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정용관]안철수의 마이웨이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1월 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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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용관 정치부장
정용관 정치부장
김한길 의원의 탈당 회견을 생방송으로 듣다가 귀가 쫑긋했다. “어렵사리 모셔온 안철수 의원을…”이라는 대목에서였다. 김 의원은 “(2014년 3월 합당 당시) 국민을 믿고 공동대표로서 함께 노력하면 (친노 패권주의를) 극복할 수 있다고 약속드렸다. 하지만…”이라고도 했다.

정치인 이전에 글 쓰는 사람인 김 의원이 ‘모셔온’ ‘약속드렸다’ 등과 같은 높임말까지 써가며 한참 연배가 아래인 안 의원을 신경 쓴 이유가 궁금했다. 단지 안 의원을 모셔온 당사자로서의 미안함 때문만은 아닐 테니…. 한 사람은 ‘신당 디자이너’로서, 다른 한 사람은 차기 대권까지 노리는 ‘신당의 오너’로서 함께 손잡고 가기로 한 것 아니냐고 하면 쉽게 설명은 된다. 김 의원이 탈당 하루 전 안 의원을 만나 탈당 계획을 통보할 정도로 두 사람 사이엔 오래전부터 신당 플랜이 짜여 있었고, 그 밑그림대로 착착 진행되고 있는 것 아니겠느냐는 거다.

김 의원의 공개 예우를 접하며 필자는 오히려 ‘두 사람의 생각에 차이가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실제 안 의원과 김 의원의 탈당 회견문을 뜯어봤더니 닮은 듯 다른 결정적인 게 도드라져 보인다. 한쪽은 “정권교체를 이룰 수 있는 정치세력을 만들겠다”며 시종 정권교체를 강조했지만, 다른 쪽은 “총선 승리와 정권교체를 위해 새로운 정치질서 구축에 헌신하겠다”고 결론지었다. 안 의원 회견문엔 어디에도 ‘총선 승리’라는 네 글자가 보이지 않는다. 안 의원은 야권 분열에 대한 비판을 무릅쓰고라도 ‘문재인당’과의 정면승부를 거쳐 내년 대선으로 직행하겠다는 태세지만, 김 의원의 생각은 어떻게 하면 친노 배제를 전제로 호남의 ‘천정배 신당’까지 포괄하는 야권 통합을 이뤄 총선에서 최대한 살아남느냐에 꽂혀있는 셈이다. 김 의원으로선 문재인 대표의 ‘마이웨이’ 못지않게 안 의원의 ‘마이웨이’도 걱정이고, 그래서 안 의원에게 최대한 공손한 태도로 “정권교체를 위해선 총선 승리도 중요하다”고 호소한 건 아닐까.

그러나 야권 사정을 잘 아는 정치권 인사는 “안 의원은 이미 김 의원의 컨트롤 밖에 있는 것 같다”고 했다. 부산고 출신 K 교수 등 ‘6인방’의 조언을 받아 움직이고 있으며, 새누리당을 포함한 중도 보수 성향 인사들의 영입에 공을 들이고 있다는 전언도 있다. 안 의원이 탈당 후 ‘뉴DJ’를 표방한 천정배 의원과 따로 만났다는 소식은 어디에서도 들리지 않는다. 안철수 신당의 간판으로 물갈이 여론을 돌파해 보려는 몇몇 호남 의원들 사이에선 “안철수 신당의 그림을 잘 모르겠다. 호랑이굴 피하려다 사자굴 만나는 것 아니냐”는 자조 섞인 얘기도 나온다.

안철수 신당은 이름을 뭐라 붙이든 ‘안철수당’이다. 새해 초 안철수당의 기세는 일단 예사롭지 않다. 문재인당과 안철수당의 힘의 균형이 어디로 기울 것인지가 최대 관전 포인트가 됐다. 그 사이 ‘문-안-박’의 한 축이었던 박원순 서울시장은 대권 링에서 밀려난 형국이다.

지난 10여 년 동안 PK 비주류와 손을 잡았던 호남이 이번엔 PK 출신이긴 하지만 지역 색채가 덜하고 중도 가치를 지향하겠다고 밝히고 있는 안 의원을 등에 태울 것인가. 꼭 20년 전 총선에서 ‘DJ당’은 수도권에서 당시 여당이던 신한국당에 1당을 내주고 야권 분열 비판을 들었지만, DJ는 이듬해 대선에선 승리했고 진보정권 10년의 길을 텄다. 역사는 반복될 것인가.

무엇보다 안 의원이 2012년 정치 입문 전 ‘안철수 생각’에서 밝힌 대로 여전히 ‘선한 권력’을 꿈꾸고 있는지 궁금하다. 아직은 친노-친박 패권주의 틈새에서 어부지리를 얻고 있는 수준은 아닌가.

정용관 정치부장 yongari@donga.com
#안철수#김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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