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재 “본인확인제 시행이후 악성댓글 줄었다는 증거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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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8월 2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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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실명제 위헌 결정



헌법재판소가 23일 인터넷 실명제(본인 확인제)에 대해 위헌 결정을 내린 것은 실명제의 목적과 수단은 정당하지만 그에 따른 실익이 적고 피해는 크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제한이 지나쳐 기본권 침해도 심각하다고 봤다.

○ “표현의 자유 제약된다”

헌재는 본인 확인제로 표현의 자유가 심각하게 억눌린다고 지적했다. 누리꾼들이 자신의 개인 정보가 알려지는 것을 꺼리거나 처벌을 걱정해 글을 올리는 것 자체를 포기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또 외국인과 주민등록번호가 없는 재외국민은 게시판을 이용할 수 없다는 것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인터넷 게시판 운영자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처럼 새롭게 등장한 정보통신 수단과의 경쟁에서 불이익을 받을 수도 있다고 헌재는 판단했다. 모바일 게시판, SNS 등에는 적용되지 않으면서 인터넷 공간에서만 적용돼 형평성도 지적됐다. 누리꾼들의 개인 정보가 외부로 유출되거나 불법적으로 이용될 가능성이 커졌다는 점도 꼽혔다. 실익도 적다고 봤다. 본인 확인제 시행 뒤에 명예를 훼손하는 악성 게시글이나 댓글이 줄었다는 증거를 찾아볼 수 없다는 것이다.

○ 기본권 침해 심각

헌재는 크게 세 가지 측면에서 본인 확인제가 기본권을 심각하게 침해한다고 판단했다. 우선 헌재는 게시글을 읽기만 하는 누리꾼에게까지 본인 확인제를 적용하는 것은 문제라고 봤다. 또 ‘하루 평균 이용자 10만 명이 이용하는 인터넷 사이트’라는 본인 확인제 적용 기준이 불분명해 법 집행이 자의적으로 이뤄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포털 사업자가 개인 정보를 삭제하지 않을 경우 개인 정보가 무기한 저장된다는 점도 심각한 기본권 침해로 꼽혔다.

앞으로 인터넷 게시판에 악성 글이 범람할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될 가능성을 염두에 둔 듯 헌재는 현행 정보통신망법 규정에 따라 본인 확인이 없어도 인터넷주소를 추적해 악성 댓글을 올린 누리꾼을 찾아낼 수 있다고 밝혔다. 또 문제가 된 댓글을 삭제하고 게시판 운영자들에게 불법 정보를 제한하라고 명령할 수 있는 조항은 여전히 유지되고 있다고 밝혔다. 이러한 규정들을 근거로 손해배상과 형사처벌을 통해 피해를 구제할 수 있다는 것이다.

○ 김황식 총리 “바람직한 인터넷 문화 고민”

2007년 본인 확인제가 도입된 이후 인터넷 업계는 이 제도가 국내 인터넷 기업의 발목을 잡는 ‘역차별 규제’가 됐다고 주장해 왔다. 일부 해외 업체들은 꼼수를 써 이 규제를 피해가기도 했다. 실제 동영상 서비스 유튜브를 운영하는 구글 측은 2009년 4월 방송통신위원회가 “유튜브도 본인 확인제 적용 대상”이라고 하자 한국에서만 댓글 기능을 없앤 뒤 국내 사용자가 설정을 ‘전 세계’로 바꾸면 본인 확인을 거치지 않아도 되도록 했다.

이날 헌재 결정이 나오자 NHN, 다음커뮤니케이션, SK커뮤니케이션즈 등 국내 인터넷 기업들로 이뤄진 인터넷기업협회는 “인터넷 실명제는 인터넷 생태계를 왜곡시켰던 대표적인 규제였다”며 “헌재 결정을 환영한다”는 성명을 냈다.

본인 확인제가 사라지면서 인터넷의 부작용을 막을 새로운 제도가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김황식 국무총리는 이날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의 종합정책질의에서 “헌재 재판관 8명의 일치된 의견을 존중한다”면서 “다만 우리나라의 인터넷 문화와 관련해 우려되고 걱정되는 바가 많이 있다”고 말했다. 이어 “헌재 결정을 존중하면서도 바람직한 인터넷문화를 만들 수 있는 정부 차원의 별도의 해결책을 고민하겠다”고 설명했다. 방송통신위원회는 “인터넷에서 명예훼손 분쟁을 처리하는 기능을 강화하고 사업자의 자율적인 규제를 활성화할 수 있도록 보완책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NHN 원윤식 홍보팀장은 “기술적인 문제 등 검토할 부분이 많고 금융거래 기록이나 청소년 보호를 위한 연령 확인 문제 등을 위해 보관한 개인 정보를 처리하는 문제 등 고려할 변수가 많아 정책 방향은 아직 결정하지 못했다”며 “실명 확인을 거치지 않고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면서 자유롭게 댓글을 달 수 있는 시스템을 마련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전지성 기자 verso@donga.com  
김상훈 기자 sanhkim@donga.com  
#헌법재판소#인터넷 실명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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