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임현석]“정부내 갈등으로 비치지 않게 하라”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6월 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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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답한 미세먼지 대책]

임현석·정책사회부
임현석·정책사회부
미세먼지만 답답한 게 아니었다. 이번 미세먼지 종합대책을 마련하는 과정에서 갈등을 조정하지 못한 정부의 무기력도 도마에 올랐다.

지난달 10일 미세먼지와 관련한 특단의 대책을 마련하라는 박근혜 대통령의 주문이 나온 지 약 3주 동안 경유값 인상을 둘러싼 관계 부처 간 견해차가 커졌다. 환경부는 경유 가격 정책에 주목했고 경제 부처는 ‘서민 부담’을 내세워 반대했다. 정점은 지난달 25일이었다. 이날 환경부와 기획재정부, 산업통상자원부 등이 참여하는 관계 부처 차관회의가 예정됐지만 당일 갑자기 취소됐다.

한 정부 관계자는 “차관회의가 무산된 이후 언론에서 ‘컨트롤타워’ 부재를 지적하자 국무조정실은 임기 말 권력 누수 현상으로 비치는 것을 우려했다”고 전했다. 이 때문에 회의가 무산된 이후 2차례에 걸쳐 차관급 회의가 다시 소집됐고 이 자리에서 국무조정실 측은 “관계 부처 간의 갈등으로 보이지 않도록 하라”고 관계 부처 고위 관계자와 실무진에게 요청했다.

이를 사실상 가이드라인으로 받아들인 정부 부처 실무진들의 태도도 바뀌었다. 가격 조정으로 경유 수요를 줄여야 한다던 환경부는 자신의 주장이 왜 중요하고, 반대 논리에 어떻게 맞설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미세먼지 대책을 마련하기 위해서 국민이 어느 정도 대가를 지불할 수 있을지, 수도권 미세먼지 발생의 주요인인 경유 수요는 어떻게 줄여 나갈지 공론화를 거쳐야 할 시점에 이러한 논의도 덩달아 사라졌다. 우리 사회에서 ‘미세먼지 대책은 공짜도 아니고, 종합적인 관점을 가져야 한다’라는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할 때쯤 정부는 되레 밀실로 돌아갔다.

갈등으로 비칠 언행은 바람직하지 않다. 부처 이기주의 때문에 설익거나 교묘하게 포장된 정책이 흘러나오는 것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전체 국민의 건강을 위협하는 존재가 경유라는 점을 인식하고도 이를 어떻게 다뤄야 할지 여론이 형성되는 시점에 ‘갈등 만들지 말라’는 말은 사실상 논의를 중단하란 것과 마찬가지다.

결국 경유값 인상은 미세먼지 대책의 핵심으로 꼽혔으면서도 ‘서민 부담’을 내세운 경제 부처의 입김이 반영돼 ‘장기 과제’로 밀려났다. 정부가 부처 간 이견을 넘어 국민을 설득하고 대책을 만들 능력이 없다는 사실을 국민 앞에 보여준 듯하다. 미세먼지보다 더 심각해 보이는 이 현상엔 어떤 ‘마스크’를 씌워야 할지 걱정이다.

임현석 정책사회부 lhs@donga.com
#미세먼지#정부#갈등#기자의 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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