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사협력 130위, 정리해고 비용 112위… 금융시장의 산업 육성 기능도 낙제점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9월 2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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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F 국가경쟁력 보고서’ 137개국 중 한국의 현주소는

“자신들의 문제가 무엇인지 정확히 파악하고 있지만 정작 해결을 위한 실천은 거의 없다.”

세계적 컨설팅사 ‘부즈 앨런 해밀턴’은 한국에 외환위기가 닥친 1997년에 펴낸 한국 보고서에서 한국을 이렇게 평가했다. 말만 많고 행동하지 않는다고 해서 한국을 NATO(No Action, Talk Only) 국가라고 비판했다.

27일 세계경제포럼(WEF)이 내놓은 국가경쟁력 평가 보고서를 보면 20년 전에 지적됐던 한국의 문제점이 여전히 반복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국가경쟁력 평가를 하는 해외 기구들이 수년째 한국의 약점으로 반복해 지적한 노동시장 경직성과 금융시장 후진성 문제가 이번에도 거론됐다.

그런데도 상황은 달라지지 않고 있다. 정규직의 과도한 보호가 계속되는 가운데 정부는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에 속도를 내고 있다. 금융시장에 대한 당국의 지나친 간섭도 그대로다. 집값을 잡기 위해 시중은행의 대출 한도를 정부가 일률적으로 통제하는 식의 관치금융이 새 정부 들어서 오히려 강화되고 있다.

가뜩이나 낮은 한국의 노동시장 효율성(73위)에서 큰 문제로 지적되는 부분은 △노사 간 협력(130위) △정리해고 비용(112위) △고용 및 해고 관행(88위) 등이다. 민주노총과 한국노총 등 양대 노총이 노사정위원회에서 빠져 있는 상태에서 사회적 대화는커녕 주요 대기업에서 파업이 계속되며 협력적 노사 관계 구축이 제대로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 해고의 경우 정부가 최근 해고 요건을 까다롭게 하는 방향으로 양대 노동지침을 폐기하면서 기업 경영에 부담을 늘렸다는 평가마저 나온다.

문제는 새 정부 들어 노동시장의 경직성이 더욱 강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이 대표적이다. 노동계에서는 ‘쉬운 해고는 안 된다’며 정규직 전환을 강하게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재계는 “정규직의 신분은 과도하게 보장하면서 일방적으로 비정규직을 줄이면 결국 일자리 감소로 이어질 것”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최영기 한림대 객원교수(전 노동연구원장)는 “임금과 근로시간의 유연성을 확보해야 한다. 양극화 해소를 위해서는 고임금 노동자들의 자제와 양보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금융시장 성숙도 측면에서는 △벤처자본의 이용 가능성(76→64위) △국내 주식시장을 통한 자본 조달(42→47위) 등에서 낙제점을 받았다.

주식, 채권 등 금융투자 시장이 ‘자본을 조달하는 창구’가 아닌 ‘투기판’으로 인식되면서 정부가 이 분야 산업에 대한 육성 대신 규제와 감독을 강화한 게 주원인이다. 오정근 건국대 금융IT학과 교수는 “시중은행에 대한 관치금융 관행과 금융 규제가 개선되지 않으면 경쟁력이 높아지기 어렵다”고 말했다.

한국이 그동안 우위에 있었던 혁신 역량은 점차 약화되고 있다는 평가를 받았다. 기업 혁신 분야에서 한국이 18위로 2계단 상승한 데 그친 반면 중국은 33위에서 28위로, 인도는 41위에서 29위로 치고 올라온 게 대표적이다.

일각에서는 주관적 설문조사가 반영되는 국가경쟁력 평가의 특성을 감안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노동 및 금융시장 분야에 대한 평가는 기업 최고경영자(CEO) 등에 대한 설문조사를 토대로 이뤄지는 만큼 다른 나라와 절대적 비교를 하는 건 무리가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외국 자본의 대(對)한국 투자 등은 통계 숫자보다는 해당국에 대한 인상과 주관적 평가가 더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이를 간과해서는 안 된다는 게 전문가들의 일치된 견해다.

세종=최혜령 herstory@donga.com·김준일 기자
#wef 국가경쟁력 보고서#금융#노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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