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안 발의부터 상정까지… 美, 위헌 차단 ‘3중 필터’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3월 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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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헌소지 김영란법, 선진국 의회선 통과 가능할까

위헌 소지가 있는 것을 알면서도 법안을 통과시키는 일이 과연 선진국회에서는 가능한 일일까. 이른바 ‘김영란법’(부정 청탁 및 금품 등 수수 금지에 관한 법률)이 위헌 논란에도 국회를 통과하면서, 한국 국회가 모델로 삼는 미국 의회에선 입법 과정에서 위헌 조항을 어떻게 심의하고 최대한 걸러내는지에 대해 새삼 관심이 쏠리고 있다.

미 의회는 법안 발의부터 처리까지 크게 세 단계의 ‘위헌 조항 여과 장치’를 두고 있다는 게 의회 관계자들의 대체적인 설명이다. 미 헌법엔 입법권을 의원에게 한정하고 있기 때문에 한국처럼 정부가 법안을 내는 경우는 없다.

우선 의원들은 법안을 발의하기 전 의회 산하 법제실(Office of Legislative Counsel)에 1차 법률 자문을 한다. 상·하 양원에 각각 있는 법제실은 총 70여 명의 변호사로 구성된 법제관들이 법안의 각 조항과 조문을 심의하면서 위헌 소지가 있는지 파악하는 게 가장 중요한 기능이다. 하원 법제실 관계자는 3일 통화에서 “법안의 위헌 요소는 대부분 여기서 1차로 걸러진다”며 “변호사로서 객관적인 법률 검토를 하는 게 임무라서 법률 검토를 부탁한 의원을 (의원이 아니라) ‘의뢰인(client)’이라고 부른다”고 말했다.

1924년 설립된 의회 법제실은 정파나 여론에 휘둘리지 않기 위해 법률 검토 내용을 오로지 의원에게만 통보하는 기밀성(confidentiality)을 유지하는 게 특징이다. 한국 국회도 이를 본떠 2000년 국회 사무처에 법제실을 설치했으나 국회 사무처 인사들이 순환 보직으로 근무하고 있어 전문성 확보에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많다.

법제실의 1차 법률 검토를 마친 법안은 의원실 차원에서 2차 검토에 들어가 성안에 착수한다. 미 연방 의원들은 대부분 해당 상임위에서 잔뼈가 굵은 전문가인 ‘입법 담당 보좌관’을 두고 2차 법률 검토를 한다. 이들 중 일부는 이런 경험을 바탕으로 의회에 입성하기도 한다.

이런 과정을 거쳐 해당 상임위원장이 법안을 상정하기로 하면 각 상임위의 소위원회로 넘어가 본격적인 심의를 거친다. 이때 소위원회는 법안을 백악관 산하 예산관리처(OMB)로 보내 정부 정책이나 관련 법 체계와 상충되는 것이 있는지 여부 등을 검토한다. 미 정부의 예산 책정과 주요 정책 조율을 총괄하는 예산관리처는 해당 의원에게 검토보고서를 제출해 정부 의견을 밝힌다. 예산관리처는 ‘오바마케어’(건강보험 개혁 법안) 등 주요 이슈에서 의원과 법률적으로 의견이 다를 경우 검토 보고서 내용 중 일부를 언론에 배포해 공개 토론을 유도하기도 한다.

이런 과정을 마친 법안은 어느 정도 법률 검토를 끝낸 것으로 간주되고 소위원회 청문회와 자구 수정 등을 거쳐 본격적인 입안 단계에 들어간다.

이 단계에서 한국 국회와 다른 것 중 하나는 별도의 ‘위원회 수정안’을 만드는 일은 거의 없다는 점이다. 4선인 민주당 제리 코널리 연방하원의원의 조지 버크 공보담당 보좌관은 “예산관리처 검토까지 거친 법안은 어느 정도 법리적 완결성을 갖추고 있다고 봐야 한다. 만일 이 단계에서 법안에 문제가 있다면 이는 정치적 싸움인 만큼 시간을 충분히 갖고 여야가 조율에 들어간다”고 말했다. ‘김영란법’처럼 여론 눈치를 보다가 원안이 국회 논의 과정에서 갑자기 ‘위원회 수정안’으로 둔갑해 누더기가 되고 위헌 조항이 끼어들 일은 별로 없다는 것이다.

상임위 전체회의를 지난 법안들은 본회의에 상정된다. 미 연방하원 외교위 동아시아태평양 소위원장을 지낸 도널드 맨줄로 워싱턴 한미경제연구소(KEI) 소장은 “미 의회가 만든 법안도 종종 연방대법원에서 위헌 결정이 날 때가 있지만 입법 과정에서 위헌 소지를 최대한 줄이기 위한 경험과 노하우가 미 의회 시스템에 녹아있다”고 말했다.

워싱턴=이승헌 특파원 ddr@donga.com
#위헌소지#김영란법#선진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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