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최진석]박근혜 국정농단… 반성 없이 변화 없다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12월 2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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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물학적-정치적 진화는 모두 미래를 향한 치열한 변화… 그 변화는 반성에서 나와
진실하게 자기반성 하면 전쟁의 패배도 뒤집을 수 있어
국정 농단보다 더 창피한 건 반성 하나 없는 당사자들… 창피함 넘어 두려움과 절망까지

최진석 서강대 철학과 교수 건명원 원장
최진석 서강대 철학과 교수 건명원 원장
 인간이 멸종되지 않고 지금까지 이어져온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환경의 변화에 적응하며 스스로 변화했기 때문이다. 인간을 포함하여 어떤 종도 변화에 실패한 것들은 지금 남아 있지 않다. 인간뿐만 아니라 다른 종도 남아 있는 것은 죄다 변화의 명수들이다. 변화가 핵심이다.

 그런데 왜 어떤 것은 변화를 감행하여 살아남고, 어떤 것은 변화에 실패하여 사라지는가. 그 자세한 작동 원리야 밝힐 수 없지만, 익숙한 상태를 고집하느라 정해진 틀을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설명은 할 수 있다. 변화하여 진보하는 일을 우리는 진화라고 한다. 결국 진화의 실패는 변화의 실패다.

 진화는 미래를 향해 변화하는 일이다. 그러려면 반드시 지금 현재의 실존적 상황을 자극제로 삼아 과거와의 투쟁을 감행하여 과격한 각성을 도출해내야 한다. 이것이 소위 반성이라는 것이다. 변화를 통과하여 미래를 향해 탄력을 받아 튀어나가려면 반드시 반성이 있어야 한다. 반성은 과거와 벌이는 전면적인 투쟁이다. 반성이라는 점화 장치를 통해 생물학적인 진화뿐 아니라 정치적 진화도 실현된다. 인격적인 성숙도 결국은 반성의 축적일 뿐이다. 이렇게 되면 ‘논어’에서 인격적인 성숙을 위해 증자가 매일 세 가지 질문으로 스스로 반성하는 삶을 살았던 것(吾日三省吾身)을 강조하는 이유를 짐작할 수 있다. 반성으로만 발전이 약속되기 때문이다.

 중국에는 이런 이야기가 전해온다. 아주 고대의 하나라 때, 제후인 유호씨가 반란을 일으켜 쳐들어왔다. 하나라의 우임금은 그의 아들 백계를 파견하였는데, 백계는 전투에서 패하고 말았다. 부하들은 분을 참지 못하고 반격하여 물리쳐 버리자고 주장하는데, 백계가 진정시키며 다음과 같이 말한다.

 “그럴 필요 없다! 우리 군사가 그들보다 많고, 진지도 더 큰데, 우리가 졌다. 이것은 분명히 내 덕이 그만 못하고, 군사를 움직이는 기술이 그만 못했기 때문이다. 오늘부터 내 잘못을 고쳐 나가겠다.”

 이때부터 백계는 매일 일찍 일어나 근무하고, 차와 음식마저도 거칠고 간단하게 섭취했으며, 능력 위주로 사람을 쓰고, 덕이 높은 사람을 받들었다. 이렇게 하며 1년을 보내자 유호씨가 스스로 와서 투항하였다.

 아무리 불행한 일도 그것이 이미 펼쳐져버린 상태라면, 그것은 바로 중립적인 객관물로 바뀐다. 그것은 이제 다루어지기를 기다리는 맥없는 대상일 뿐이다. 그것을 잘 다루면 오히려 더 큰 행복으로 바뀔 수도 있고, 잘 다루지 못하면 가속도가 붙어 더 큰 불행으로 귀결될 뿐이다. 잘 다루면 전화위복의 계기가 되고, 잘못 다루면 늪이다. 대학입시 낙방도 그렇고, 국회의원 낙선도 그렇고, 회사의 부도도 그렇고, 이별도 그렇고, 질병도 그렇고, 바닥이 없는 가난도 그렇고, 심지어는 박근혜 국정 농단도 그렇다. 당연히 전투에서의 패배도 그렇다.

 백계는 불과 1년 만에 싸우지도 않고 유호씨의 항복을 받아냈다. 백계가 발전하여 더 강해졌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백계는 어떻게 강해질 수 있었는가. 패배의 원인을 자신에게서 찾는 진실한 반성을 하였기 때문이다. 반성은 삶을 전혀 다르게 만든다. 스스로 와신상담의 시간을 갖게 한다. 반성은 그동안의 익숙함에서 벗어나 새로운 시도를 하게 한다. 백계는 구체적인 행동으로 자신의 반성을 증명하며 스스로를 단련하였다.

 박근혜 국정 농단은 내용 자체의 수준이 너무 낮고 천박하여 다른 나라 사람들이 알까 두렵다. 참 창피한 일이다. 하지만 이런 일이 일어나서 창피한 것보다 더한 창피가 있다. 바로 당사자들의 반성이 없는 것이다. 어차피 대통령은 반성 능력 자체가 없어 보이지만 이화여대의 그 많은 교수들, 청와대의 그 많은 관료들, 새누리당의 그 많은 정치꾼들 가운데 어떻게 반성하는 사람 하나 없단 말인가. 어떻게 스스로 물러나는 사람 하나 없단 말인가. 이것이 우리의 민낯이다. 정말 큰 문제이고, 더 창피한 일이다. 개선의 빛을 차단해버리는 무반성의 태도들은 우리를 창피를 넘어 두려움과 절망에 빠지게 만든다. 그렇다고 하여 지식인으로서의 나에게도 어찌 책임이 없겠는가. 나부터 우선 반성의 결단이 필요하다.

최진석 서강대 철학과 교수 건명원 원장
#박근혜 국정농단#논어#백계#반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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