쟁한 레지스탕스 정신에 대해 가지는 자부심과 비견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을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대조적으로 일본국민들에겐 ‘한국’ 혹은 보다 넓은 차원에서 ‘한반도’와의 관계가 정체성 형성에 그다지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지 않습니다. 우리 입장에서는 그들이 역사를 왜곡하고 교육을 제대로 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비판할 수 있겠지만, ‘일본’이라는 국가의 근대적인 정체성을 논하고자 할 때, 그들은 미국의 페리 제독이 몰고 온 흑선(黑船) 때문에 느낀 심리적인 충격이나, 그 충격으로 인해 단행된 메이지유신(明治惟新), 혹은 러일전쟁을 꼽곤 합니다. 그들 역시 근대적 정체성의 근간에 두는 것이 외부와의 갈등과 투쟁이긴 하지만, 그것이 당시 조선은 아니었기에 일본의 우리에 대한 감정이 우리의 일본에 대한 감정과 같을 수는 없는 것입니다. 미국인들이 독립전쟁을 이야기하지 않고는 본인들의 국가 정체성을 논할 수 없듯이, 대부분의 근대적 국가들은 이러한 투쟁의 역사를 내제화합니다. 이는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현실일 뿐,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르다는 가치판단을 쉽사리 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닌 것입니다.

●두 리더의 ‘정체성의 정치’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해 15일 충남 천안시 독립기념관에서 열린 제74회 광복절 경축식에서 경축사를 하고 있다. (청와대 페이스북) /뉴스1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해 15일 충남 천안시 독립기념관에서 열린 제74회 광복절 경축식에서 경축사를 하고 있다. (청와대 페이스북) /뉴스1
우리의 광복절, 그들의 종전기념일에 있었던 문재인 대통령과 아베 총리의 연설을 들으며 필자는 두 리더의 정체성도 다시금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문 대통령은 인권변호사 출신다운, 개인의 인권을 강조하는 현 정부의 국정철학을 피력하고 이를 한일관계에 대한 시각에도 담아냈습니다. 한편 아베 총리는 국제사회에서 일본의 역할을 재차 강조하였는데, 이는 지난 수십 년간 국제사회에서 점차 쇠퇴하고 있던 일본의 역할을 부활시키고자 하는 그의 의지를 담고 있는 수사라고 생각합니다. 그럼 이 두 리더의 정체성은 한국과 일본 사회와는 별도로 만들어진 것일까요?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럴 수 없다는 것입니다. 두 리더가 선출된 대표인 이상, 두 리더의 정치적인 행보에는 민의가 반영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역사의 종언》으로 잘 알려진 프랜시스 후쿠야마 교수는 2018년 출간한 《아이덴티티(Identity) - 존엄의 욕구와 분노의 정치》에서 20세기의 정치가 경제적인 문제들에 의해 좌우되었다면 오늘날의 정치에서는 ‘정체성의 정치’가 핵심이 되었다고 지적하였습니다. 그에 따르면 인간은 누구나 인정받기를(recognition) 원하므로 그러한 ‘자존감에 대한 열망(the carving for dignity)’이 두드러지는 부분, 바꿔 말하자면 인정받고 있지 못하다고 느끼는 특정 그룹의 분노와 증오가 ‘정체성의 정치’에 원동력이 된다는 것입니다.

일본은 지난 수십 년간 계속 자존감에 상처를 입어 왔습니다. 소위 ‘잃어버린 20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장기 경기침체와 함께 내적으로는 고령사회와 빈번한 재해로 인해 재정적 부담이 쌓여만 갔습니다. 더군다나 미일관계에 있어서도 ‘피 흘리지 않는 동맹’이라는 비난과 조롱을 받아 왔습니다. 일본의 자존심이 바닥으로 떨어지는 동안 중국은 범접할 수 없이 강성해 졌고, 한국은 국제사회에서 반짝반짝 빛나는 새벽별 같은 존재가 되었습니다. 상대적인 상실감은 ‘이제껏 우리가 너무 바보같이 굴었어’라는 한탄으로 이어지고, 그 한탄은 분노가 되곤 합니다. 그리고 그 분노는 종종 자신들에게 너무 야박하다고 느껴졌던 한국을 향합니다. 우리가 그들의 분노를 굳이 왜 이해해야 하느냐고 되물으시는 분들도 있으시겠지만, 우리의 국익을 위한 전략적인 판단을 내리기 위해서는 상대가 가진 감정조차도 그대로 인지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정체성의 정치’만으로는 한일관계 해결 못해
한국과 일본의 정체성이 이토록 다르다는 것을 알았으니 어떻게 해야겠습니까? 정체성이라는 것은 어차피 상호 양보할 수 있는 부분에 한계가 있으므로, 이를 전면에 내세우게 되면 문제의 해결은 기대하기 힘들어집니다. 그러나 한일 간의 협력과 공조는 우리 국민의 일상을 위해 필요한 부분입니다. 복잡하게 얽힌 상호의존적인 무역 구조나, 양국에 있는 유학생, 기업체, 주재원들에게 한일 간의 정치적인 갈등은 그야말로 일상에 대한 위협이 될 수 있습니다. 우리가 닥친 현실을 담담하게 바라보면서, 건설적인 대안을 내놓을 수 있어야 하는 것이 우리 사회와 정치인들에게 요구되는 시기라고 하겠습니다.



임은정 국립공주대 국제학부 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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