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노 끓는 미국 “멀쩡하던 청년을… 잔혹한 北정권 용서못해”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6월 1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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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 억류 美대학생 혼수상태 석방… 조지프 윤 美6자대표 방북, 함께 귀환


13일 오후 10시 20분경(현지 시간) 미국 오하이오주 신시내티의 렁큰 공항. 북한에 17개월째 억류됐다가 12일 석방된 미 대학생 오토 웜비어(22)가 혼수상태로 고향에 돌아오자 미국인들은 그야말로 충격에 휩싸였다. 억류되지 않았다면 올해 미 버지니아대를 졸업했을 웜비어는 이날 전혀 의식이 없어 보였다. 머리는 삭발을 하고 코에 튜브를 꽂은 채 사람들에게 들려 평양에서 타고 온 걸프스트림 전용기에서 내렸다. 부모인 프레드와 신디 웜비어는 성명을 내고 “버림받은 잔혹한 정권에 의해 우리와 아들이 얼마나 괴롭고 공포에 떨었는지 온 세상이 알기를 바란다”며 울부짖었다. 워싱턴포스트(WP)는 사설에서 “한 미국인 대학생을 이처럼 만든 북한 측 처사는 세계에서 가장 사악하고 고립된 체제 가운데 하나임을 고려하더라도 절대 그냥 지나쳐서는 안 될 것”이라고 비난했다.


이에 따라 조지프 윤 국무부 대북정책 특별대표의 방북까지 이어진 웜비어의 석방이 북-미 관계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일단 웜비어의 상태를 감안했을 때 이번 윤 대표의 방북은 순수 인도주의적 목적에 방점이 찍혔을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 실제로 윤 대표의 12일 방북은 전격적으로 이뤄졌다. 당초 윤 대표는 방한 중인 토머스 섀넌 국무부 정무차관을 수행할 예정이었는데 방한 직전 명단에서 빠졌다. 윤 대표가 이달 6일 북한의 요청으로 뉴욕에서 자성남 주유엔 북한대사를 만난 자리에서 미 대학생 웜비어가 지난해 3월부터 식중독의 일종인 보툴리누스균 감염으로 혼수상태에 빠졌다는 사실을 통보받은 뒤 급히 방북 일정을 잡았기 때문이다.

웜비어의 상태를 렉스 틸러슨 국무장관에게서 보고받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웜비어를 잘 챙기라”며 방북을 지시했고, 윤 대표는 두 명의 의료진과 함께 민간항공기인 걸프스트림을 타고 일본을 경유해 이날 오전 평양에 도착했다. 앞서 윤 대표는 지난달 노르웨이 오슬로에서 열린 북-미 간 ‘트랙 1.5 회담’(민관 대화)에 참석해 억류 미국인 4명의 석방을 위한 협상의 물꼬를 튼 것으로 드러났다.

우리 정부는 이 과정에서 자연스레 윤 대표의 방북 추진 가능성에 대한 정보를 파악한 것으로 알려졌다. 외교 당국자는 “미 정부가 한국 정부와 직접 관련이 없는 웜비어 석방 건을 자세히 알려준 것은 아니지만 동맹 간 정보 공유 차원에서 필요한 사실을 통보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물론 이 과정에서 윤 대표가 1박 2일 동안 평양에 머물며 다양한 북측 인사를 접촉했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직전까지 북한 6자회담 수석대표를 맡았던 리용호 외무성 부상을 만났을 가능성이 크다. 리수용 노동당 국제담당 부위원장이나 김계관 외무성 제1부상, 한성열 등을 만났다면 더 깊은 대화가 오갔을 수도 있다.

워싱턴 외교가에선 웜비어 석방을 계기로 윤 대표의 방북 못지않게 지난해 7월 북한이 일방적으로 폐쇄를 선언했던 ‘뉴욕채널’이 트럼프 행정부 들어 부활한 것에도 주목하고 있다. 국무부와 유엔 주재 북한대표부 간 채널을 뜻하는 뉴욕채널은 북한의 핵실험 후에도 가동될 정도로 북-미 간에 가장 빈번하게 이용하던 소통 창구였다. 이것이 웜비어 석방 건으로 재가동되면서 어떤 식으로든 북-미 간 소통의 계기가 지금보다는 자주 마련될 수 있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하지만 북한이 대화 재개 조건으로 미국이 내건 비핵화를 거부하고 있고, 최근까지도 탄도미사일 발사 도발을 이어온 만큼 이번 방북으로 북-미 간 대화가 당장 급물살을 타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신중론도 많다. 뉴욕타임스 등 일부 언론은 웜비어가 북한에서 구타당했다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버락 오바마 행정부 당시에도 북한이 억류 미국인을 유사한 방식으로 석방할 때마다 북-미 대화론이 나왔지만 실제론 진전이 없었다.

그래서 일각에선 북한은 미국과의 대화보다는 웜비어의 상태가 더 나빠져 북한에서 사망이라도 하기 전에 석방할 필요성을 느껴 미국과의 대화를 요청했고, 미국도 웜비어를 빼내기 위해 윤 대표를 평양에 보냈다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 한 정부 관계자는 “억류자가 혼수상태라는 긴박한 상황에서 이뤄진 방북이고 추가적인 억류자 석방이 없다는 점에서 북-미 대화 재개 신호로 해석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때마침 방북한 전 미국프로농구(NBA) 선수이자 김정은 위원장의 ‘절친’으로 알려진 데니스 로드먼은 웜비어의 석방과는 무관한 것으로 전해졌다. 헤더 나워트 국무부 대변인은 13일 정례 브리핑에서 “로드먼의 방북은 개인적인 일정이고 트럼프 대통령의 메시지를 가져가지도 않았다”고 말했다.

워싱턴=이승헌 특파원 ddr@donga.com / 우경임 기자
#북한#웜비어#억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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