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폭배달” vs “콜 안받는다” 충돌에… 배달주소 감추기까지

  • 동아일보
  • 입력 2024년 4월 2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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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측 “오토바이 출입금지”
배달기사 “헬멧 벗어라 요구까지”
극단적 소수 사례 탓 모두가 불편
전문가 “조금씩 양보, 신뢰 지켜야”

“자전거는 두고 걸어 올라가 주세요.”

27일 오후 2시 서울 강남구의 한 아파트 단지 입구. 경비원이 음식 배달 가방을 자전거에 실은 채로 단지로 들어가려던 기자를 제지하면서 말했다. 단지 내 보행자의 안전을 위해 지하 주차장을 포함한 내부에 외부 자전거나 오토바이의 출입을 막고 있다는 설명이었다. 기자는 단지 밖에 자전거를 세워둔 채 음식 가방을 들고 목적지까지 약 600m를 달리기 시작했다. 낮 최고기온 26도로 무더웠던 이날 배달 기사 체험에 나선 기자의 상의가 땀으로 흠뻑 젖었다.

● 배민 ‘주소 비공개’ 이후 “골라 배달 어려워져”

이 아파트는 단지 내 인도뿐 아니라 지하 주차장에도 이륜차 진입을 금지하고 있어 배달 기사 사이에서 ‘까다로운 아파트’로 이름나 있다. 일부 배달 기사들은 이런 아파트의 목록을 ‘블랙리스트’처럼 만들어 공유하기도 한다. 강남구 인근에서 일하는 배달 기사 유모 씨(32)는 “단지 입구부터 아파트 건물까지 1km 넘게 걸어야 하거나 경비실에 신분증을 맡겨야 하는 몇몇 아파트는 배달에 너무 오랜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될 수 있는 대로 피하려 한다”고 말했다.

그런데 두 달 전 배달 플랫폼 배달의민족이 개인정보 보호를 위해 배달 기사에게 손님의 상세 주소를 공개하지 않기로 한 후로 상황이 달라졌다. 기사가 배달을 수락한 후에야 아파트 이름 등을 볼 수 있게 된 것. 실제로 27일 기자가 배달 기사용 애플리케이션(앱)의 주문 접수 메뉴를 열어 보니 배달할 아파트의 이름이 ‘****’ 등으로 가려져 있었다. 배달 플랫폼 2, 3위인 요기요와 쿠팡이츠에 이어 시장 점유율이 약 60%인 1위 배달의민족까지 이런 조치를 하면서 사실상 ‘골라 배달하기’는 거의 불가능해졌다.

배달 기사 측에선 ‘일을 선택할 권리를 침해받았다’는 주장이 나온다. 일부 주상복합 아파트에선 배달 기사가 화물용 엘리베이터를 타도록 하거나 건물 내에서 헬멧, 우의를 벗도록 요구해 기사들이 ‘갑질’을 당했다고 느끼는데, 이런 곳까지 걸러내지 못하게 한 건 과도하다는 얘기다.

이에 따라 일부 배달 기사는 대단지 아파트가 밀집한 지역에서 일하길 거부하거나 아예 ‘요주의 아파트’ 인근에서 온 주문까지 피한다고 한다. 구교현 라이더유니온 위원장은 “배달에 제약이 많은 지역을 떠나 다른 곳에서 일하는 추세가 생기고 있다”고 말했다.

● “상호 불신이 사회 전체에 불편 초래”

반면 배달의민족 측은 개인정보 유출을 막기 위해 불가피한 조치라고 설명했다. 기존 시스템에선 불특정 다수의 배달 기사가 손님의 주소를 볼 수 있다는 지적이 있었고, 이에 따라 개인정보보호위원회와 자율규제 규약을 맺은 결과라는 것이다.

배달 기사의 오토바이 통행을 막는 아파트 측도 ‘안전을 위한 조치’라고 설명한다. 일부 배달 기사가 ‘지하 주차장으로만 다니겠다’고 경비원을 속이고 실제로는 단지 내 인도에서 오토바이를 몰거나, 놀이터 주변 등 어린이가 많이 다니는 곳에서도 속도를 줄이지 않은 탓에 단지 내 여론이 ‘일괄 제지’ 쪽으로 기울었다는 설명이다.

헬멧 착용을 자제해 달라는 요청에 대해선 강남구의 한 아파트 관리사무소 관계자는 “혹시 나중에 문제가 생겼을 때 폐쇄회로(CC)TV로도 얼굴을 확인하지 못할 외부인이 돌아다니면 혼잡하고 위험할 수 있다는 우려가 컸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지난해 5월 대구에서는 배달 기사로 위장한 20대 남성이 원룸 건물에 침입해 여성을 성폭행하려 한 사건이 일어났다.

전문가들은 소수의 사례가 초래한 불안이 ‘상호 불신’으로 이어지며 전체 사회에 불편을 초래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아파트 주민은 일부 배달 기사의 난폭운전 때문에, 배달 기사는 일부 아파트의 ‘갑질’ 때문에 서로 불편을 겪고 있다는 것이다. 구정우 성균관대 사회학과 교수는 “배달원과 아파트 주민 모두 사회를 구성하는 일부인 만큼, 서로 조금씩 양보하면서 사회적 신뢰를 지켜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황석진 동국대 국제정보보호대학원 교수는 “민감한 개인정보를 가리면서도 배달 기사가 온전한 정보를 토대로 (배달) 계약을 맺을 수 있게끔 플랫폼이 다양한 주체와 소통해 대안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임재혁 기자 heok@donga.com
주현우 기자 woojoo@donga.com
#배민#주소비공개#난폭배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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