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김재영]국회, 그래도… 일은 하자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4월 1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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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영 경제부 기자
김재영 경제부 기자
이런 직원들을 데리고 4년이나 회사를 운영했는데 진작 망하지 않은 것만도 용하다.

4년 전인 2012년 4월, 사장단은 직원 300명 가운데 절반을 물갈이하는 특단의 조치를 꺼냈다. 수출은 어렵고, 매출은 떨어지고 업계 순위도 뒤처지는 총체적 위기 상황이었다.

연봉 1억4000만 원의 4년 계약직 모집에 인재들이 앞다퉈 몰려들었다. 면접장에서 사장단은 흐뭇하게 지원자들을 쳐다봤다. 저마다 경력도 화려했고, 회사를 살릴 톡톡 튀는 아이디어도 많았다. 입사만 시켜주면 뭐든지 하겠다는 열정도 높이 살 만했다. 입사일은 2012년 5월 30일. 신변 정리를 마치고 7일째인 6월 5일부터 출근하라고 했다.

첫 출근 날 회사는 텅 비어 있었다. 사무실 내에서 누가 창가에 앉을지 책상 배치를 놓고 다투다 27일이 지난 7월 2일에야 겨우 출근했다. 출근한 뒤에도 직원들끼리 파벌로 갈려 사사건건 갈등이 끊이지 않았다.

2008∼2012년에 근무했던 직원들도 무시무시하게 싸우긴 했다. 사무실에서 전기톱, 해머를 꺼내고, 심지어 최루탄까지 쏴 대기에 그만 좀 싸우라고 ‘국회선진화법’이라는 사규를 만들었는데 이게 실수였다. 이제는 합의가 안 된다는 핑계로 아예 일손을 놔 버리는 게 아닌가.

2014년엔 5월부터 9월까지 151일, 지난해에도 9∼11월 72일 동안 결재서류를 단 한 건도 처리하지 않았다. 4년간 처리하겠다고 한 서류 1만7757건 가운데 56.7%인 1만74건은 아직도 책상 서랍 안에 잠들어 있다.

하도 일을 안 하기에 빽 소리를 질렀더니 집중 근무시간(정기국회) 막판에 마지못해 일을 하긴 했다. 서류 한 건 처리하는 데 채 1분도 걸리지 않더라. 읽어나 보고 사인을 하는지 걱정이 됐다. 한편으론 고작 몇 시간 만에 할 수 있는 일을 수십 일 동안 미적거렸다는 게 괘씸하기도 했다.

지금 회사 상황이 정말 안 좋다. 우리 회사 물건을 많이 사 주는 옆 동네 대기업 ‘차이나’도 사정이 좋지 않다. 석유화학 철강 조선 등 회사 주력 상품은 공급 과잉으로 구조조정이나 사업 재편이 불가피하다. 회사 근무체계도 효율적으로 바꿔야 하고, 서비스산업 등 미래 먹을거리를 위한 신산업도 발굴해야 한다.

할 일은 많은데 어영부영 계약기간이 다 끝났다. 13일에 새로 계약직을 뽑았다. 새 직원들은 제때 일을 시작할까. 직원들 바뀌면 그동안 진행하던 서류도 ‘자동 폐기’된다. 다시 서류를 만들고 처음부터 결재 라인을 밟으려면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 모른다. 아차, 내년 말엔 노조위원장 선거도 있다. 지금까지 관례로 보면 내년은 공식적으로 ‘일 안 하는 해’다.

이번에 다시 계약을 연장한 직원들, 그리고 다음 달 말로 퇴직하는 직원들에게 간곡히 부탁한다. 말년에 누가 일하고 싶겠냐마는 5월 29일 임기 종료까지 남은 한 달 반만이라도 마무리를 잘해 주시라. 정 안 되면 의견 다툼이 적고, 국민 삶에 시급한 법만이라도 처리해 주시라. 회사 좀 살려달라고 당신들에게 지급한 인건비만 4년간 무려 1680억 원이다.
 
김재영 경제부 기자 redfoot@donga.com
#직원#국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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