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 獨과 동병상련… DJ는 ‘베를린 선언’ 후 정상회담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3월 2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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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朴대통령 ‘통일구상’ 대북 3대 제안]
방독 역대대통령 ‘통일 메시지’
YS, 황태자궁서 대북협력 밝혀… MB, 김정일과 정상회담 제안

“독일과 한국, 그리고 분단돼 있는 모든 나라의 민족은 통일돼야 한다.”

1964년 옛 서독을 방문한 당시 박정희 대통령은 베를린공대 연설에서 통일의 필요성을 이렇게 역설했다. 이때 한국과 독일은 ‘분단의 동병상련’을 나눴다. 그랬던 독일은 1990년 통일됐다. 그 후 독일은 한국 대통령이 대북 또는 통일 메시지를 밝히는 단골 장소가 됐다.

통일 독일을 방문한 첫 한국 대통령인 김영삼 전 대통령은 1995년 3월 “북한이 필요로 하는 그 어떤 분야에서도 협력을 아끼지 않겠다. 곡물과 물자 등을 장기 저리로 제공할 용의가 있다”고 밝혔다. 당시 발표 장소는 동·서독 통일조약이 조인된 베를린 황태자궁. 그만큼 각별한 의미를 부여했다. 같은 해 6월 쌀 15만 t의 대북 지원이 이뤄졌다. 하지만 이를 싣고 가던 화물선의 인공기 게양 파문, 선원 억류 사건 등이 터지면서 남북관계는 오히려 악화됐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2000년 3월 베를린자유대 연설에서 “정경분리 원칙에 의한 민간 경협이 아니라 정부 당국 간의 협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특히 대북 경협 및 지원 대상에 대규모 사회간접자본(SOC)을 포함시킨 것이 특징이었다. 이에 북한이 이례적으로 긍정적 반응을 보임으로써 이 연설은 ‘베를린 선언’으로 불리며 크게 주목받았다. 이미 남북 당국 간 사전 교감이 있었던 것이다. 3개월 뒤인 같은 해 6월 사상 첫 남북정상회담이 열렸다. 2001년 북-독일 수교도 이뤄졌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2011년 5월 베를린 방문 때 “북한이 핵 포기에 합의하면 2012년 서울에서 열리는 핵안보정상회의에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을 초청하겠다”고 제안해 주목받았다. 3차 남북정상회담 제안이자 서울 답방 요청이었다. 비슷한 시기 김태효 당시 대통령대외전략비서관이 국가정보원 관계자를 대동하고 중국에서 극비리에 북한과 접촉해 이 문제를 협의한 사실도 뒤늦게 공개됐다. 하지만 2011년 12월 김 위원장이 사망하면서 그 구상은 성사되지 못했다.

반면 노무현 전 대통령은 2005년 4월 베를린을 방문했지만 대북 메시지를 내놓지 않았다. 독일이 2005년을 ‘한국의 해’로 선포하는 등 한독 관계에 방문의 초점이 맞춰져 있는 데다 이때까지만 해도 남북정상회담 성사에 적극적이지 않았다는 평가가 많다.

조숭호 기자 shch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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