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남, 5차례 암살 모면… 김정은에 “살려달라” 애원편지도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2월 1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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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남 피살] 비운의 삶


김정남은 자신을 제거하려는 이복동생의 칼날을 피하기 위해 과거 김정은에게 충성맹세 편지까지 보냈지만 끝내 이국땅에서 객사하는 쓸쓸한 운명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국가정보원은 15일 국회 정보위원회 간담회에서 “2012년 4월 김정남은 김정은에게 ‘저와 제 가족을 살려달라’는 서신을 발송한 바 있다”고 보고했다. 이 서신에서 김정남은 “저와 가족에 대한 응징 명령을 취소해 주길 바란다”며 “갈 곳도 없고 피할 곳도 없으며 (이 삶에서) 벗어나는 길은 자살밖에 없다는 점을 잘 알고 있다”고 하소연했다고 한다.

이는 본보가 2013년 보도한 김정남이 김정은에게 보낸 편지와 같은 내용으로 보인다(본보 2013년 1월 19일자 A1면 참조). ‘존경하는 세자 저하 전상서’로 시작되는 편지에서 김정남은 “우리 가족은 건강을 특히 주의해야 한다”며 김정은의 안부를 걱정하기도 했다.


하지만 김정남의 애원은 김정은에겐 통하지 않았다. 김정남은 해외를 떠돌면서 끊임없이 암살 위협에 노출됐고, 알려진 암살 시도설만 5건이다.

최초의 암살 시도설은 2004년에 보도됐다. 그해 11월 김정남은 이종사촌 누이를 만나기 위해 오스트리아를 방문했다 암살 위협에 처했지만 정보를 입수한 오스트리아 정보기관이 북한에 항의하고 밀착 경호를 해 위기를 넘겼다는 것이다.

2009년 4월에는 평양에서 이른바 ‘우암각 사건’이 벌어져 김정남 측근들이 모두 숙청됐다는 보도가 나왔다. 김정은이 김정일에게서 국가안전보위부(현 국가보위성) 지휘권을 넘겨받은 지 2개월 만에 이복형 세력 제거부터 나선 것이다. 2010년 9월에도 중국 베이징(北京)에서 김정남 살해 시도가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2011년에는 국가안전보위부가 마카오를 찾아가 김정남을 살해하려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 관영 관차저왕(觀察者網) 등은 “당시 보위부 요원들과 김정남 보디가드들이 ‘피비린내 나는 총격전’을 벌였고, 김정남은 보디가드들의 보호로 간신히 살아남았다”고 전했다. 국가정보원은 2012년 초에도 김정은이 김정남을 제거하려 했다고 밝혔다.

이런 상황에서도 김정남은 한국 망명을 선택하지 않았다. 2013년 말까지는 평양에서 자신을 걱정해 주는 고모 김경희와 고모부 장성택이 있었다. 장성택 숙청 이후에도 망명하지 않은 것은 베이징과 마카오, 프랑스 등지에 흩어진 가족을 한꺼번에 몰래 빼내기가 어려웠기 때문인 것으로 추정된다. 1997년 이한영 암살 사건으로 ‘한국이 안전하지 않다’고 판단했을 가능성도 있다.

김정남은 어린 시절 김정일의 각별한 사랑을 받았다. 1996년 서방 국가로 망명한 김정남의 이모 성혜랑은 2000년에 펴낸 회고록 ‘등나무집’에서 이렇게 회상했다. “김정일은 아들을 위한 것이라면 그 무엇도 아끼지 않았다. 이 세상의 어느 아버지보다도 아들을 사랑하였다. 아버지가 아들을 저토록 사랑할 수 있을까 놀라웠다.”

김정일은 아들 전용 영화 촬영소를 꾸려주는가 하면 15호 관저에 990m²(약 300평)짜리 놀이방도 만들었다. 매년 생일에 맞춰 놀이방을 새로운 놀이기구로 완전히 바꿔줬는데 김정남이 새 장난감들을 잠깐씩 만져보는 데 하루 이상 걸렸다고 성 씨는 밝혔다. 한 탈북 간부는 “1980년 전국에서 청소년이 모여 벌이는 ‘배움의 천리길’ 행사가 진행됐을 때 아홉 살 김정남이 대열의 제일 앞에서 걸어갔는데 수천 명이 그 뒤로 아이 걸음에 맞춰 천천히 걸어갔다”고 회고했다.

하지만 김정남이 스위스 유학을 마치고 1989년 귀국하자 김정일은 장남을 점차 멀리하기 시작했다. 고용희와의 관계를 장남에게 들키는 것이 두려웠고 이미 어린 김정은 형제들에게 마음을 뺏겼기 때문이다. 김정남이 외국에서 자유분방하게 자란 것도 김정일에겐 짐이었다.

김정남은 생전에 이복형제인 김정은을 직접 만난 일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김정남이 후계자로 살았을 때는 김정은이 ‘곁가지’였지만 2000년대 들어 김정은이 후계자로 등장한 뒤에는 처지가 뒤바뀌었다. 그리고 끝내 고향땅을 다시 밟지 못하고 불귀의 객이 됐다.

주성하 zsh75@donga.com·강경석 기자
#김정남#김정은#피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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