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억 삼켜놓곤 선거 또 나온다니…어이구!”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2월 23일 03시 00분


박재승 前 통합민주당 공심위장“수억 꿀꺽하고도 출마… 4년전 공천 탈락한 분들 다 잘돼”前 통합민주당 박재승 공심위장, 느슨한 공천 잣대에 쓴소리

“없어서 도둑질을 한 사람이 있다 치자. 이유가 어찌 됐든 전과자여서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할 수가 없다. 그런데 적게는 수천만 원, 크게는 억 단위를 꿀꺽했는데도 정치인이란 이유로 출마한다는 게 말이나 되나.”

18대 총선 때 통합민주당(민주통합당의 전신)의 공천심사위원장이었던 박재승 전 대한변호사협회장(73·사진)은 22일 민주통합당의 4·11총선 공천심사 기준에 대해 마뜩잖은 기색이 역력했다. 여러 차례의 시도 끝에 연결된 전화통화에서 “정치인의 잣대는 일반인과는 다르다는 것인지 원…. 어이구”라며 연거푸 혀를 찼다.

4년 전 그는 부패·비리 혐의로 금고 이상의 형이 확정된 인사는 사면·복권 여부와 관계없이 공천에서 탈락시켰다. 하지만 이번 총선에선 민주당 공심위가 “비리 혐의가 확정된 경우에도 공심위의 재량에 따라 구제할 수 있다”고 문턱을 낮췄다. 박 전 위원장은 “이미 떠난 사람이 언급하는 건 부적절하다”며 말을 아끼다가 “4년 전 ‘박재승의 공천혁명’은 도로아미타불이 된 것 아니냐”고 자극하자 말문을 열었다. “나는 (공천 탈락한) 몇몇 사람들의 원수가 됐지만 나의 시도는 역사에 흔적이 남을 것”이라면서. 다음은 일문일답.

―4년 전 공천심사 결과를 놓고 ‘박재승발(發) 쿠데타’라는 반발과 원성이 자자했다.

“공천에는 명확한 도덕적 기준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재판 중인 경우엔 무죄추정의 원칙을 고려했지만 유죄가 확정된 경우엔 다르다고 봤다. 괴로움도 컸지만 지내 놓고 보니 아웃(탈락)된 분들이 나중에는 다 잘됐더라. 어떤 분은 당 지도부에도 입성했고 어떤 분은 도지사가 됐다. 이런 마당에 내가 무슨 말을 할 수 있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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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박지원 최고위원, 안희정 충남지사, 김민석 전 최고위원 등이 공천에서 탈락했다. 그러나 박 최고위원은 무소속으로 출마해 당선되자 복당했고 원내대표를 거쳐 최고위원이 됐다. 안 지사는 2010년 6·2지방선거 때 충남지사 후보로 공천을 받아 당선됐고, 김 전 최고위원은 공천 탈락 후 전당대회에서 최고위원으로 선출됐다가 또 다른 정치자금법 위반으로 5년간 피선거권이 박탈됐다.

―비리 혐의를 이유로 공천에서 배제해도 유권자가 당선시킨다면….

“답답한 측면이다. 정치권이 유권자를 선도해야 하는 것 아니냐. (공천 탈락 후) 돌아온 자들이 영원할지는 두고 봐야 한다. 20일 문재인 노무현재단 이사장, 이해찬 전 국무총리 등이 (개혁공천을 요구하는) 성명을 냈던데 관심을 갖고 지켜보고 있다.”

―부패·비리 혐의로 형이 확정됐지만 사면·복권됐다면….

“사면·복권됐다고 복직이 되는 공직이 국회의원 말고 어디 있나. 사면·복권됐다고 도덕성까지 살아나는 것은 아니지 않나. 4년 전 사면·복권됐다 하더라도 공천에서 탈락시킨 건 그런 이유다.”

조수진 기자 jin061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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