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열화 추진 중견기업 “적자기업 인수해 살려낸게 일감 몰아주기라니…”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6월 2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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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익은 경제민주화, 중소-중견기업 울린다 “기업 성장 사다리 걷어차는 격”

18일 오후 찾은 경기 안산시 반월공단에는 불황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져 있었다. 기계가 돌아가는 공장은 3곳 중 1곳에 불과했다. 텅 비어 있는 한 건물에는 ‘공장 임대, 매매’라고 적힌 현수막이 내걸려 있었다.

이곳에서 만난 자동차부품 제조업체 A사의 대표는 “최근 일감이 크게 줄어 직원들의 퇴근시간을 2, 3시간 앞당겼다”며 “대기업에 납품하는 업체나 불황의 타격이 상대적으로 덜한 전자회로기판 업체들을 빼면 다들 사정이 어렵다”고 말했다.

A사 대표는 최근 걱정거리가 하나 더 늘었다. 대기업을 타깃으로 하는 줄만 알았던 경제민주화 법안 때문이다. 그는 “휴일근로를 연장근로에 포함시키는 법안이 만들어지면 주당 최대 근로시간이 68시간에서 52시간으로 줄어 설령 일감이 들어오더라도 납기를 맞추기 어려울 것이다”라고 하소연했다. 또 “국회가 법을 개정해 고정상여금을 통상임금에 포함시킨다면 인건비가 지금보다 10∼15% 늘어 경영난이 가중될 것이다”라고 우려했다.

6월 임시국회 상임위원회 활동이 본격화한 가운데 국회에 쌓여 있는 공정거래법, 가맹사업법, 근로기준법 개정안 등 각종 경제민주화 법안을 두고 중소·중견기업계의 불만이 터져 나오고 있다.

본래 취지인 불공정 거래관행, 시장 불균형, 불합리한 제도 등 이른바 ‘3불(不)’을 해소하는 것이 아니라 중소기업이 중견기업으로, 중견기업이 대기업으로 크는 ‘성장 사다리’를 걷어차는 결과를 낳게 된다는 지적들이다. 중소·중견기업 관계자들은 “일부 의원들이 현장 사정을 고려하지 않고 ‘묻지 마’식 발의를 일삼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연간 1200억 원의 매출을 올리는 중견기업 B사는 수직 계열화를 통해 안정적인 성장을 꾀하려고 2008년 유리앰풀을 만드는 C사, 2010년 의료기기 업체 D사를 차례로 인수했다. B사는 C사가 생산한 유리앰풀의 45%를 구매하고 D사의 제품을 대신 팔아줬다. 적자에 허덕이던 C사와 D사는 지난해 흑자로 전환됐다. 그러나 국회에 계류돼 있는 공정거래법 개정안에 따르면 B사는 ‘일감 몰아주기’를 하는 기업으로 분류된다. 과징금뿐만 아니라 형사처벌을 받을 수도 있다. B사 대표는 “최근에서야 그런 사실을 알았다”며 “제재를 피하려면 C사와 D사를 아예 우리 회사에 합병해야 하는데 이럴 경우 인력 감축은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대한상공회의소가 최근 중소기업 153곳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65곳(42.5%)은 “대기업 규제 위주의 경제민주화 정책이 중소기업에도 피해를 준다”고 답했다.

강유현 기자·안산=김호경 기자 yhkang@donga.com
#경제민주화#중견기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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